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 아래 시간의 비명
아르카나 마법 학원, 고풍스러운 탑과 은빛 돔으로 이루어진 이 위대한 배움의 전당은 언제나 학생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류진은 그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도 늘 어딘가 붕 뜬 기분이었다. ‘학교의 자랑’이라 불리는 최신식 마법 공학 기숙사 건물에서 벗어나, 그는 낡고 오래된 서관 도서관의 삐걱이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또 여기서 뭘 뒤적거리는 거야, 류진?”
어깨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그는 힐끗 돌아봤다. 융통성 없는 규율 마법사, 키드 교수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를 꿰뚫는 듯했다. 키드 교수는 학생들의 일탈을 코로 맡아내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그냥 오래된 마법 문헌이 궁금해서요. 고대의 수명 연장 마법에 대한 자료가 있다고 해서…” 류진은 능청스레 변명했다.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의 관심은 수명 연장이 아니라, 얼마 전부터 학원 지하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진동과, 귓가에 맴도는 듯한 ‘웅웅’거리는 소리의 근원뿐이었다. 마치 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울리는 소리였다.
키드 교수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의 망토 자락을 훑었다. “네놈의 호기심이 언젠가 목숨을 재촉할 게다. 특히 이 서관 지하 통제 구역만큼은 발도 들이지 마라. 경고했다.”
통제 구역. 류진의 눈이 반짝였다. 낡은 서관의 맨 아래층,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봉인된 그곳. 학생들 사이에서는 ‘죽은 마법사들의 영혼이 떠도는 곳’, ‘학원의 모든 금서가 잠든 곳’ 등 온갖 괴담이 돌았지만, 교사들은 늘 그저 오래된 서고일 뿐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나 류진은 알고 있었다. 서고치고는 너무도 완벽하게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웅웅거리는 소리의 진원지가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키드 교수가 등을 돌려 사라지자마자, 류진은 망토 안에서 낡은 양피지 지도를 꺼냈다. 어둠의 경매장에서 거금을 주고 산 이 지도는 아르카나 학원 초창기 건물 설계도로 추정되는 물건이었다. 지도에는 서관 지하에 ‘미기록 구역’이라는 이름으로 표기된 부분이 있었고, 그곳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결국, 올 것이 왔군.”
그는 조용히 계단을 내려가 서관의 가장 깊은 곳, 철문으로 봉인된 통제 구역 앞에 섰다. 낡은 철문은 수십 개의 마법 봉인 부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일반적인 마법이라면 해제하는 데 며칠은 걸릴 것이다. 하지만 류진은 일반적인 학생이 아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구를 꺼냈다. 특수한 공간 마법이 새겨진 ‘공간의 열쇠’. 이걸 사용하면, 잠시나마 물체의 상이 뒤틀려 봉인을 우회할 수 있었다. 물론 위험 부담은 컸지만, 류진의 심장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좋아, 한번 해볼까.”
그는 숨을 고르고 금속구를 철문에 가져다 댔다. 구슬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퍼지며 문 주위의 공간이 일렁였다. 마치 물속의 잔물결처럼, 봉인 부적들이 잠시 흐릿해졌다. 류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틈새로 비집고 들어갔다. 철문은 그가 완전히 통과하자마자 다시 단단하게 봉인되었다.
안은 예상보다 훨씬 어둡고 차가웠다. 코끝을 스치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쇠와 흙이 뒤섞인 듯한 묘한 비린내가 진동했다. 그는 손에 작은 광원 마법을 일으켜 주변을 밝혔다. 좁은 통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 같았다. 천장에는 거미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벽면에는 이끼가 피어 있었다. 마치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길 같았다.
그리고 그 웅웅거리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단순한 진동이 아니었다. 수많은 파동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울림을 만들어내는 듯했다. 그 소리에 그의 심장박동이 동화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얼마나 걸었을까. 통로의 끝에서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육각형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석실. 중앙에는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제단이 솟아 있었고, 그 위에는 거대한 푸른색 수정 구체가 떠 있었다. 바로 저것이 ‘웅웅’거리는 소리의 근원이었다. 수정 구체는 희미하게 맥동하며 빛을 뿜어냈는데, 그 빛은 차갑고 불길했다.
류진은 조심스럽게 제단에 다가갔다. 제단 주변 바닥에는 낡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지만, 너무 오래되어 알아보기 힘들었다. 수정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그의 몸을 휘감았고, 피부에 닿는 감각이 마치 아주 미세한 바늘 수만 개가 동시에 찌르는 듯했다. 시공간을 뒤트는 듯한 기묘한 어지럼증도 밀려왔다.
그리고 그때, 그는 보았다.
수정 구체 주위의 공간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흐릿한 형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투명한 유령 같기도 하고, 혹은 아직 완전히 실체가 되지 못한 존재들 같기도 했다. 그 형체들은 분명 인간의 형상이었지만, 끔찍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어떤 형체는 머리가 두 개였고, 어떤 형체는 팔다리가 뒤틀려 있었으며, 또 어떤 형체는 몸의 절반만 존재하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게… 대체…”
류진은 숨을 들이켰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형체들 중 몇몇이 아르카나 학원의 교복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낡고 해진 교복, 그러나 분명 학원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는 듯 보였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들의 존재가 사라져 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듯 몸부림쳤다.
그들의 눈은 공허했지만, 류진은 그 속에서 절규를 보았다. 그들은 시공간의 틈새에서 영원히 고통받는 존재들인 것 같았다. 학원 지하의 금기. 그것은 단순히 금지된 마법이 아니었다. 존재를 비틀고, 시간을 뒤섞는,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실험의 결과물이었다.
그 순간, 류진의 눈앞에서 한 형체가 나타났다. 다른 형체들과 달리, 그 형체는 좀 더 선명했다. 갈색 머리에 녹색 눈동자. 그는 분명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학원의 삼 학년 선배, 엘라였다. 몇 달 전, 마법 실험 도중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엘라 선배. 그녀는 분명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바래고, 곳곳이 투명하게 비어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류진은 본능적으로 그 메시지를 알아차렸다.
*“…도망쳐… 이건… 우리 학원이… 아니야…”*
그와 동시에 수정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웅웅’거리는 소리는 순식간에 거대한 폭풍우 소리처럼 변했고, 석실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압력이 류진의 온몸을 짓눌렀다. 그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환영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현재의 아르카나 학원이 아니었다. 모든 건물이 잿더미가 되어 무너져 내리고, 불길이 하늘을 태우는 암흑 같은 미래의 모습. 그리고 그 폐허 속에서, 류진은 한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검은 망토를 걸치고, 섬뜩하게 빛나는 붉은 눈을 가진 존재. 그 존재는 손을 뻗어 무너진 학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크아악!”
류진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정신을 차리자 눈앞은 다시 석실이었다. 하지만 수정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왜곡된 형체들은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신도 저들처럼 시공간의 조각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밑에서 낡은 마법진이 불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석실의 벽면에 숨겨져 있던 거대한 그림자들이 서서히 움직임을 시작했다. 수호자들이었다. 잠들어 있던 금기의 수호자들이 깨어난 것이다.
류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던 길을 되짚어 달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미로 속을 필사적으로 질주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굉음과 알 수 없는 비명 소리가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는 아르카나 학원의 가장 깊은 곳, 가장 끔찍한 진실을 목격해 버렸다.
간신히 봉인 철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공간의 열쇠’를 다시 사용해 문을 열었다. 몸이 통과하자마자 그는 온 힘을 다해 문을 닫았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고, 그의 뒤를 쫓아오던 거대한 그림자는 문에 부딪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류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었고, 온몸은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방금 본 광경들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왜곡된 학생들의 형체, 그리고 그 암울한 미래의 환영.
아르카나 마법 학원. 모든 마법사들의 꿈이자 희망이라 불리던 그곳의 지하에는,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류진은 이제 그 금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는 두려웠지만,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의지가 끓어올랐다.
*도망쳐. 이건 우리 학원이 아니야.*
엘라 선배의 소리 없는 외침이 그의 귓가에 다시 맴돌았다. 류진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 학원은 무엇을 감추고 있는가? 그리고 그 끔찍한 진실은 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이 모든 것을 밝혀내야만 했다. 그게 자신이 목격한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이라 생각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학원 곳곳에 스며든, 평화로운 거짓말 아래 숨겨진 심연의 비명. 이제 류진은 그 비명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의 시간여행은, 어쩌면 이미 그 끔찍한 석실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몰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