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어둠 속에서 깨어난 것

김민준은 익숙한 먼지 냄새를 들이켰다. 퀴퀴하고, 어딘가 아득한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냄새. 그의 주 2회 아르바이트는 늘 이 냄새로 시작하고 이 냄새로 끝났다. 서울 한복판, 고층 빌딩 숲 사이에 엉뚱하게 자리 잡은 낡은 가게, ‘오래된 기억’. 간판에는 색 바랜 글씨가 간신히 매달려 있었고, 삐걱거리는 유리문 안쪽은 온갖 시대를 뒤섞어 놓은 듯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민준아, 오늘은 저 안쪽 창고 좀 정리해 줘. 한 10년은 손도 안 댔을 거다.”

가게 주인, 박 노인이 등 뒤에서 툭 던지듯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묵직했고, 물건들만큼이나 오래된 연륜이 느껴졌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그리고 졸업을 앞둔 막막함 사이에서 그는 이런 잔심부름조차 소중했다. 먼지투성이 낡은 창고라니, 오늘 밤은 마스크를 두 개 겹쳐 쓰고 작업해야겠군.

작은 손전등 하나와 걸레, 그리고 희미한 비누 향이 나는 세제를 챙겨들고 창고 문을 열었다. 삐걱이는 경첩 소리가 왠지 모르게 음산하게 울렸다. 안쪽은 정말이지 암흑 그 자체였다. 손전등을 켜자, 수십 년은 족히 묵었을 법한 물건들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곰팡이가 피어 있는 가구들, 알 수 없는 형상의 조각상들, 낡은 그림 액자들, 그리고 먼지에 뒤덮인 상자 더미들. 폐쇄된 유적지라도 탐사하는 기분이었다.

민준은 한숨을 쉬며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입구부터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꺼내 바깥으로 옮기고, 거미줄과 묵은 먼지를 걷어냈다. 지루하고 고된 작업이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창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그는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여느 상자와는 다르게, 그 상자는 덩그러니 한쪽 벽에 기대어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듯했지만, 표면은 흙먼지로 뒤덮여 재질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 크기는 대략 어른의 팔꿈치부터 손가락 끝까지 정도. 민준은 상자 주변의 먼지를 털어냈다.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려 하자, 예상외의 묵직함이 손끝에 전해졌다.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었다.

더욱 집중해서 상자의 표면을 닦아내자, 흙먼지 아래 숨겨져 있던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나무가 아니었다. 검은색에 가까운 어두운 목재였는데, 표면에는 기묘하고 복잡한 문양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현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어떤 고대 문명의 유물 같았다. 물고기 같기도 하고, 날개가 달린 뱀 같기도 한 형상들이 서로 얽혀 기이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건… 뭘까?”

민준은 중얼거렸다. 가게에 온갖 희한한 물건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이질적인 것은 처음이었다. 상자에는 어떤 경첩이나 잠금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하나의 덩어리처럼 매끄럽게 이어져 있었다. 어딘가 열리는 부분이 있을 텐데. 그는 손전등으로 상자의 모든 면을 꼼꼼히 비춰봤다.

그리고 마침내, 상자 윗면의 한가운데, 다른 문양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조각을 발견했다. 웅크리고 앉은 듯한 사람의 형상. 다른 문양들에 비해 조금 더 깊게 파여 있었고, 묘하게 손끝을 잡아끄는 느낌이 들었다.

무심코 손가락을 가져가 그 조각을 짚었다. 그의 손끝이 닿는 순간, 차가웠던 나무 조각에서 미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착각일까? 그는 손가락에 살짝 힘을 주어 조각을 눌렀다.

순간, 상자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빛이 아니었다.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마치 심해의 번개 같은 차갑고도 강렬한 빛이었다. 창고 안의 어둠을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듯한 빛. 민준은 놀라서 손을 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손가락은 상자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고, 빛은 그의 팔을 타고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귓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어떤 언어 같기도 했고, 거대한 폭포수의 울림 같기도 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고대의 숲, 거대한 돌기둥, 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줄기, 그리고 누군가의 절규. 너무 빠르고 선명해서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몸 안에서 무언가 들끓는 듯한 감각. 그의 심장이 거세게 울렸다.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힘이 그의 존재 깊숙한 곳을 뒤흔드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이었다. 동시에, 그의 손에 들린 손전등이 파지직 소리를 내더니 깜빡, 하고 꺼져버렸다. 창고는 다시 암흑 속으로 가라앉았다.

빛은 사라졌지만, 그 여파는 민준의 몸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찌릿한 감각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심장이 여전히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고, 귓속의 웅웅거림은 가늘게 이어졌다. 그의 시야는 흐릿해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젠장… 뭐야, 대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민준은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손끝에 여전히 남아있는 뜨거운 기운. 그의 눈은 다시 어둠에 익숙해졌고, 희미하게 빛나는 물건을 찾아냈다. 방금까지 섬광을 뿜어냈던 그 상자였다. 이제는 아무런 빛도 발하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상자 윗면의 그 사람 형상의 조각. 방금 전까지는 평평하게 파여 있던 그것이, 아주 미세하게, 마치 누군가의 힘으로 들어 올려진 것처럼 돌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각 주변의 문양들도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게 느껴졌다. 마치 눈을 뜬 것처럼,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민준은 천천히 상자에 손을 뻗었다. 만져보고 싶지 않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다시 상자의 표면에 닿는 순간, 상자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다만, 그의 손바닥 안에서 맴도는 듯한 알 수 없는 잔열이 느껴졌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희미하게, 아까 들었던 그 웅웅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다시 울렸다.

그것은 경고였을까, 아니면 초대였을까.
어떤 힘이, 어떤 존재가, 이 오래된 상자 속에 갇혀 잠들어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힘은 이제, 그를 통해 깨어난 것일까.

창고 밖에서는 박 노인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아! 안에 죽었냐? 슬슬 문 닫아야지!”

죽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평범했던 삶에, 이 오래된 상자가 던져 넣은 알 수 없는 힘의 조각.

김민준은 어둠 속에서 상자를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