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독립적인 단편 소설

공중도시 아델의 숨 막히는 고요함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수천 년 된 마법으로 하늘에 띄워진 이 거대한 은빛 도시는, 그 어떤 불안도 허락하지 않는 완벽한 평화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 그 완벽함은 피로 물들었다.

“탐정 카이사르, 듣던 대로군.”

경비대장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굳건한 얼굴에도 경악과 혼란이 역력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영원의 서고, 아델의 심장부에 위치한 가장 신성하고 안전하다고 알려진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대마법사 카엘란이 살해당했다.

“듣던 대로라니, 레온 경비대장. 내게는 낯선 풍경인데.”

카이사르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은 부서진 아다만티움 문을 지나 서고 내부를 꿰뚫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은발과 창백하리만치 흰 피부, 그리고 언제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은 보랏빛 눈동자가 그의 천재성을 은유하는 듯했다. 그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위기 앞에서 한없이 냉정하고, 비극 앞에서 조용히 관찰하는.

서고의 중심, 에테르 결정으로 빛나는 거대한 탐색구체(Scrying Orb) 아래에 카엘란 대마법사의 시신이 엎드려 있었다. 그의 등에는 칠흑 같은 그림자로 만들어진 듯한 단검이 깊이 박혀 있었다. 영혼의 그림자 칼, 이계의 물질을 꿰뚫는 저주받은 무기였다.

“자네의 명성은 이미 아델 전역에 자자하네. ‘닫힌 방의 학살자’라는 별명도 있지 않나. 이번 사건이야말로 자네의 별명에 가장 걸맞은 살인 사건일 걸세.” 레온이 한숨을 쉬었다. “보시다시피,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네. 카엘란 대마법사가 스스로 arcane matrix로 잠근 것을 확인했지. 이 방은 아다만티움과 성암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벽과 천장, 바닥에는 고대 차원 이동 방지 마법이 걸려 있다네. 창문은 물론, 공기구멍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밀실이야.”

카이사르는 말없이 서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 하나 없이 유려했다. 그는 먼저 시신을 응시했다. 카엘란의 표정에는 공포보다는 의아함이 서려 있었다. 마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시신은 언제 발견되었지?”

“오늘 새벽, 카엘란 대마법사가 정기 서한 회의에 나타나지 않아 비스콘트 세르디우스 경이 찾아왔다가 발견했네. 억지로 문을 부수고 들어설 수밖에 없었지.”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다는 건 어떻게 확인했나?”

“문 안쪽에 걸린 arcane matrix 봉인이 완벽했네. 마법 잠금 해제를 시도했지만, 안에서부터 걸린 봉인은 바깥에서 풀 수 없었지. 결국 물리적으로 파괴할 수밖에 없었다네.”

카이사르는 시신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바닥에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그림자 단검은 그 자체로 생명을 빨아들이는 흉기였다. 그는 방의 벽을, 천장을, 바닥을 손끝으로 훑었다. 성암석의 차가운 질감과 고대 룬 문자의 흔적이 손끝에 느껴졌다. 분명 견고하고, 단단한 방이었다.

“수상한 점은 없나?”

“아무것도. 침입의 흔적도, 탈출의 흔적도. 심지어 마력의 잔류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네. 그림자 단검 자체가 주변 마력을 흡수하니… 맙소사, 카이사르. 이건 유령의 짓인가?” 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카이사르는 아무 말 없이 탐색구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대한 수정구체는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며 서고 전체를 밝히고 있었다. 그 구체는 아델의 마법 에테르를 흡수하여 작동했으며, 수많은 에테르 결정들이 마치 별처럼 박혀 있었다. 그는 탐색구체 주변에 박힌 수십 개의 에테르 결정들을 하나하나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파동을 감지하려는 듯.

“탐색구체에 연결된 에테르 결정의 마력 흐름은 어떤가?”

“완벽하네. 이 구체는 아델의 주요 마력 흐름과 직결되어 있어. 이곳의 마력에 문제가 생기면 도시 전체가 영향을 받지.”

“모든 결정이 완벽한가?” 카이사르의 시선은 탐색구체의 가장 위쪽에 박힌, 유독 다른 결정들보다 약간 큰 하나의 에테르 결정에 멈춰 있었다.

“그럼. 모두 최고 등급의 결정들이네. 혹시…”

레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카이사르는 탐색구체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문제의 결정에 닿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 결정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다른 결정들과는 미묘하게 다른, 아주 미세한 균열이 그의 손끝에 감지되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균열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 주변으로 아주 희미한, 다른 마력의 잔류가 느껴졌다.

“레온 경비대장.” 카이사르의 목소리에는 어조의 변화가 없었지만, 그 속에는 명확한 단정함이 실려 있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네.”

레온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 그럼 카엘란 대마법사는 혼자서 자살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림자 단검으로?”

“아니.” 카이사르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범인은 이 방 밖에 있었네. 그것도 살해 당시에는, 아주 먼 곳에 있었을 걸세.”

레온은 말을 잃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지. 육체를 지닌 존재는 들어올 수 없어. 차원 이동도 불가능하지. 그러나, 물리적인 접촉이 아닌, 마법적인 매개를 통한 침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네.”

카이사르가 문제의 에테르 결정을 다시 한번 손가락으로 훑었다.

“이 에테르 결정은 다른 것들보다 미세하게 불완전하네. 아주 작은 균열이 있지. 이것은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지만, 특정 주파수의 마법 진동에 노출되면 잠시 동안 시공간적인 미세한 불안정성을 띠게 돼. 마치 차원의 장막이 아주 잠깐, 실 한 가닥만큼 얇아지는 것처럼 말이야.”

레온은 숨을 들이켰다.

“이 그림자 단검은 순수한 이계의 물질이네. 육체를 지닌 물질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 이런 종류의 단검은 아주 짧은 순간의 차원 변칙을 통해 ‘밀어 넣어질’ 수 있어. 범인은 카엘란 대마법사의 일과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을 걸세. 그가 이 방에 들어와 문을 걸어 잠그고 안전하다고 믿는 순간을 노린 거지.”

카이사르의 시선은 탐색구체 아래, 카엘란의 시신이 쓰러진 지점을 가리켰다.

“이 결정과 시신이 쓰러진 지점을 보게. 완벽하게 일직선을 이루고 있지. 범인은 아마 아주 정밀한 조준 마법으로, 밖에서 특정 마법 진동을 이 결정에 집중시켰을 걸세. 그 미세한 균열을 통해 일시적인 차원 균열을 만들어내고, 그 틈으로 그림자 단검을 정확히 카엘란의 심장으로 밀어 넣은 거지. 단검이 워낙 비물질에 가까운 특성을 가졌으니 가능했던 일일세.”

“말도 안 돼… 그런 정밀한 마법이라니… 그리고 어떻게 문이 안에서 잠겼다는 걸 확인한단 말인가?” 레온이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카엘란 대마법사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을 걸세. 완벽한 안전을 믿고. 범인은 그 후에 마법을 발동시킨 거지. 카엘란이 문을 잠갔다는 것은, 그가 살아 있을 때 이 방이 완벽하게 보호되고 있다고 믿었다는 증거일 뿐, 살인자가 이 방에 들어왔다는 증거가 아닐세.”

카이사르는 탐색구체에서 손을 떼고는, 서고의 출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범인은 이 에테르 결정의 미세한 약점과 그림자 단검의 특성, 그리고 카엘란 대마법사의 습관을 모두 알고 있었던 자네. 완벽한 밀실 살인을 계획한 거지. 이제 우리는 범인이 사용했을 마법의 잔류를 이 결정에서부터 추적하고, 범인이 사용했을 정밀 마법의 종류와 그 마법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을 찾아내야 하네.”

카이사르의 보랏빛 눈동자가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그의 천재적인 추리는 이미 범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듯했다. 공중도시 아델의 평화는, 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논리 앞에 산산이 부서졌다. 진정한 악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곳에서, 가장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꿰뚫어 보는 것은, 오직 탐정 카이사르의 몫이었다.

“그럼, 이제 사냥을 시작해 볼까, 레온 경비대장.”

그의 목소리는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폭풍의 전조가 담겨 있었다. 레온은 침묵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