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도시의 밤은 늘 그랬듯 활기찼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불빛들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비늘처럼 반짝였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는 숨 가쁜 심장 박동 같았다. 하지만 현우의 열 평 남짓한 공간은 그 모든 소란으로부터 고립된, 고요한 섬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늦은 퇴근이었다. 넥타이를 풀고 셔츠 단추를 하나둘 풀어헤치는 그의 움직임에는 만성적인 피로가 배어 있었다.

“후으…”

짧은 한숨과 함께 소파에 몸을 던졌다. 낡았지만 편안한 가죽 소파는 그의 무게를 아는 듯 깊게 가라앉았다. 냉장고에서 대충 꺼낸 음료수를 들이켜고, 잠시 눈을 감았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 내일도, 모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그는 그 단조로움에 익숙했고, 때로는 안도하기까지 했다.

탁.

작은 소리였다. 마치 손가락으로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는 듯한. 현우는 눈을 떴다. 거실의 유리 탁자 위, 방금 마시고 내려놓은 컵이 멈칫, 하고 제자리에서 살짝 옆으로 움직인 것 같았다.

“젠장,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피곤하면 가끔 시야가 흐려지거나 착각하는 일은 있었다. 다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잠시 후, 똑같은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좀 더 명확하게, 컵이 스르륵 미끄러지며 탁자 한가운데서 가장자리로 이동하는 것이 보였다.

현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 컵이 스스로 움직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움직임은 피로에 절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미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맹수의 움직임처럼, 그의 시선은 컵에 고정되어 있었다.

“뭐야… 바람이라도 부나?”

창문은 닫혀 있었다. 에어컨도 꺼져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컵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컵은 차가웠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저 유리 탁자 위에 놓인 평범한 컵일 뿐이었다. 그는 컵을 다시 탁자 중앙으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거실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거실장 위 화분, 벽에 걸린 시계, 소파 옆 스탠드.

이상했다.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는 애써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그저 낡은 아파트의 흔한 해프닝, 혹은 지반의 미세한 흔들림 때문일 거라고. 하지만 그의 내면에선 이미 희미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사물의 미세한 움직임을 놓치지 않는 눈을 가졌고, 평범한 소음 속에서도 이질적인 기운을 구분해내는 귀를 가졌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 단련된 본능에 가까웠다.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 부엌으로 향했다. 인스턴트 국을 데우고 밥을 차렸다. 식탁에 앉아 한 숟갈 뜨려는 순간이었다.

쿵!

머리 위에서 들린 듯한, 둔탁한 충격음이었다. 아파트 전체가 미세하게 울리는 느낌. 그릇을 들고 있던 손이 멈칫했다. 현우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위층에서 나는 소리인가? 아니, 너무 가까웠다. 마치 자기 집 천장에서 직접 들린 소리 같았다.

이어서, 달칵.

방문이 저절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그의 눈은 빠르게 열린 방의 내부를 스캔했다. 침대, 책상, 옷장. 모두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이봐, 거기 누구야?”

그는 나지막이 물었다. 목소리에는 낮지만 팽팽한 긴장이 실려 있었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방 안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싸늘한 냉기만이 현우의 뺨을 스쳤다. 여름의 끝자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싹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했다. 열린 방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바깥 거실의 불빛이 희미하게 스며들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거실 불이 깜빡였다.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젠장!”

현우의 입에서 짧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어둠이 순식간에 공간을 지배했다. 그의 시야는 한 순간 암흑에 잠겼지만, 그의 다른 감각들은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살아났다. 주위의 미세한 공기의 흐름, 저 멀리서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 그리고…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섬뜩한 기운.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웅얼거리는 듯,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흐릿한 환청 같았지만, 그 소리는 분명 현우의 존재를 향해 던져지고 있었다.

그는 무심코 손을 뻗어 벽을 짚었다. 차가운 벽의 감촉이 생생했다. 그때였다.

윙- 쨍그랑!

침대 옆 협탁에 놓여 있던 탁상시계가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그대로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현우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파편을 피했다. 그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했다.

“이게… 대체 뭐야.”

현우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피로나 착각으로 돌릴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이 공간에 존재하며,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의지에는 놀랍도록 강렬한 힘이 담겨 있었다.

주방에서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렸다. 마치 칼날이 서로 부딪히는 듯한 소리였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 주방 식탁 위에서 섬뜩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식칼이, 스스로 공중에 떠올라 있었다.

희미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칼날에 반사되며 섬뜩한 빛을 뿌렸다. 칼날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칼날은, 현우를 향해 겨누어져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분명, 무형의 어떤 존재가 행사하는 기이한 힘이었다. 하지만 현우는 거기서 알 수 없는 익숙함을 느꼈다. 이 살기, 이 압력…

그는 천천히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의 몸에서 잔뜩 움츠렸던 근육들이 팽팽하게 긴장했다. 낮에 사무실에서 굽었던 어깨는 꼿꼿하게 펴졌고, 피로에 흐릿했던 눈동자는 이제 칼날처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냉소적이라기보다는, 해답을 찾은 자의 표정이었다.

“그래… 이 기운. 내가 한때 수없이 마주했던 그 ‘기(氣)’인가.”

식칼이 빠르게 현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섬뜩한 쇳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하지만 현우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피식,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고작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서 칼날을 피했다. 칼은 현우의 옆을 스쳐 벽에 박혔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칼자루가 벽에 박히고 칼날이 떨렸다.

현우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칼이 박힌 벽을 응시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오랜만이군. 이런 식으로 인사를 건네는 건.”
그의 눈은 어둠 속 저편, 보이지 않는 존재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