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망망대해는 늘 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품고 있었다. 그 별들은 수십 년 전, 혹은 수백 년 전의 빛을 흩뿌리며 우리에게 과거를 상기시켰다. 강하준에게는 그 모든 별빛이 고통스러운 과거의 잔상일 뿐이었다.
“레아, 목표의 현재 위치는?”
하르페의 조종석에 앉은 하준은 짙은 그림자 속에 파묻힌 얼굴로 나지막이 물었다. 목소리는 거친 사포처럼 닳아 있었다. 무미건조한 기계음이 조종석을 채웠다.
“표적 ‘영광의 새벽’은 현재 센타우리 성계 제3거점 방어선을 돌파 중입니다. 예상 경로 이탈률 0.001%, 정확히 예측 지점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하르페의 인공지능, 레아의 목소리는 어떤 감정도 담고 있지 않았지만, 하준에게는 그 침착함이 오히려 든든했다. 하준은 지친 눈을 들어 전방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했다. 은하 연합 최신예 전투함 ‘영광의 새벽’. 이한결의 기함이었다.
이한결. 한때는 하준의 유일한 벗이자, 은하 연합 7함대의 ‘쌍둥이 별’이라 불리던 전우. 하지만 지금은.
“시뮬레이션 가동. 센타우리 성계 제3거점 방어선 지형 및 교전 기록 오버레이.”
하준의 명령에 홀로그램 스크린은 순식간에 푸른 빛으로 가득 찼다. 복잡한 항로와 요새화된 방어 드론들이 빛의 실타래처럼 얽혔다. 과거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오리온 성운의 심장을 향하던 마지막 임무. 최첨단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인류의 염원이 담긴 작전이었다. 하준은 선봉에서 아레스의 눈물을 지휘했고, 한결은 그의 옆을 지키는 든든한 날개였다.
‘우린 끝까지 함께 가는 거야. 하준.’
이한결의 그 다짐 섞인 웃음이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사악한 배신의 칼날이 되어 하준의 심장을 꿰뚫었다. 오리온 성운의 심장 코앞에서, 이한결은 하준의 항로 정보를 적들에게 넘겼고, 아레스의 눈물은 찢겨나갔다. 그의 동료들, 가족 같았던 크루원들, 그리고… 그의 전부였던 여동생까지. 모두 한결의 손에 의해 우주의 먼지가 되었다. 하준은 폐허 속에서 홀로 살아남아, 미친 듯이 이를 갈았다.
그날 이후, 강하준은 죽었다. 그리고 ‘망령 선장’이 태어났다.
“함선 무장 상태 보고.”
“주포 ‘복수의 불꽃’ 완전 충전, 보조 무장 ‘원한의 칼날’ 대기. 보호막 완벽 가동 중.”
“좋아.”
하준은 조종간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몇 년간의 추적, 몇 년간의 준비. 이 순간을 위해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폐함선 조각들을 그러모아 직접 만든 전투함 하르페. 은하 연합의 어떤 스캔에도 잡히지 않도록 철저히 위장한 그의 검은 그림자. 이한결은 하준이 죽은 줄 알았다. 망령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센타우리 성계 제3거점 방어선 진입까지 3분. 예상 교전 시각 1분 15초 후.”
레아의 목소리가 경고했다. 하준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이미 코끝에 스치는 듯했다.
“선회각 25도, 속도 7등급으로 상향. 위장 모드 해제 대기.”
하준의 지시에 하르페는 매끄럽게 선회하며 은하의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센타우리 성계 제3거점 방어선은 수십 개의 중형 전함과 요격 드론, 그리고 수많은 소형 전투기가 촘촘하게 배치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하준에게는 한결의 전술이 손바닥 보듯 훤했다. 과거 한결과 함께 직접 설계하고 구축했던 방어선이었다.
“지금이다! 위장 모드 해제! 모든 화력 개방!”
하르페는 마치 우주의 검은 눈물처럼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굉음과 함께 주포 ‘복수의 불꽃’이 작렬했다.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가장 취약한 방어 드론 밀집 지점을 정확히 강타했다. 방어 드론들은 순식간에 폭발하며 잔해를 뿌렸다.
“적 탐지! 미확인 고속선! 코드명 ‘망령’!”
은하 연합군의 혼란스러운 통신이 하준의 함선 내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망령. 그래, 내가 바로 너희가 잊은 망령이다.
하준은 방어 드론들이 만들어낸 교란을 틈타 거침없이 전진했다. 그의 조종은 신의 경지였다. 수십 개의 미사일이 하르페를 향해 쇄도했지만, 하준은 불가능해 보이는 회피 기동으로 모든 공격을 피했다. 그는 마치 춤을 추듯, 하르페를 전장의 지옥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한결! 내 목소리 들리나! 강하준이다!”
하준은 함대 통신망을 해킹해 이한결에게 직접 메시지를 보냈다. 정적. 그리고 잠시 후, 이한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였다.
“강… 강하준? 말도 안 돼! 네가 어떻게… 살아 있어?!”
“살아있는 걸 넘어, 널 죽이러 왔다. 네가 파괴한 모든 것의 복수를 위해.”
하준의 목소리에는 차갑게 식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한결은 전율하듯 떨었을 것이다. 공포는 전염되는 법. 이한결의 지휘관으로서의 냉철함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모든 함선, 망령을 집중 공격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막아!”
이한결의 다급한 명령에 은하 연합 전함들이 하르페를 향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하준은 센타우리 성계의 복잡한 소행성 지형을 이용, 예측 불가능한 경로로 기함을 향해 돌진했다. 그는 한결의 전술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한결이 어떤 수로 나올지, 다음 공격은 어디서 올지. 모든 것이 하준의 머릿속에 완벽하게 시뮬레이션 되어 있었다.
“보조 무장 발사! ‘원한의 칼날’ 개방!”
하르페의 측면에서 수십 개의 소형 무인 공격기 ‘원한의 칼날’이 튀어나와 연합 함대 중앙을 향해 돌진했다. 자폭형 공격기였다. 연합 함대는 미처 대응할 새도 없이 혼란에 빠졌다. 그 혼란을 틈타 하르페는 ‘영광의 새벽’의 보호막을 꿰뚫고 코앞까지 다가섰다.
“함선 충돌 궤도 진입. 탈출 포트 개방.”
“레아, 하르페를 자폭시켜라. 남은 모든 에너지를 한결의 기함에 집중해.”
“강하준! 안 돼! 하르페는 너의…”
“명령이다.”
하준은 망설임 없이 조종석에서 뛰쳐나왔다. 그의 몸에는 전투복이 착용되어 있었다. 등에 짊어진 건 초고밀도 에너지 블레이드, ‘심판의 검’이었다. 하르페는 ‘영광의 새벽’의 함교 부분을 향해 무섭게 돌진했다. 충돌 직전, 하준은 탈출 포드를 통해 우주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
하르페의 자폭은 ‘영광의 새벽’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보호막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함교는 반파되었다. 하준은 우주를 유영하며 ‘영광의 새벽’의 파손된 선체 틈새로 침투했다. 내부의 연합군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한결은 어디 있나.”
하준은 마주친 병사들에게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병사들은 공포에 질린 채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레아가 미리 전송해준 기함 내부 지도를 따라, 그는 함교로 향했다.
함교는 아수라장이었다. 연기가 자욱하고, 파손된 기기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 한가운데, 이한결이 비틀거리며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 하준… 제발… 살려줘… 내가… 내가 미쳤었어…!”
한결은 다급히 권총을 뽑아 들었지만, 그의 손은 덜덜 떨려 제대로 조준조차 하지 못했다. 하준은 마치 망령처럼 어둠 속에서 한결에게로 다가섰다. 그의 전투복 헬멧 바이저에는 한결의 추악한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살려달라고? 네가… 감히 내게 살려달라는 말을 해?”
하준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인간적인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얼어붙은 분노만이 가득했다.
“내 동료들, 내 여동생… 그들이 너에게 살려달라고 했을 때, 넌 무얼 했지? 그들을 우주의 먼지로 만들었잖아. 그 고통을 네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결은 뒷걸음질 쳤다. 하준의 눈빛은 마치 지옥에서 온 사신 같았다.
“난 그들의 마지막 비명을 들었다. 살려달라는 절규를. 그때마다 너의 얼굴이 떠올랐지. 나의 가장 친한 친구. 나의 전우.”
하준은 ‘심판의 검’을 뽑아 들었다. 푸른색 에너지 블레이드가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빛을 뿜어냈다. 한결은 그 빛에 눈을 가늘게 떴다.
“난… 난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야…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결은 절규했다. 그의 추악한 욕망이 그들의 우정을 산산조각 냈던 것이다.
“그래서 내 모든 것을 짓밟았나? 너의 그 비루한 욕망을 위해?”
하준은 한결에게 성큼 다가섰다. 한결은 겁에 질려 권총을 쏘려 했지만, 하준은 번개 같은 속도로 그의 손목을 잡았다. ‘철컥’ 소리와 함께 권총은 하준의 손에 들어왔다. 하준은 그것을 망설임 없이 내동댕이쳤다.
“이한결. 오늘… 넌 네가 파괴한 모든 것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준은 ‘심판의 검’을 한결의 심장 위에 겨눴다. 한결의 눈에는 더 이상의 변명이나 항변도 없었다. 오직 처절한 공포만이 가득했다. 그는 떨리는 입술로 하준의 이름을 불렀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과거를 애원하듯이.
“하… 하준아…”
그 이름은 하준의 귓가에 닿는 순간, 다시 한번 그의 모든 상처를 후벼 팠다. 여동생의 웃음소리, 동료들의 얼굴, 그리고 아레스의 눈물이 폭발하던 끔찍한 순간.
“내 이름은 강하준이 아니다. 망령이다.”
하준은 망설임 없이 검을 내리찍었다. 푸른 에너지 블레이드가 한결의 심장을 꿰뚫었다. 한결의 눈은 공포와 고통으로 가득 찬 채 허공을 응시하다, 이내 초점을 잃고 굳어버렸다. 그의 몸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하준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칼날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지독한 공허가 피어났다. 복수는 끝났다. 모든 것을 앗아갔던 자는 이제 자신의 손에 죽었다. 하지만 그 어떤 해방감도, 만족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차가운 우주처럼 텅 비어 있었다.
“임무 완료. 강하준.”
레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준은 ‘심판의 검’을 다시 등에 짊어졌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어둡고 깊었다.
“레아, 이한결의 기함에서 탈출 경로를 탐색해.”
“탐색 중입니다. 외부 우주 정거장으로의 이동을 추천합니다.”
“아니.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아주 멀리….”
하준은 파괴된 함교를 빠져나와 우주 공간으로 향했다. 그의 앞에는 여전히 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이 있었다. 그 별들은 그에게 과거를 상기시켰지만, 이제 그 과거는 복수를 위한 연료가 아닌, 그저 아픈 기억으로만 남았다. 망령 선장은 더 이상 복수할 대상이 없었다. 그는 그저 망망한 우주 속에서 표류하는 영혼일 뿐이었다. 그는 새로운 목적지 없는 길고 긴 여정을 시작했다. 아마도 그 여정의 끝은, 그의 마음속 공허가 채워지는 곳이거나, 아니면 그 공허에 잠식되는 곳일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