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실의 그림자
밤하늘을 찢는 듯한 비명이 무림맹 본단의 침묵을 갈랐다. 새벽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시각, 맹주부가 위치한 웅장한 백호각(白虎閣)은 순식간에 혼돈의 도가니로 변했다. 수십 명의 무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비명이 터져 나온 곳, 남궁세가(南宮世家) 가주 남궁혁(南宮赫)의 거처로 달려갔다.
“무슨 일이냐! 감히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가 누구냐!”
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지만, 그 소리마저 공포에 질린 이들의 외마디 비명을 덮지 못했다. 가장 먼저 문을 부수고 들어간 무림맹 호위대장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뛰쳐나왔다. 그의 눈은 마치 망령을 본 듯 흔들리고 있었다.
“가… 가주께서… 가주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천둥 같은 소식에 백호각 주변은 삽시간에 정지했다. 남궁혁. 무림맹의 중진이자 남궁세가의 가주. 천하에 그를 능가하는 검법을 가진 자가 몇 없다고 일컬어지던 강호의 거목. 그런 그가… 죽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 남궁 가주께서 어찌 될 리가 없지 않느냐!”
맹주 백련(白蓮)이 창백한 얼굴로 달려 나왔다. 그녀의 뒤를 이어 여러 문파의 장로들과 고수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들은 호위대장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분노와 불안이 뒤섞인 표정으로 방 안을 향해 몰려갔다.
방 안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남궁혁의 시신은 방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시뻘건 비수가 깊숙이 박혀 있었고, 흘러나온 피가 묵직한 의자 등받이와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눈은 형형하게 뜨여 있었고, 얼굴에는 죽음 직전까지 그를 짓눌렀던 극심한 고통과 경악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이럴 수가…!”
몇몇 노장들은 주저앉아 고개를 흔들었다. 어떤 이는 분노에 차 주먹을 불끈 쥐었고, 또 어떤 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가장 먼저 시신에 다가간 이는 무림맹 의원(醫員)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신을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돌아가신 지 두 시진은 된 듯합니다. 흉기는… 단도로 보입니다. 치명상이었습니다.”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백련 맹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 안을 꿰뚫었다. 그녀의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다. 남궁혁은 무림맹의 핵심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무림 전체를 뒤흔들 대사건이었다.
호위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맹주님… 더 기이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방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습니다. 창문은 모두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밖에서는 도저히 침입할 수 없었습니다. 방 안에는 남궁 가주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밀실(密室)이었습니다.”
호위대장의 말에 방 안은 다시 한번 술렁였다. 밀실 살인? 아무도 침입할 수 없는 방에서, 외부의 흔적도 없이, 무림의 최고 고수 중 한 명이 죽었다? 이것은 무언가 섬뜩하고 기이한 일이었다.
“스스로를 해쳤다는 말이냐? 남궁 가주께서?” 한 장로가 반문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경악이 역력합니다. 자진(自盡)한 자의 표정이 아닙니다.” 의원이 단호히 말했다.
모두가 혼란에 빠져 있을 때, 문가에서 한 남자가 조용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여느 무사들과는 달리 검은 도포를 걸치고, 허리에는 아무 무기도 차고 있지 않았다. 얼굴에는 흥미로운 미소가 희미하게 걸려 있었고, 그의 눈동자는 방 안의 모든 것을 훑어보는 듯 빛났다.
그는 바로 사현(思賢)이었다. 강호에서는 그를 ‘추리객(推理客)’이라 불렀다. 무공은 평범했지만,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지혜와 통찰력으로 강호의 난제들을 해결해온 기인 중의 기인이었다. 맹주 백련의 초대로 이번 무림맹 회의에 ‘고문’ 자격으로 참석 중이었다.
백련 맹주가 그를 발견하고는 급히 불렀다. “사현 고문! 어서 오십시오!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대뿐이오!”
사현은 빙긋 웃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태도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방 안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유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시신에 다가가지 않고, 방 안을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바닥, 벽, 천장, 그리고 창문과 문. 그의 시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한참을 둘러보던 사현은 마침내 문 앞에 섰다. 그는 문을 한 번 두드려보고, 안쪽의 빗장을 살펴보았다.
“이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강제로 부수지 않는 한 열 수 없었다는 말이로군요.” 사현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방 안의 모든 시선은 그에게 집중되었다.
호위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가 오기 전까지는 완벽한 밀실이었습니다.”
사현은 다시 방 중앙의 시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한 발짝씩 다가가, 남궁혁의 시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 흉기에 박힌 단도, 그리고 그 주변의 피. 그는 허리를 굽혀 피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보더니,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피가 묻은 손가락을 닦아냈다.
“음…”
사현은 짧은 탄식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천천히 방 안을 다시 한번 훑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예리하고 날카롭게, 마치 방 안의 모든 먼지 한 톨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문득 방 한구석, 옷가지들이 널려 있는 병풍 뒤편에 멈췄다. 그는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갔다. 병풍을 치우자, 그 뒤에는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찻잔 몇 개와 다과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탁자 옆, 벽에는 작은 틈이 보였다.
“이것은…” 백련 맹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현은 그 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아주 작은 틈입니다. 쥐 한 마리도 드나들기 어려울 정도의 틈새지요.”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방 중앙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빙긋 웃었다. 그의 미소에는 어떤 확신과 함께, 모두가 놓친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한 묘한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누가 남궁 가주를 살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밀실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해서는… 감히 짐작 가는 바가 있습니다.”
사현의 말에 방 안의 모든 시선이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긴장과 기대감이 뒤섞인 침묵 속에서, 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범인은 이곳에 없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이 방에는 남궁 가주 혼자만이 존재했습니다. 살인자는… 그림자처럼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현의 마지막 말은 마치 차가운 얼음 송곳처럼 모두의 심장을 꿰뚫었다. 방 안은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살인자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궁혁은 대체 누구에게 살해당했단 말인가? 그의 말은 모두를 더 깊은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듯했다.
그러나 사현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시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이제 막 첫 번째 칼날이 뽑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칼날은, 모두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