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열의 704호】 제1화: 한밤의 방문객**
퇴근길, 미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익숙한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다. 704호. 불 꺼진 집은 언제나처럼 고요했다. 그녀는 가방을 소파에 던지고 곧장 욕실로 향했다. 따뜻한 물줄기가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는 동안, 그녀는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달그락’ 소리를 애써 무시했다. 환풍기 소리겠지, 혹은 윗집의 소음이겠지.
샤워를 마치고 나와 가운을 걸친 채 거실로 나왔을 때였다. 책장 한 귀퉁이, 평소 손때 묻은 표지로 굳건히 서 있던 두꺼운 판타지 소설 한 권이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책등이 심하게 꺾여, 마치 누군가 내동댕이친 것처럼 보였다.
“뭐야? 지진이라도 났나?”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나. 미나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책을 주워 올렸다. 하지만 등골을 타고 오르는 묘한 서늘함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평소 아늑하던 집안의 공기가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기분이었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TV를 켰다. 시덥잖은 드라마를 보며 긴장을 풀려는데, 이번엔 침실 쪽에서 ‘삐걱’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래된 가구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문이 천천히, 그러나 의도적으로 열리는 듯한 소리.
미나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고양이도 없고, 반려동물은 키우지 않았다. 열려 있던 방문이 저절로 닫히는 것도 익숙지 않았다.
“누구 없어요?”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메아리 없는 질문은 공포를 더욱 증폭시킬 뿐이었다. 그 순간, 거실 전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두 번이 아니라, 불안하게 주기적으로. 마치 불이 꺼졌다 켜지기를 망설이는 것처럼.
“아, 또 접촉 불량이야?”
벽 스위치를 몇 번 눌러봤지만 소용없었다. 깜빡이는 불빛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그림자가 거실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들 사이로, 불현듯 흐릿한 형체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너무 빨라서 착각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소름은 분명했다.
갑자기 등 뒤가 서늘해졌다. 에어컨을 켠 적도 없는데, 한겨울 칼바람 같은 냉기가 미나의 척추를 타고 올랐다. 동시에 귀엣말처럼 ‘스스스…’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분명히 들었다. 바람 소리도 아닌,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은 섬뜩한 소리였다.
미나는 몸을 움찔 떨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거실 한가운데, 평소 아끼던 화분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흙과 깨진 도자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이건… 아니야.”
더 이상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공포가 목을 조여왔다. 그녀는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생존 본능이었다.
그때였다. 쾅! 안방 문이 격렬하게 닫히는 소리가 아파트를 뒤흔들었다. 벽이 흔들리고, 천장의 석고보드가 부서지는 듯한 굉음이었다. 미나의 비명이 목구멍에서 찢어지듯 터져 나왔다.
거실의 모든 가구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탁자 위의 컵이 공중에 붕 뜨더니,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져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그 조각들 사이로, 검붉은 아지랑이 같은 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형체를 갖추려 애쓰는 듯했다. 불안정한 연기 덩어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무언가의 의지가 섬뜩하게 느껴졌다. 짙은 어둠 속에서, 그것은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미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안 돼…!”
미나는 필사적으로 현관으로 달려갔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문이 안쪽에서부터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강하게 잠겼다. 억지로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그녀를 가두려는 것처럼.
그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눈앞의 연기 덩어리가 점점 짙어지며, 마치 거대한 눈동자처럼 그녀를 응시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고대의 공포와 함께, 어떤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세상의 근원이 되는 문자들이 잠시 형태를 드러냈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그것은 이 아파트에 갇힌 단순한 유령이 아니었다. 아니, 유령 따위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미나의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귓가를 파고드는 섬뜩한 속삭임이었지만, 동시에 영겁의 시간이 응축된 듯한, 우주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찾았다…’*
미나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어둠과 냉기,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존재감이 그녀의 작은 아파트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익숙한 ‘704호’에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이곳은, 미지의 존재가 발을 디딘, 세상의 틈새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틈새에 갇혀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