## 제1장: 폐기장의 심연
강휘는 먼지투성이 조종석에 삐딱하게 앉아 희미한 홀로그램 지도를 노려봤다. 일곱 번째 구역, 통칭 ‘불모지’의 폐기물 산은 끝없이 이어지는 회색빛 절망 같았다. 거대한 기계팔이 녹슨 잔해 더미를 긁어대는 소리가 작업용 로봇, ‘고철맨’의 낡은 엔진음과 섞여 불협화음을 냈다. 십 년 전, 그는 이곳에 정착했다. 버려진 것들 속에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고, 생존을 위해서는 ‘쓸모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젠장, 오늘도 빈손인가.”
강휘의 중얼거림은 두꺼운 강화유리 너머로 퍼지는 황량한 바람 소리에 묻혔다. 고철맨의 팔에 달린 스캐너는 연신 텅 빈 신호만을 보내왔다. 벌써 사흘째였다. 쓸만한 부품 하나, 희귀 금속 조각 하나 찾지 못했다. 다음 주 식량과 연료 값은커녕, 오늘 밤 잠잘 곳의 임대료도 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더 깊이 가야 해.”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린 말에 강휘는 살짝 움찔했다. ‘더 깊이’라는 건 금기를 뜻했다. 일곱 번째 구역 최심부. 옛 기록에 따르면 ‘고대 문명 잔해 보존 구역’이라 불리던 곳. 하지만 지금은 불안정한 지반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고대 유물들의 잔해 때문에 모두가 기피하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불모지의 전설은 끈질겼다. 오래된 힘이 잠들어 있다는 헛소문부터, 괴물들이 살고 있다는 경고까지. 하지만 강휘에게는 이제 선택지가 없었다.
고철맨의 삐걱이는 발이 축축하고 무거운 흙을 밟았다. 일반 폐기물 구역보다 훨씬 오래된 잔해들이 마치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의 뼈대, 알 수 없는 재질의 거대 파이프, 그리고 바스러진 전자회로판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스캐너가 간간이 이상 신호를 잡았지만, 대부분은 오류였다.
“그래도… 뭔가 있긴 한 모양이네.”
강휘는 조심스럽게 고철맨을 조종해 앞으로 나아갔다. 수십 미터 높이의 거대 잔해 더미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이곳은 마치 시간 자체가 멈춰버린 듯했다. 바람 소리마저 삼켜버린 정적 속에서, 고철맨의 움직임만이 유일한 생명력을 증명했다.
그때였다. 스캐너가 미친 듯이 삑삑거렸다. 강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홀로그램 화면을 확인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하고도 안정적인 신호였다. 재질은 불명. 밀도는 상상 이상.
“이게… 뭐야?”
강휘는 고철맨의 팔을 움직여 신호의 근원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낡은 로봇 팔은 고대 잔해의 단단한 지반을 긁어내며 거친 소리를 냈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은 묻혀 있었을 법한 흙더미와 부식된 금속 파편들이 쏟아져 내렸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건 평범한 ‘고철’이 아니었다.
마침내, 거대한 굴착기가 삽날로 무언가를 건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쿵!’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 곳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강휘는 고철맨을 멈추고 확대경으로 화면을 키웠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결정체였다. 투명하지만 어딘가 불투명하고, 은은하게 푸른빛을 띠는 육각형의 결정. 표면에는 미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고,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그 고동이 스캐너의 신호와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런 걸 본 적이 없어…”
강휘는 홀린 듯 고철맨의 매니퓰레이터 팔을 조심스럽게 뻗었다. 첨단 기술이라기보다는, 아주 오래된 예술품 같은 느낌이었다. 팔의 섬세한 집게발이 결정을 들어 올리자, 손끝에서부터 묘한 전율이 흘러들어왔다. 마치 심장이 몸 밖에서 뛰는 듯한, 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강렬한 감각이었다.
결정체가 고철맨의 팔에 닿는 순간, 주변의 모든 전자기기들이 일제히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고철맨의 조종석 안을 밝히던 화면들이 지지직거리며 일그러지고,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강휘는 놀라 결정체를 놓치려 했지만, 손가락이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결정체가 그의 의지에 반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푸른빛이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와 고철맨의 매니퓰레이터 팔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낡은 기체는 경련하듯 떨더니, 이내 정지했다. 모든 화면이 꺼지고, 경고음마저 멎었다. 정적. 그리고 섬뜩할 만큼 고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강휘는 숨을 들이켰다. 끝난 건가? 망가진 건가? 아니면…
그 순간, 고철맨의 엔진에서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웅장하고 깊은 ‘우우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종석의 모든 패널에 생기가 돌아왔다.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홀로그램 화면을 가득 채웠다. 미지의 언어로 쓰인 문자들, 복잡한 에너지 흐름도, 그리고…
강휘의 손에 들려 있던 결정체가 마치 살아있는 액체처럼 녹아내리더니, 그의 손바닥 속으로 스며들었다. 피부 아래로 스며든 푸른빛은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와 심장으로 향했다. 고통은 없었다. 다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듯한, 불가능한 감각만이 지배했다.
‘고철맨’은 더 이상 고철맨이 아니었다.
기체 외피에 새겨진 녹슨 흔적들이 푸른빛을 따라 사라지고, 닳고 해진 장갑들이 마치 새로 주조된 금속처럼 매끄럽게 빛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몸체는 이전보다 더욱 견고하고 날렵한 형태로 변형되었다. 낡은 매니퓰레이터 팔은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무장으로 재구성되었고, 칙칙했던 관절마다 푸른 에너지의 맥동이 번개처럼 흘렀다.
가장 놀라운 것은, 강휘가 고철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종간을 잡지 않아도, 스로틀을 밀지 않아도, 그의 생각만으로 기체가 움직였다. 마치 자신의 팔다리처럼, 아니 그보다 더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었다. 기체는 그의 의지를 읽고, 그에게 반응했다.
“이게… 대체…”
강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손바닥에는 결정체가 사라진 흔적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하지만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고, 혈관을 따라 흐르는 푸른빛 에너지가 온몸을 감쌌다.
그때였다. 고철맨의 새로운 센서가 포착한 섬뜩한 경고음이 적막을 깼다.
**[경고: 고출력 에너지 신호 감지. 접근 중.]**
홀로그램 화면에 붉은 점이 빠르게 다가왔다. 하나가 아니었다. 셋, 넷, 다섯…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들. 분명 이곳은 접근 금지 구역이었을 텐데. 누가, 무엇이 이 에너지에 반응하여 다가오는 걸까?
공포보다 먼저 치솟은 것은 알 수 없는 희열이었다. 강휘는 자신의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피 속에서 끓어오르는 푸른 힘이 속삭였다.
*싸워라.*
고철맨… 아니, 이제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그의 기체가 묵직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강휘는 거친 숨을 내쉬며 새롭게 변모한 조종석에 등을 기댔다. 방금 전까지 폐기장의 허드렛일을 하던 넝마주이였던 그에게, 고대의 숨겨진 마법의 힘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폐기장의 심연에서, 새로운 전설이 막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