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大政) 시대, 한양 도성으로부터 사흘 길 남짓 떨어진 산간 마을,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 박대감의 고택에는 불길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한밤중에 울린 비명과 함께 마을을 덮친 소문은 파고들 틈 없는 밀실에서 벌어진 참극이었다.
새벽녘, 고택의 대문이 활짝 열리며 낯선 이가 들어섰다. 갓을 깊이 눌러쓴 사내, 이현이었다. 그를 맞이한 이는 초췌한 얼굴의 나 서방, 이 지역을 관할하는 포도청의 책임자였다.
“이 추운 날씨에 이리 멀리까지 발걸음하시어 송구할 따름입니다, 이 대사. 허나 이번 사건은… 도무지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난제입니다.”
나 서방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굳게 다문 입술을 열지 않았다. 그는 불필요한 말을 삼키는 인물이었다. 오직 사건의 진실만이 그의 흥미를 돋울 뿐이었다.
“안으로 안내해주시오.” 짧지만 단호한 말에 나 서방은 황급히 앞장섰다.
피해자는 이 고택의 주인, 박정대 대감이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이자 기이한 발명품들을 만들어내는 기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의 서재는 온갖 진귀한 서책과 정교한 기계 장치들로 가득했다. 바로 그 서재에서 박대감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나 서방은 굳게 닫힌 서재 문을 가리켰다.
“어젯밤 자시(子時)경, 대감의 시동이 대감마님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고 합니다. 문을 두드렸으나 열리지 않았고, 마침 고택에 머물던 대감의 조카와 노비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갔을 땐 이미… 대감께서는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이현은 굳게 닫힌 떡갈나무 문을 응시했다. 무겁고 견고한 문에는 외부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피해자는 어떻게 사망했소?”
나 서방은 입술을 깨물었다.
“가슴에 단검이 꽂혀 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방 안에는 다른 이의 흔적이라곤 없습니다. 창문은 모두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문은… 안에서 묵직한 빗장으로 잠겨 있었습니다. 방에는 오직 대감 한 분뿐이었는데, 대체 누가, 어떻게…?”
이현은 빗장이 걸린 문을 뚫어져라 보았다. 안쪽에서 잠긴 문은 밖에서 열 수 없었다. 이른바 ‘밀실 살인’이었다.
서재 안으로 들어서자, 차가운 공기와 눅진한 피 냄새가 이현의 코를 스쳤다. 방 중앙에 쓰러진 박대감의 시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황금빛 장식이 박힌 기이한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단검의 손잡이는 박대감의 손에 닿을 듯 말 듯 떨어져 있었다. 마치 스스로 목숨을 끊은 듯한 자세였으나, 깊게 박힌 칼날은 자살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현은 고개를 숙여 시신을 살폈다. 그의 눈길은 재빨리 방 전체를 훑었다. 겹겹이 쌓인 서책, 천장에 매달린 정교한 금속 장식, 창가를 따라 놓인 돋보기와 복잡한 도면들.
“방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까?” 이현이 물었다.
나 서방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벽난로의 불씨도 거의 꺼져 있었고,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도 없었습니다. 창문은 물론, 천장에도 틈 하나 없습니다. 이 방은 대감께서 워낙 귀한 물건들을 보관하신 탓에 특별히 제작된 것이라, 쥐 한 마리 들어갈 틈도 없다고 합니다.”
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방을 돌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먼지, 책상의 필기구, 그리고 벽에 걸린 그림까지 놓치지 않았다. 특히 창문을 주의 깊게 살폈다. 높이 달린 창문은 튼튼한 나무 격자로 막혀 있었고, 안쪽에는 놋쇠로 만든 묵직한 빗장이 단단히 걸려 있었다. 외부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구조였다.
그는 가장 높은 창문 아래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창틀의 윗부분을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이것은…?”
나 서방이 다가왔다.
“무엇을 발견하셨습니까?”
“여기, 창틀 안쪽에 희미한 긁힌 자국이 있습니다.” 이현의 손가락 끝은 미세한 흠집을 느끼는 듯했다. “마치 무언가 딱딱한 것이 안쪽을 긁고 지나간 듯한.”
나 서방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요, 노비들이 청소를 게을리했나 봅니다.”
이현은 대답 없이 손가락을 올려 천장을 더듬었다. 높은 창문 바로 위 천장 모서리에 희미한 얼룩이 있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검은 점이었다.
“그리고 저것은 무엇입니까? 천장에 묻은 저 얼룩은?”
나 서방은 눈을 찌푸렸다.
“하아, 너무 높아서 제대로 보이지도 않습니다만…”
이현은 허리춤에서 작은 망원경을 꺼내 들었다. 대정 시대에 서역에서 건너온 진귀한 물건이었다. 망원경으로 얼룩을 자세히 들여다본 그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빛났다.
“매우 가는 쇠붙이가 부딪히면서 생긴 흔적 같습니다. 얼룩 주변에 미세한 쇳가루도 보입니다.”
나 서방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쇳가루라니, 이 밀실에 대체 쇳가루가 왜?
이현은 계속해서 방을 수색했다. 박대감의 책상 위에 펼쳐진 도면 한 장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교한 그림과 복잡한 수치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동 개폐식 창문 구조’에 대한 설계도였다. 특히 창문의 빗장을 먼 거리에서 조작할 수 있는 기계 장치에 대한 상세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현은 도면을 조용히 접어들었다. 그리고는 나 서방을 돌아보았다.
“나 서방. 박대감께서는 최근 이 자동 개폐식 창문 장치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습니까?”
나 서방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대감께서는 연세가 드셔서 높은 창문을 여닫는 것이 불편하시다며, 먼 거리에서도 조작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성하지는 못한 것으로 압니다만…”
이현은 피식 웃었다.
“완성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것을 다른 이가 먼저 ‘활용’한 것뿐입니다.”
나 서방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현은 다시 가장 높은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범인은 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나갔습니다.”
“그, 그럴 리가! 빗장은 안에서 걸려 있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 서방이 소리쳤다.
이현은 조용히 손가락으로 창문 윗부분의 긁힌 자국을 가리켰다.
“이 긁힌 자국은 범인이 창문의 빗장을 조작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의 흔적입니다. 박대감께서는 자동 개폐식 창문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고, 그 장치는 아마도 길고 가는 금속 막대나 유연한 줄을 이용해 빗장을 조작하는 방식이었을 겁니다. 범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어떻게…?”
“간단합니다.” 이현은 나 서방을 돌아보았다. “범인은 박대감의 서재에 작은 틈새나, 혹은 미리 만들어둔 작은 구멍을 통해 길고 유연한 도구를 삽입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구로 안쪽에서 걸려 있던 빗장을 연 것입니다. 그리고는 창문을 열고 들어왔겠지요.”
나 서방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들어오는 건 그렇다 쳐도, 나가면서 빗장을 다시 안쪽에서 걸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범인은 범행 후, 다시 창문을 닫고 같은 도구를 이용해 빗장을 안쪽에서 걸었습니다. 창틀 안쪽의 긁힌 자국, 천장의 쇳가루 얼룩은 그 도구가 빗장을 조작할 때 창틀과 천장에 부딪히면서 생긴 흔적입니다. 마치 박대감의 도면에서 본 것처럼, 길고 유연한 금속 막대 끝에 빗장을 조작할 수 있는 특수한 고리가 달려있었겠지요.”
“말도 안 됩니다! 어떻게 그런 정교한 범행이 가능합니까!”
“박대감은 천재적인 발명가였습니다. 그의 발명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 혹은 그 도면을 훔쳐보았던 자만이 가능한 범행입니다. 이 밀실은 박대감 자신의 발명품, 즉 ‘자동 개폐식 창문 장치’를 역이용당한 것입니다.”
이현의 눈은 나 서방의 뒤편에 서 있던 박대감의 조카, 박지환을 향했다.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박지환 나리.” 이현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방 안에 울렸다. “어젯밤, 박대감의 서재에 침입했던 이가 바로 당신이지 않습니까? 당신은 박대감의 발명에 대한 지식과, 그가 만들고 있던 자동 개폐식 창문 장치의 도면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그 장치의 시제품을 몰래 만들어 두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것으로 빗장을 열고 들어가 박대감을 살해한 뒤, 다시 창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 밀실 살인으로 위장한 것입니다.”
박지환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눈빛을 피하며 더듬거렸다.
“무, 무슨 말씀을! 저는 그저… 대감께서 쓰러지시는 소리를 듣고 달려갔을 뿐입니다! 제가 어찌 그런…”
이현은 박지환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 단검은 박대감의 소장품 중 하나였지요? 당신이 대감의 서재에 드나들며 그 단검의 위치와 박대감의 연구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이런 완벽한 밀실 살인을 기획할 수 있었던 겁니다. 천장에 생긴 긁힌 자국은 당신이 도구를 다룰 때 발생한 사소한 실수, 창틀의 쇳가루는 그 도구의 흔적입니다.”
박지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졌고, 눈빛은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찼다. 그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떨기 시작했다.
나 서방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박지환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이현의 설명은 모든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주었다. 박대감의 천재성이 역으로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이현은 차가운 시선으로 무릎 꿇은 박지환을 내려다보았다.
“밀실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공간일 뿐, 그 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은 결국 인간의 손으로 이뤄지는 법입니다. 세상에 완벽한 밀실 살인이란 없습니다. 모든 범죄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기 마련이지요.”
어둠이 걷히고 희미한 여명이 동트는 고택에, 이현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또 하나의 난제였던 밀실 살인 사건은 그렇게, 천재 탐정의 예리한 눈빛과 비범한 통찰력 앞에 무릎 꿇었다. 나 서방은 이현에게 허리 굽혀 예를 표했고, 이현은 다음 사건을 찾아 다시 길고 긴 여정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걸음은 늘 그랬듯 망설임 없이, 오직 진실을 향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