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잿빛 도시의 스파클링 소다

“콜록, 콜록… 야, 김강태. 좀 살살 걸어라. 먼지 다 마시겠네.”

유진은 낡은 방독면 위로 흙먼지 낀 손을 휘저었다. 폐허가 된 도서관의 삐걱이는 마룻바닥은 발걸음 한 번에 회색빛 가루를 게워냈다. 썩은 책장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한낮의 햇빛조차 탁한 유리창을 통과하며 누런 죽은 빛을 띠었다.

“먼지가 문제가 아니야. 이 건물, 썩어도 너무 썩었잖아. 이러다 천장이라도 무너지면 어쩌려고.”

강태는 팔짱을 끼고 천장을 한 번 훑어보더니, 그의 키만큼이나 자라버린 잡초 덩굴이 휘감은 책장 뒤편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의 등에는 큼지막한 배낭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누가 봐도 과적이었다.

“무너질 거였으면 진작 무너졌겠지. 그리고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유진의 목소리에는 명백히 짜증이 섞여 있었다. 며칠 전, 강태가 주워온 낡은 데이터칩 하나가 이 황량한 도서관으로 그들을 이끌었다. 칩에는 폐기된 군사 시설의 위치와 함께 ‘코드명: 스파클링 소다’라는 알 수 없는 문구가 저장되어 있었다. 강태는 이걸 식량 창고의 암호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유진은 그 호들갑에 속아 넘어간 자신을 탓하는 중이었다.

“야, 내가 그때 그렇게 열변을 토했잖아! ‘스파클링 소다’라니! 이 사막 같은 세상에 탄산음료라니! 이건 신의 계시라고!”

강태는 여전히 눈을 빛내고 있었다. 유진은 그런 강태를 보며 한숨을 폭 쉬었다. 신은 무슨 신. 신이 계시를 내렸다면 차라리 끓여먹을 수 있는 라면 레시피를 알려줬을 거다.

“그래, 신의 계시로 지금 우리가 식량 대신 먼지를 마시고 있다는 거지? 아주 좋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유진의 눈은 부지런히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안내판의 글자를 더듬거리며 해독했다. ‘자료 보관실’. 왠지 모르게 으스스한 곳이었다. 빛도 잘 들지 않는 복도는 습기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이쪽이야. 칩에 이 좌표가 찍혀 있었어.”

강태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의 걸음은 꽤나 조심스러웠지만, 배낭의 무게 때문인지 바닥이 더 크게 삐걱거렸다. 그때였다.

*크르르륵…*

낮게 깔리는 소리. 분명 강태의 발소리와는 다른, 살아있는 무언가의 소리였다. 유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강태의 팔을 잡아끌었다.

“잠깐.”

강태는 고개를 돌려 유진을 봤다. 그의 눈빛에도 일순간 긴장감이 서렸다. 그는 이 세계의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스슥…*

천장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이어서, 낡은 파이프가 덜컹거리는 소리.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쳤다. 말없이 방독면 너머로 숨을 죽였다.

소리의 근원지는 복도 끝, 자료 보관실 문 안쪽인 듯했다. 철문은 녹슬어 있었고, 윗부분이 약간 찌그러져 있었다. 마치 맹수가 발톱으로 긁어낸 것처럼.

“문 안쪽에 뭔가 있는 것 같아.” 유진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들개 같진 않은데… 소리가 좀 무거워. 덩치가 큰 놈인가?” 강태가 짐작했다.

이 황폐한 세상에서 들개는 흔한 위협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도 많았다. 방사능에 오염되어 기형적으로 변이한 짐승들. 그리고… 인간들. 다른 생존자들은 언제나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때로는 굶주린 짐승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어떡할 거야? 그냥 돌아갈까?” 유진이 제안했다. 스파클링 소다가 아무리 절실해도 목숨만큼은 아니었다.
강태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눈빛에는 기대와 망설임, 그리고 약간의 고집이 섞여 있었다.

“아니.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있긴 있을 거야.”

그는 배낭에서 낡은 랜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허리춤에 찬 녹슨 쇠파이프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누가 봐도 무모한 행동이었다.

“야! 너 설마 혼자 들어갈 생각이야? 미쳤어?!”

유진이 황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지만, 강태는 이미 결심한 듯 미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혼자는 아니지. 너도 있잖아.”

그의 말이 오히려 유진의 화를 돋웠다. 이런 상황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찍을 심산인가? 하지만 강태의 눈빛에는 그 나름의 진지함이 있었다. 그는 유진을 믿고 있었다. 이 척박한 세상에서 서로의 등 뒤를 맡겨온 지난 시간 동안, 그들은 어쩌면 동료 이상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좋아, 대신… 내 말 잘 들어. 알았어?”

유진은 결국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의 무모함을 잘 알았지만, 그 무모함 뒤에는 언제나 사람을 이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스파클링 소다는 그녀에게도 꽤나 간절했다. 이 텁텁한 물만 마시며 살아온 지가 몇 년이던가.

강태는 조심스럽게 녹슨 철문에 귀를 갖다 댔다.
*키이이익…*
문틈으로 희미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뭔가 긁히는 소리. 그리고 작은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강태는 랜턴을 들고 철문을 천천히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바닥에 뒹굴고 있는 낡은 책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사이를 바스락거리며 기어 다니는 무언가.

“윽… 저게 뭐야?”

유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랜턴 불빛 아래 드러난 것은 생각보다 작고 보잘것없는 생명체였다. 마치 거대한 바퀴벌레 여러 마리가 합쳐진 듯한 형상. 더듬이는 길고, 등껍질은 번들거렸다.

*쉬이이익!*

가장 앞서 있던 녀석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강태는 망설임 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녀석을 후려쳤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등껍질이 터져 나갔다. 역겨운 푸른색 액체가 바닥에 튀었다.

“젠장! 한두 마리가 아니잖아!”

어둠 속에서 수많은 눈알들이 번쩍였다. 작은 짐승들은 바닥과 책장 사이,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마치 거대한 군락을 이룬 듯했다. 그것들은 위협을 감지하자마자 맹렬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젠장, 튀어!” 강태가 소리쳤다.

그들은 뒤돌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마치 수천 마리의 벌레들이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문 닫아! 빨리!” 유진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강태는 마지막으로 뛰쳐나오며 녹슨 철문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문이 닫혔다. 하지만 안쪽에서부터 들려오는 격렬한 긁힘 소리는 그들이 완전히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댔다. 방독면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서로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크헉… 저게 스파클링 소다냐? 아주 그냥… 스파클링하게 터뜨려버리네.” 유진이 겨우 숨을 고르며 말했다.
강태는 힘없이 웃었다. “미안… 진짜 내가 미쳤지.”

그는 주저앉아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져온 작은 물병을 꺼내 유진에게 건넸다.

“이거라도 마셔.”
“넌?”
“난 괜찮아.”

유진은 강태의 손에서 물병을 받아 들었다. 차갑게 식어버린 물이었지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액체는 그 어떤 고급 와인보다 달콤했다. 그녀는 물을 마시며 문득 강태를 올려다봤다.

그는 여전히 미안한 표정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그의 옆모습은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 모르게 굳건했다. 이 남자는 분명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았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언제나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곤 했다.

“야, 김강태.”
“응?”

유진은 물병을 내려놓고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넌 나한테 평생 빚진 거야. 알아?”
“알지. 스파클링 소다를 찾으면 평생 대령할게.”

그의 말에 유진은 코웃음을 쳤다. 스파클링 소다는 무슨. 하지만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순수한 웃음이 왠지 모르게 싫지 않았다.

그때, 유진의 시선이 바닥에 뒹굴던 낡은 책들 중 하나에 꽂혔다. 그들이 도망쳐 나오기 직전, 강태가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한 권이 펼쳐진 채 떨어져 있었다. 책의 내용은 온통 알 수 없는 기호와 그림으로 가득했다. 그런데 한 페이지가 유독 눈에 띄었다. 고대어로 쓰인 듯한 문구 아래, 작은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푸른색 액체를 담은 병과 함께, 옆에는 ‘소생의 샘’이라는 익숙한 글자가 적혀 있었다.

“야, 강태. 잠깐만 이것 좀 봐.”

유진의 목소리에 다시금 미묘한 긴장감이 실렸다. 강태가 유진의 옆으로 다가와 책을 들여다봤다.

“소생의 샘? 이게 뭐야?”

책의 삽화는 자료 보관실에서 봤던 기형적인 벌레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 보였다. 오히려 그들은 다른 곳에 있을 법한, 전혀 다른 비밀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 철문 안쪽에서 긁는 소리가 갑자기 멈췄다. 그리고 이어서, 복도 저편에서 무언가 기어오는 듯한, 소름 끼치도록 느린 움직임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사람의 형상. 하지만 어딘가 뒤틀리고 길게 늘어진 형상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아까의 벌레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