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거대한 원형 경기장의 돌벽을 타고 기어오르던 붉은 덩굴들이, 찢어질 듯한 함성 속에서 섬뜩하게 맥동했다. 검은 핏빛으로 물든 돌바닥 위에는 덧없이 스러져 간 열기만을 증명하듯 검붉은 얼룩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얼어붙어 있었다. 천장 대신 거대한 틈으로 열려 있는 상공에는 잿빛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사이로 언뜻 비치는 노을은 마치 피를 토하는 하늘처럼 섬뜩한 핏빛을 띠고 있었다.

“다음 대결!”

목청껏 울리는 사회자의 외침은 희뿌연 연기처럼 불안하게 퍼져 나갔다. 관중석은 기대와 공포, 그리고 기묘한 광기로 가득 찬 침묵 속에서 다음 희생자를 기다리는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이 대회가 시작된 이래, 온전한 승자는 없었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잃었고, 무엇인가에 잠식당했다.

북쪽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고,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길게 늘어트린 검은 머리카락이 그의 앳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류진. 그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에는 감히 마주하기 힘든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백색의 도포 위로 피어난 수묵화 같은 검은 문양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잔물결처럼 일렁였다.

“류진 대 백수련!”

사회자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남쪽 문이 격렬하게 뜯겨 나갔다. 찢어진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온 것은 냉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차가운 살기였다. 백수련은 류진과는 대조적으로 화려한 붉은 비단 의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감춰진 것은 흡사 시체 같은 창백한 피부와,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얼음 같은 눈동자였다. 그녀의 손에는 마치 심장을 꿰뚫으려는 듯 날카로운 은빛 단검 한 쌍이 들려 있었다.

관중석의 침묵은 더욱 깊어졌다. 백수련은 천하에서 가장 잔혹하고 냉정한 살수로 불렸다. 그녀의 손에 스러지지 않은 무인은 없었고,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고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류진은 천천히 경기장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백수련은 그를 향해 곧장 걸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물 위를 미끄러지듯 유령처럼 움직였다.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그녀의 접근 방식은 이미 류진의 심장을 옥죄는 듯한 압박감을 안겨주었다.

“소년.” 백수련의 목소리는 얼음 조각이 부딪히는 소리처럼 차갑고 건조했다. “네놈의 그 깨끗한 도포에 피를 칠해주마.”

류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여 허리에 찬 검은 보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었다. 그의 눈빛이 일순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섬광했다.

바로 그때, 백수련이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류진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그는 몸을 돌리려는 순간, 이미 단검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쨍그랑!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단검이 부딪힌 것은 류진의 피부가 아니었다. 류진의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비단 조각에 박힌, 보이지 않던 얇은 금속판이었다.

“호오.” 백수련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제법이구나.”

그녀는 다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이번에는 네 방향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은빛 단검의 섬광. 류진은 피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허리춤의 검은 보검을 뽑아 들었다. 쉬쉬쉭! 검은 검이 허공을 가르자, 마치 먹물로 그린 선이 번지듯 검은 기류가 류진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퍼져 나갔다.

콰아앙!

백수련의 단검들이 류진에게 닿기도 전에 검은 기류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조각난 단검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경기장 바닥에 박혔다. 관중석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백수련의 공격이 막히는 것을 본 이들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수련의 얼굴에는 미소조차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허공에서 검은 기류에 휩쓸려 뒤로 밀려나는 와중에도, 새로운 단검 한 쌍을 손에 쥐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몸 안에 무한한 단검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

“재미있군. 그 검은.” 백수련이 허공에서 솟구치며 류진의 위로 덮쳐 들었다. “탐나는구나!”

이번에는 단검이 아닌, 그녀의 팔과 다리에 달린 은빛 날들이 류진을 향해 빗발쳤다. 마치 거미가 먹이를 노리듯, 그녀의 몸놀림은 유려하면서도 치명적이었다. 류진은 검은 검을 휘둘러 그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검은 검과 은빛 날이 부딪힐 때마다 섬뜩한 마찰음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검은 기류가 류진의 검을 타고 솟아올랐다. 그것은 단순히 무공의 기운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그림자처럼, 그것은 류진의 의지에 따라 형체를 바꾸었다. 검은 용이 되어 백수련을 휘감고, 검은 뱀이 되어 그녀의 목을 노렸다.

백수련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웃듯이 웃으며 몸을 비틀어 검은 그림자를 피했다.

“그깟 환영 따위가!”

그녀는 순간적으로 온몸에서 붉은 아우라를 뿜어냈다. 그 아우라가 경기장의 공기를 데우며, 류진의 검은 기운을 밀어냈다. 류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의 살기는 단순한 무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천의 영혼을 베어 넘긴 자에게서나 나올 법한, 깊이를 알 수 없는 죽음의 기운이었다.

백수련이 붉은 아우라를 등지고 류진에게 돌진했다. 그녀의 두 손에 든 단검은 이제 붉은 섬광을 내뿜고 있었다.

“죽어라!”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그녀의 단검이 류진의 심장을 향해 쇄도했다. 류진은 피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검은 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콰드드득! 경기장의 돌바닥에 균열이 생기고, 검은 기운이 그 균열을 타고 지면 아래로 스며들었다.

백수련의 단검이 류진의 가슴에 닿기 직전, 류진의 몸에서 폭발적인 검은 기운이 터져 나왔다. 그 기운은 단순한 충격파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어둠이 류진의 몸에서 솟아나는 듯했다. 검은 기운은 백수련을 향해 뻗어 나갔고, 그녀의 붉은 아우라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크윽…!”

백수련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녀의 붉은 아우라가 검은 어둠에 휩쓸려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단검을 류진의 가슴에 꽂으려 했지만, 류진의 몸을 감싼 검은 기운이 마치 단단한 철벽처럼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류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는 이제 온전히 검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눈빛에는 인간적인 감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태고의 어둠이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응시하는 듯했다.

“네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백수련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은 검은 어둠에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었다. 피부 위로 검은 문양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류진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앳된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듯한 깊고 낮은 울림이었다.

“나는… 너희가 불러낸 운명이다.”

검은 기운이 백수련의 몸을 완전히 덮쳤다. 그녀는 마지막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그 소리마저 어둠 속에 갇혀버렸다. 콰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검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둠이 걷히자,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산산조각 난 단검 조각들과, 경기장 바닥에 섬뜩하게 박힌 그녀의 붉은 머리 장식만이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침묵. 완벽한 침묵이 경기장을 지배했다.

관중석의 모든 이들이 숨조차 쉬지 못하고 류진을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의 백색 도포는 여전히 깨끗했지만, 그의 주변에는 짙은 어둠의 잔향이 감돌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천천히 본래의 색을 되찾았지만, 그 깊이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류진은 검은 검을 거두어 다시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몸에 깃든 무거운 짐을 이끌고 걷는 듯이 경기장 북쪽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뒤에서, 사회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외쳤다.

“승… 승자… 류진!”

그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류진의 발아래 경기장 바닥에 박혀 있던 백수련의 붉은 머리 장식이 섬뜩한 빛을 발하더니, 마치 피를 머금은 듯 더욱 짙은 붉은색으로 변색했다. 그리고 그 옆에 박힌 단검 파편들은, 미세하게 진동하며 어디론가 이끌리는 듯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이것은 시작이었다. 그 어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류진의 승리가 과연 진정한 승리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천하의 운명을 건 대회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만이 모두의 심장을 옥죄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