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화. 심연의 메아리
고요. 그것은 우주의 이름이자, 이 망망한 심연을 유영하는 모든 이들의 숙명이었다. 별무리호의 함교는 희미한 초록빛 조명 아래, 나직한 기계음과 산소 공급 장치의 규칙적인 숨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거대한 전면 스크린 너머로는 수억 광년 떨어진 은하들의 빛이 점처럼 박혀, 마치 검은 벨벳에 흩뿌려진 다이아몬드 가루 같았다.
“이하린 통신장, 특이사항은?”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함교 중앙의 함장석에 기댄 이선장은 나이 지긋한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만큼이나 오랜 세월 우주를 항해해온 베테랑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망원경이 된 스크린 속, 손톱만 한 빛의 조각을 쫓고 있었다.
“현재까지 없습니다, 함장님. 주변 소행성 분포, 에너지 파동, 미세 중력 이상 모두 정상 범위 내입니다. 다만….”
이하린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스물 셋, 이제 막 실습을 마치고 배치된 햇병아리 통신장교인 그녀에게 우주는 아직 버겁고 두려운 존재였다. 수십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완벽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거대한 미지의 공간은, 때로 그녀의 심장을 저 깊은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기분 나쁜 전율을 안겨주곤 했다.
“다만 뭐지, 이하린 통신장?” 이선장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이 묻어났다. 끝이 흐려지는 보고는 언제나 그녀의 인내심을 시험했다.
“그게…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한, 아주 특이한 파동이 감지되는 것 같아서요. 거의 노이즈에 가까워서 수치화하기도 어렵습니다. 뇌파 같아요… 아주 희미한 뇌파.” 하린은 자신의 모니터를 다시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함교 한쪽에서 늘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뇌파라고? 설마 외계 생명체인가? 이선장님, 저번에 제가 제안했던 극점 탐사 계획,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겁니까!”
흥분한 김박사는 기다란 팔을 휘두르며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그는 별무리호의 수석 과학 고문이자 탐사대장이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그의 끝없는 호기심은 가끔 무모함으로 비치기도 했지만, 그의 재능은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닥터 김. 그 ‘희미한 뇌파’라는 게, 통신장의 과로로 인한 환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수십 년 우주를 떠돌아도 아직 정착된 생명체 하나 못 찾아낸 게 이 별무리호의 업적 아니었나?”
엔진실에서 막 올라온 듯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박기사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는 늘 김박사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못마땅해했다. 박기사는 현실주의자였고, 그의 우주는 언제나 계산 가능한 숫자와 기계의 논리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박기사, 우주는 자네 생각보다 훨씬 넓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경이롭다네! 이하린 통신장, 어디서 감지되는 파동이지? 위치를 특정할 수 있겠나?” 김박사가 하린의 모니터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하린은 긴장하며 자신의 콘솔에 손을 얹었다. 그녀는 사실 자신이 정말 잘못 들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워낙 미약한 신호였기에, 그저 잠 못 이룬 밤이 만들어낸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박사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기대감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너무나… 넓게, 그리고 너무나 작게 퍼져 있습니다. 마치… 저 멀리서 부르는 작은 속삭임처럼요. 그런데, 지금… 조금 더 선명해졌습니다! 아니, 이건…!”
하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콘솔의 파형 그래프가 순간적으로 솟아오르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그러나 여전히 기이한 패턴을 그렸다. 그것은 뇌파가 아니었다. 뇌파처럼 일정하지만, 그 안에 담긴 정보의 밀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듯했다. 마치 수억 개의 문장이 압축된 단어 하나처럼 느껴졌다.
“흥분하지 마라, 이하린. 이선장, 이건 정말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우주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느낌입니다!” 김박사의 얼굴에도 진지함이 드리워졌다.
이선장은 굳은 표정으로 함교의 모든 모니터를 훑어보았다. 전면 스크린 속 별들의 바다가 갑자기 더욱 차갑고 낯설게 느껴졌다.
“박기사, 선체 이상 유무 점검. 닥터 김, 탐사 프로브 발사 준비. 이하린 통신장, 해당 신호의 위치와 발생원을 최우선적으로 추적한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네…!”
하린은 손가락으로 빠르게 콘솔을 조작했다. 그녀의 미세한 감각이 포착한 신호는 이제 명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반적인 센서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아주 높은 주파수의 에너지.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을 발견한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발생원, 특정! 좌표 XX-YY-ZZ입니다. 그런데… 이건…”
하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스크린 한쪽에 뜬 좌표는 지금 별무리호가 향하고 있는 미지의 심우주 한가운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그 좌표 옆에 붙은 에너지 시그니처였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 형태와도 달랐다. 측정 불가능할 정도로 깨끗하고, 동시에 압도적으로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었다.
“맙소사… 이건 대체…” 김박사가 스크린에 얼굴을 바싹 대고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경외감과 함께 광기 어린 호기심이 번득였다.
“수십억 년간 우주를 항해하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패턴이다.” 이선장의 목소리에는 드물게도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눈은 신호의 발생원을 향하고 있었다.
“함장님, 강력한 에너지 반응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에너지가 외부로 발산되지 않고, 마치 내부에서 스스로 순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완전히 밀봉된… 어떤 물체인 것 같습니다.” 하린이 숨을 헐떡이며 보고했다.
“물체라고? 이 방대한 우주 한가운데에, 아무도 보지 못했던 물체가… 스스로 에너지를 내며 떠다닌다는 말인가?” 박기사의 목소리마저 일렁였다.
이선장은 결연한 표정으로 조종석에 앉은 조타수에게 명령했다.
“항로 변경, 발생원으로 접근한다. 속도는 최대로. 전 승무원은 비상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닥터 김, 탐사 프로브는 최종 단계까지 준비하고 대기. 박기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모든 시스템을 수동 조작 가능한 상태로 전환.”
“함장님! 아직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김박사가 반색하며 말했다.
“우리는 탐사선이다, 닥터 김. 안전만 생각했다면 진작에 지구로 돌아갔어야지.” 이선장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전례 없는 발견일세.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별무리호는 가속하여 미지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린은 긴장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지만, 왠지 모르게 설렘과 불안감이 뒤섞인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녀의 감각이 포착한 그 ‘뇌파 같은’ 신호는 이제 더욱 강렬하게 그녀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그녀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몇 시간 후, 전면 스크린에는 더 이상 별무리 은하의 잔상이 아닌, 거대한 미지의 존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것은…!” 김박사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검은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그것은, 인간의 상상으로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거대한 수정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부드러운 유기체처럼 맥동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타원형을 띠고 있었으나, 표면에는 복잡하고 섬세한 문양들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은 차갑고 영롱했으며, 보는 이의 시선을 강렬하게 빨아들이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크기 측정! 최소 직경 약 20km, 최대 직경 약 35km! 밀도는… 측정 불가입니다! 센서가 오류를 일으킵니다!” 하린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에너지 파동은?” 이선장이 물었다.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상해요. 이 에너지는 우리 함선의 에너지와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공명하는 듯합니다.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아요.”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그 순간, 화면 속의 미지의 물체에서 가장 밝게 빛나던 문양 하나가, 마치 그녀를 향해 손짓하듯 강렬하게 섬광을 터뜨렸다. 그 빛은 스크린을 뚫고 나와 그녀의 눈동자에 박히는 듯했다. 하린은 순간적으로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머릿속으로, 어떤 목소리가 울렸다.
*‘찾았다… 나의 아이여.’*
그것은 너무나 명료하고, 너무나 깊숙이 파고드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분명히 한국어가 아니었다. 어떤 언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 오직 감각으로만 이해되는 순수한 메시지였다.
“하린 통신장, 괜찮은가?” 이선장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렸지만, 하린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하린은 그대로 얼어붙은 듯 스크린을 응시했다. 화면 속의 물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만 보이는 희미한 빛의 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의 선은, 마치 거대한 유물이 그녀를 향해 자신의 일부를 내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손에 쥐여 있던 펜던트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평소에는 그저 차가운 금속 장식에 불과했던, 어머니의 유품인 작은 별 모양 펜던트였다. 펜던트는 그녀의 심장 박동과 함께 격렬하게 맥동하며, 그 미지의 빛과 교감하고 있었다.
“어머니…” 하린은 저도 모르게 작은 신음을 흘렸다. 그녀의 눈앞에서, 별 모양 펜던트가 푸른빛을 내뿜으며 공중으로 떠올랐다.
함교 안의 모든 시선이 하린과 그녀의 펜던트에 꽂혔다.
“이하린 통신장! 대체 무슨 일인가?!” 이선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하린은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펜던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그녀의 몸을 감쌌고, 이윽고 그녀의 주변 시공간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전면 스크린 속 미지의 유물은 더욱 강렬하게 빛을 내뿜었고, 유물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빛의 가닥들이 하린을 향해 돌진했다.
“이건… 대체 무슨 조화인가!” 김박사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별무리호는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시스템에 경고음이 울리고, 조명은 불안정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혼란의 한가운데서, 이하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몸을 감싼 빛은 점점 더 강렬해지더니, 마침내 그녀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그리고 이윽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단지, 심우주의 거대한 유물이 섬뜩할 만큼 고요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 1화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