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이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듯 으르렁거렸다. 무너진 고층 건물의 뼈대 사이로 스며든 바람은 먼지와 부서진 파편들을 춤추게 했다. 지후는 낡은 방독면 안으로 서걱이는 흙먼지를 느끼며 폐허가 된 도시의 심장부를 응시했다. 회색빛 하늘 아래, 한때는 웅장했을 거대한 쇼핑몰의 잔해가 거인의 시체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이번엔… 기필코.”
그의 목소리는 방독면 안에서 먹먹하게 울렸다. 희망은 사치였지만, 그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등 뒤에 짊어진 낡은 배낭이 어깨를 짓눌렀다. 안에는 며칠 치 식량과 기본적인 도구들뿐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찾는 것은, 이곳에 있을지도 모를 마지막 남은 항생제였다.
무너진 쇼핑몰 입구는 거대한 이빨 빠진 입처럼 쩍 벌어져 있었다.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싸늘한 공기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때 화려했을 진열대들은 찢어지고 부서진 마네킹 팔다리들과 함께 나뒹굴었다. 어둠 속에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섬뜩한 소리를 냈다.
지후는 능숙하게 손전등을 꺼내 주위를 비췄다. 빛줄기가 닿는 곳마다 과거의 흔적들이 유령처럼 드러났다. 스포츠 용품 코너, 가전제품 코너… 그리고 저 멀리, 약국 간판이 희미하게 보였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이 정도 외곽에 있는 곳에서 약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약품은 오래전에 약탈당했거나 부패했을 테니까.
한 칸 한 칸, 그는 움직였다. 귀를 기울이며 숨소리조차 조절했다. 이곳은 그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모지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그 어떤 위험도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곳이었다. 한때 문명이었던 이 거대한 묘지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더욱 끈질기고 사악한 것들뿐이었다.
쿵.
낮고 둔탁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지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손전등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람소리인가? 아니, 바람은 저런 둔탁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는 즉시 가장 가까운 부서진 진열대 뒤로 몸을 숨겼다. 등 뒤로 차가운 금속 파편이 박혔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손전등 불빛을 끄고 숨소리마저 죽였다. 쿵. 쿵.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워진 소리. 그것은 확실히 뭔가가 바닥을 짚고 움직이는 소리였다. 발소리 같기도, 아니면…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렸다. 지후는 조용히 배낭에서 낡은 소총을 꺼냈다. 탄창을 확인했다. 남은 탄환은 여섯 발. 이걸로는 이 건물 전체를 상대할 수 없지만, 최소한 자신을 지킬 수는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의 그림자가 움직였다. 길고 앙상한 그림자. 그러나 이내 그 그림자는 두 개, 세 개로 늘어났다. 사람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움직임과는 달랐다. 굶주림에 지쳐 비틀거리는 듯했고, 무엇보다 그들의 손에는 허술하게 개조된 몽둥이나 녹슨 칼이 들려 있었다. 약탈자들이었다.
그들은 약국 코너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후가 가려고 했던 바로 그곳. 그는 숨을 멈췄다. 약탈자들의 희미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은 다 털렸어… 망할.”
“무슨 소리야, 저기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라고. 혹시 알지? 구석에 뭐라도 남았을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여긴 끝장났어. 다른 곳으로 가야 해. 배고파 죽겠는데!”
“닥쳐! 여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는데? 이 근처는 죄다 우리가 털었잖아! 다른 구역은 더 위험해!”
그들의 목소리에는 절망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셋이었다. 모두 말라붙은 몸에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바닥에 놓여 있던 빈 약병을 발로 걷어찼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 조각이 흩어졌다.
지후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소리에 약탈자들도 일순간 정지했다.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지후가 숨어 있는 쪽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짐승처럼 번뜩였다.
“누구냐!”
남자가 소리쳤다. 그의 손에 들린 녹슨 칼날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지후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들켰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와! 죽고 싶지 않으면 나와!”
또 다른 남자가 몽둥이를 치켜들고 한 발자국 다가섰다. 지후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숨어봤자 불리할 뿐이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소총 끝이 약탈자들을 향했다.
“볼 일만 보고 나갈 거다. 방해하지 마라.”
지후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위협이 담겨 있었다. 약탈자들은 그가 소총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잠시 주춤했다.
“하하! 소총? 그딴 낡은 걸로 뭘 할 수 있는데?”
리더가 비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경계심이 역력했다. 소총은 이곳에서 귀한 무기였다.
“필요하면… 할 수 있는 건 다 한다.”
지후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약탈자들의 뒤편, 어두운 복도 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쿵, 쿵, 하는 발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웠다.
약탈자들도 그 소리를 들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비웃음기가 사라지고, 대신 당혹감과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뭐… 뭐야?”
몽둥이를 든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쿵! 쿵! 쿵!
이제 소리는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이 아니었다. 짐승 같기도 했지만, 그 어떤 짐승도 저렇게 기괴한 형태를 띠지는 않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 드러난 것은 거대한 덩치였다. 무언가가 얼기설기 엉겨 붙어 기형적으로 부풀어 오른 몸. 마치 수십 마리의 쥐들이 한데 뭉쳐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뼈와 살이 뒤틀려 덩어리진 괴물 같기도 했다.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으며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 괴물의 몸 이곳저곳에서 수많은 눈들이 번뜩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크고 작은 눈들이 불규칙하게 박혀, 사방을 응시하고 있었다.
“괴… 괴물이다!”
약탈자 중 한 명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지후와의 대치 따위는 잊은 듯,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괴물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몸을 던졌다. 날카로운 발톱이 공기를 가르며 도망치던 약탈자 중 한 명의 등을 강타했다.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몸이 허수아비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지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저런 괴물은 처음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놈은 두 번째 약탈자를 향해 거대한 앞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탕!
총성이 폐허가 된 쇼핑몰을 뒤흔들었다. 총알은 괴물의 몸에 박혔지만, 놈은 그저 움찔할 뿐이었다. 피부가 너무 두꺼웠다. 놈은 총소리에 반응하듯 지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많은 눈들이 일제히 지후를 응시했다. 섬뜩함에 등골이 오싹했다.
“젠장, 씨알도 안 먹히나!”
지후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연이어 세 발을 쏘았다. 한 발은 놈의 다리에, 또 한 발은 어깨에, 마지막 한 발은 괴물의 목 부분, 그나마 살이 연해 보이는 곳에 박혔다. 괴물은 비로소 휘청거렸다. 찢어지는 듯한 기이한 비명소리를 토해내며, 놈은 바닥에 고여 있던 핏물 속으로 쓰러졌다.
지후는 총탄이 두 발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괴물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했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정도로 죽은 것 같지는 않았다. 놈은 그저 일시적으로 움직임을 멈춘 것뿐일지도 모른다.
주위를 둘러봤다. 약탈자들은 모두 쓰러져 있거나, 이미 괴물의 공격에 목숨을 잃은 듯했다. 약국 코너는 여전히 저 멀리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 그곳으로 향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새로운 위협의 등장. 이것은 단순한 약탈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놈이 쓰러진 곳에서 기이한 푸른 빛이 희미하게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마치 놈의 몸속에서 발산되는 듯했다.
지후는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무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놈이 다시 깨어나기 전에. 더 끔찍한 무엇인가가 몰려오기 전에.
그는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약은? 항생제는? 그 아이는? 모든 것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생존 본능이 그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쿵. 쿵. 쿵.
그가 등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쓰러져 있던 괴물의 몸에서 다시 한번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것은 놈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소리였다.
지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폐허가 된 도시의 심장부에서, 한낮의 어둠 속을 미친 듯이 달렸다. 그의 뒤에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그를 향해 번뜩이고 있을 것만 같은 섬뜩한 예감과 함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