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독립적인 단편 소설

엘드론 마법 학원. 고색창연한 돌벽에는 푸른 이끼가 켜켜이 앉았고, 뾰족한 첨탑들은 구름을 뚫을 듯 하늘로 솟아 있었다. 이 유서 깊은 학원에 몸담고 있는 이들 모두가, 고대 마법의 정수를 탐구하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하지만 시우에게 이곳은 그저 지루하고 답답한 곳일 뿐이었다. 그는 늘 ‘금지된’ 것들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아이였다.

“시우, 또 어디 가려고?”

복도를 지나던 리안이 힐끗 눈짓하며 속삭였다. 시우는 어깨를 으쓱하며 씨익 웃었다.

“금지된 곳 말고 어디 가겠냐.”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학원의 오래된 도서관, 그 중에서도 ‘열람 불가’ 표지판이 걸린 구석으로 향했다.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인 그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죽은 공간 같았지만, 시우에게는 살아있는 미지의 보고였다. 손때 묻은 책들을 뒤적이던 시우의 손에 유독 낡고 헤진 가죽 표지의 일지가 잡혔다. 누군가 급하게 숨기려 했던 듯, 책장 틈새에 위태롭게 끼어 있던 것이었다.

『제11 금지 구역… 심장…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리니.』

희미하게 알아볼 수 있는 글자들이 마치 뱀처럼 시우의 뇌리를 휘감았다. 일지의 뒷면에는 손으로 그린 듯한 조악한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학원 지하의 구조를 대략적으로 나타낸 그림이었는데, 그 어디에도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듯한 깊은 구역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곳의 이름은 단 하나, ‘심연의 핵’.

“심연의 핵이라….”

시우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학원 지하에는 오래된 마법 실험실과 물품 창고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심연의 핵’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선배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던 ‘절대 내려가서는 안 될 곳’이 혹시 이곳일까? 시우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지도를 외워 그 자리에 일지를 다시 숨겨두었다.

며칠 밤낮을 밤새워 지도를 분석하고, 학원의 오래된 기록들을 샅샅이 뒤졌다. 교수들은 늘 학생들의 안전을 이유로 지하 깊숙한 곳의 접근을 엄격히 제한했고, 심지어 정기적인 마법 감시까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우는 알고 있었다. 오래된 마법은 허점투성이였고,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어느 날 밤, 시우는 조용히 기숙사를 빠져나와 학원 지하로 향했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발목을 휘감았고, 희미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성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낡은 복도를 따라 내려갈수록 마법 감시의 기운은 더욱 희미해졌다. 시우는 지도를 따라 벽의 숨겨진 레버를 당겼고, 묵직한 돌벽이 굉음을 내며 미끄러지듯 열렸다.

“젠장… 진짜였잖아.”

숨겨진 통로는 지하의 가장 아래층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두컴컴한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자, 통로는 거대한 석실로 이어졌다. 석실 안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고, 이따금씩 ‘웅웅’거리는 낮은 진동음만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 진동은 학원 전체를 지탱하는 마력의 근원 같기도 했고, 거대한 짐승의 맥박 같기도 했다.

시우는 손에 든 마법등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석실의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돔 형태의 그것은 매끄러운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표면에는 고대 마법의 문양들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마치 살아있는 듯 희미한 빛을 내뿜는 거대한 수정 덩어리가 박혀 있었다. 수정은 기묘한 형태로 뒤틀려 있었고, 그 속에서는 마치 물결처럼 마력이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이게… ‘심연의 핵’인가?”

홀린 듯이 수정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 감촉과 함께 알 수 없는 고통이 그의 손끝을 찌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수정 덩어리가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맹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시우는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눈앞의 풍경이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고, 몸은 마치 무중력 공간에 던져진 듯 속절없이 흔들렸다. 빛과 어둠, 그리고 찰나의 침묵. 모든 것이 정지한 듯한 그 순간, 시우는 발이 땅에 닿는 것을 느꼈다.

눈을 떴을 때, 시우는 여전히 그 석실 안에 서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낡고 헤졌던 석실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공기 중에는 묵직한 마법 에너지와 함께 서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자신과 똑같은 ‘심연의 핵’이 섬뜩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기계 주변에는 낯선 이들이 서 있었다. 낯익은 학원 제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은 지금의 학원생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대의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걸친 이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늙었지만 강렬한 눈빛을 지닌 남자였다. 시우는 순간, 학원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대마법사 아르젠’의 초상화가 떠올랐다.

“오늘로서, 엘드론의 영원한 심장이 완성되리라.”

아르젠의 목소리는 석실에 낮게 울려 퍼졌다. 그의 주변에 모여 있던 마법사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함께 섬뜩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시우는 숨을 죽인 채 몸을 벽 뒤로 숨겼다. 이건 꿈인가? 아니, 너무나도 생생했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 귀에 들리는 목소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그때, 마법사들이 기계의 한 부분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여러 개의 투명한 원통형 용기가 일렬로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 안에는…!

시우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용기 안에는 기이하게 일그러진 형태로, 마치 잠들어 있는 듯한 ‘사람’의 형상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의 피부는 창백했고, 눈은 감겨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몸짓과 느리게 움직이는 심장 박동이, 그들이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은 학원의 제복을 입고 있었다. 젊은 학원생들이었다.

“이제… 마지막 의식이다.”

아르젠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대의 마법 언어가 석실을 가득 채웠고, ‘심연의 핵’의 수정은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그의 손짓에 따라 기계의 복잡한 마법진들이 빛나기 시작했고, 용기 안에 갇힌 학원생들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흐읍… 윽…!』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신음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빛은 실타래처럼 얽혀 수정 덩어리로 빨려 들어갔다. 학원생들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그들의 눈에서는 핏물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들의 생명력이, 그들의 영혼이, 끔찍한 기계를 통해 순수한 마법 에너지로 변환되고 있었다.

이것이… 엘드론 마법 학원의 ‘심장’이었다. 학교의 무궁무진한 마력이, 학원생들의 생명력을 강탈하여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모든 번영과 힘이, 수많은 젊은 영혼들의 비명을 먹고 자란 것이었다.

시우의 몸이 얼어붙었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차가운 얼음 송곳 같았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금기였다. 마법사들의 얼굴에는 죄책감이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그저 ‘위대한 마법’을 향한 집착과 광기만이 서려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희생자들의 빛이 완전히 흡수되자, 그들의 몸은 마치 미라처럼 바싹 말라붙었고, 이내 먼지가 되어 용기 안에서 사라졌다. ‘심연의 핵’은 더욱 맹렬한 빛을 뿜어냈고, 석실 전체는 거대한 마력으로 가득 찼다.

아르젠의 만족스러운 미소가 시우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으로 엘드론은 영원할 것이다. 우리 학원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마법의 전당이 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었다. 시우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자신이 서 있는 이 학원이,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즐기던 이 장소가, 지하실 깊숙한 곳의 이 끔찍한 희생 위에서 꽃피운 것이란 말인가.

순간, ‘심연의 핵’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감았다. 다시 한번 시공간이 뒤틀리는 감각. 몸이 산산조각 나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는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차가운 돌바닥 위로 몸이 털썩 주저앉았다. 시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눈앞에는 방금 전 자신이 만졌던, 낡고 오래된 ‘심연의 핵’이 서 있었다. 석실은 다시 먼지 쌓인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흐읍… 하아…!』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과 함께 현실로 돌아온 시우는 구토를 참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모든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과거의 차가운 공기, 희생자들의 신음소리, 아르젠의 광기 어린 목소리… 그 모든 것이 방금 일어난 일처럼 선명했다.

“젠장… 젠장할!”

시우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의 눈에 비친 ‘심연의 핵’은 더 이상 단순한 마법 장치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영혼을 먹어치운 괴물이었다. 그리고 학원 전체를 감싸고 있던, 그 미묘한 진동과 ‘웅웅’거리는 소리가 이제는… 수많은 영혼들의 끊이지 않는 비명처럼 들려왔다.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지금 이 순간에도, 학원의 교수들이 사용하는 강력한 마법, 학생들이 배우는 화려한 마법들은 이 ‘심연의 핵’을 통해 공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핵은… 과거의 끔찍한 금기를 통해 만들어졌고, 어쩌면 지금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잔혹한 마력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시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눈빛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호기심 많던 소년의 눈은 사라지고, 깊은 절망과 함께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어두운 빛이 감돌았다.

엘드론 마법 학원. 이곳은 빛나는 마법의 전당이 아니었다. 그림자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거대한 무덤이었다. 시우는 그 무거운 진실을 혼자서 짊어진 채, 어두운 석실을 뒤로하고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침묵할 수는 없다는 것만을 어렴풋이 느낄 뿐이었다. 학원의 모든 소리가, 그의 귓가에 영원히 울려 퍼질 비명으로 변해버린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