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님,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적만이 흐르던 브릿지에 지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패널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아틀라스호는 수만 광년 떨어진 미지의 성간 영역, ‘침묵의 바다’ 한가운데서 표류하는 작은 점에 불과했다. 그리고 지금, 그 침묵이 깨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민준 선장은 굳게 다문 입술을 겨우 열었다. “어떻게, 박사?”
지아는 패널에 띄워진 파형들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이건… 저희가 지금까지 접했던 어떤 물질의 스펙트럼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순수 에너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체 물질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고체… 아니, 그보다 더 복잡합니다.”
홀로그램 중앙에는 어제 탐사팀이 외곽 궤도에서 발견한 미지의 유물 이미지가 떠 있었다. 검고 매끄러운 표면은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듯했고, 그 형태는 기이할 정도로 비정형적이었다. 마치 물결치듯 일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암석 조각 같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은 우주의 모든 상식을 뒤엎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민준의 뇌리를 스쳤다.
현우가 거친 숨을 내쉬며 조종석에서 몸을 돌렸다. “말씀하신 ‘살아있는 고체’라는 게… 설마, 생명체입니까?”
“표면 온도 0.0001켈빈. 완벽한 진공 상태에서도 열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고, 오히려 주변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선 미세한 파동이 감지돼요. 규칙적이고… 아주 느리지만, 분명한 파동입니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지아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경외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떨림이었다.
정세연 의무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선장님, 의무 규정에 따르면 미지의 생명체 혹은 유기 물질 접촉 시 최소 72시간 격리가 원칙입니다. 혹시 모를 오염이나 감염의 위험이….”
“생명체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는데 격리는 무슨.” 현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격리실까지 들고 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 놈… 아니, 그 물건이 탐사 드론의 모든 센서를 먹통으로 만들었거든요. 겨우 스캔 한 번 성공한 것도 기적입니다.”
“현우 말이 맞습니다.” 민준은 심호흡을 했다. “지아 박사, 지금 그 유물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직… 소행성 표면에 있습니다. 직접 가져오려다가 드론 한 대를 잃었습니다. 그 물건 근처에 접근하자마자 드론의 동력 시스템이 일순간 마비됐어요. 겨우 회수된 드론은 내부 회로가 모두 타버린 상태였습니다.”
브릿지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다시 찾아왔다. 우주선 내부의 미약한 기계음만이 그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홀로그램 속의 검은 유물을 향했다. 그것은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변함없이 차갑게 빛을 흡수하고 있었다.
“…위험합니다. 선장님.” 세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물질이 전자기기에 영향을 준다는 건, 인간에게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당장 회수를 중단하고, 추가 조사를 위한 원격 분석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현우도 세연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정체불명의 위험을 함부로 함선 안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탐사 목적은 미지의 발견이지만, 승무원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민준은 창밖의 광활한 어둠을 응시했다. 침묵의 바다는 이름 그대로 어떤 생명체나 문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죽은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모든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듯한 존재가 발견되었다. 인류가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한 미지의 존재. 어쩌면 이 발견은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었다. 아니, 바꿔야만 했다.
“지아 박사.” 민준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 물건의 ‘심장 박동’ 패턴… 뭔가 특이점은 없습니까?”
지아가 손을 놀려 파동 그래프를 확대했다. “네, 있습니다. 이 파동은 단순한 리듬이 아닙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미묘하게 변조되는 구간이 포착됩니다. 마치… 어떤 정보처럼 보입니다.”
그녀가 그래프의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파동은 주기적으로 짧게 끊어지고, 다시 이어졌다.
“이게 뭘까요?” 현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저도 아직 해석 불가입니다. 하지만… 단순한 자연 현상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너무나도 정교하고, 반복적입니다. 마치,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처럼요.”
그 순간, 브릿지 전체를 감싸던 희미한 조명이 갑자기 깜빡였다. 시스템 경고음조차 울리지 않은 채, 조명이 꺼졌다 켜지는 것이 순식간이었다.
“뭐지?” 현우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력 시스템에 문제없는데?”
“일시적인 오류인가?” 민준이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홀로그램 속 유물로 향했다. 유물은 여전히 어둠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고요했다.
“잠깐만요.” 지아가 화면에 코드를 입력했다. “이게… 무슨?”
그녀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홀로그램 패널에 유물의 파동 그래프와 함께 새로운 데이터가 빠르게 스크롤 되고 있었다.
“방금… 유물 근처의 소행성에서 미세한 에너지 파동이 감지됐습니다. 저희 함선의 전력 시스템과 간섭 현상이 발생한 것 같아요. 그것도… 아주 미묘하게, 저희 함선의 시스템과 동기화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민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물은 소행성에 있었고, 함선은 궤도를 따라 돌고 있었다. 직접적인 접촉은 없었다. 그런데도, 함선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인가?
“동기화… 라니요?” 세연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지아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마치… 저희 함선의 시스템과 교감하려는 것처럼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저희 함선의 에너지를 ‘읽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방금 그 깜빡임은… 마치, 그 유물이 저희 함선 시스템에 처음으로 ‘인사’를 건넨 것처럼 느껴져요.”
브릿지 안의 모든 시선이 다시 홀로그램 속의 검은 유물에 꽂혔다. 그 순간, 화면 속 유물의 검은 표면이 아주 미세하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일렁이는 것을 민준은 똑똑히 보았다. 마치 깊은 심연 속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이제 막 눈을 뜨는 것처럼.
정세연 의무관의 손이 저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현우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선장님…” 지아의 목소리는 이제 완전히 갈라져 있었다. “저 유물…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아틀라스호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꺼졌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