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먼지가 폐허가 된 도시를 가득 메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흙과 시든 금속의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지혁은 낡은 방독면 안에서 거친 숨을 내쉬며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 나갔다. 찢어진 낡은 군용 재킷은 그의 왜소한 체구를 겨우 가려주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녹슨 쇠 파이프. 둔탁한 감촉이 불안정한 그의 심장 박동과 묘하게 어울렸다.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방독면 필터를 거쳐 먹먹하게 울렸다. 며칠째 식량도, 마실 물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목마름은 이젠 일상이 되어버린 고통이었고, 뱃속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고통스러운 침묵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혁이 발을 디딘 곳은 한때 번화했던 상점가였을 터였다. 유리창들은 모두 깨져나갔고, 알록달록했던 간판들은 산산조각 나 바닥에 뒹굴거나,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위태로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참상이었다.
그는 무너진 편의점의 잔해 속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갔다. 철근이 뒤틀리고 콘크리트 조각들이 산산이 부서진 곳. 한때 달콤한 간식과 시원한 음료로 가득했을 선반들은 이제 텅 비어 있거나,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검은 곰팡이와 뒤섞인 채 썩어가고 있었다.
“어디 보자… 혹시나 하는 게 사람 심리라지만…”
지혁은 거의 기계적으로 쇠 파이프를 휘둘러 널브러진 잔해들을 들춰냈다. 캔 통조림, 오래된 건전지, 깨진 유리병 조각들. 모든 것이 쓰레기였다. 희망은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그의 예민한 감각이 미세한 변화를 감지했다. 주변의 고요함 속에 섞여 들어오는, 아주 희미한, 하지만 분명한 움직임. 바스락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 긁는 듯한 소리 같기도 했다.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소리였다.
지혁은 즉시 몸을 굳혔다. 숨소리마저 죽이고 주변을 살폈다. 방독면 렌즈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어둡고 혼탁했다. 그림자 한 조각, 작은 먼지 한 톨까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소리는 건물 안쪽,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본능적인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지 마. 위험해.* 하지만 동시에, 희미한 가능성도 그를 붙잡았다. *저 안쪽에, 혹시 아직 남아있는 것이 있다면? 아무도 손대지 못한 보급품이 있다면?*
굶주림은 이성의 목소리를 잠재우는 가장 강력한 유혹이었다. 지혁은 쇠 파이프를 고쳐 잡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의 움직임은 고양이처럼 민첩하고 소리 없었다. 건물 내부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어둠은 짙어졌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섬뜩한 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무너진 천장과 파이프들이 뒤엉킨 작은 창고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다. 긁는 소리, 무언가를 뜯는 소리. 그리고 낮은, 위협적인 으르렁거림.
지혁은 벽에 바싹 붙어 몸을 숨겼다. 손등에 땀이 흥건했다. 그의 오른손은 쇠 파이프를 꽉 쥐고 있었다. 심장이 쿵, 쿵, 쿵 하고 격렬하게 울렸다.
창고 안을 들여다본 순간, 그의 눈은 경악으로 커졌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세 개의 붉은 눈. 그리고 길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짐승의 형체. 그것은 개와 비슷했지만, 훨씬 크고 사나웠으며, 피부는 비정상적으로 검고 거칠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꼬리 끝은 뼈만 남은 채 찢어져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눈빛은 평범한 짐승의 그것이 아니었다. 광기와 굶주림으로 이글거리는, 차가운 살의가 담겨 있었다.
‘그림자 사냥개.’
이 폐허 속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 중 하나.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 훨씬 크고 위압적인 개체였다. 녀석은 창고 한가운데서 무언가를 뜯어먹고 있었다. 희미한 달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그것은, 뼈였다.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뼈.
지혁의 몸이 경직되었다. 녀석은 다른 먹이를 찾아 냄새를 맡고 있는 듯했다.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훑는 움직임이 보였다. 곧바로 이쪽을 눈치챌 터였다.
그의 눈은 본능적으로 창고 구석을 훑었다. 먼지 쌓인 선반들 사이로, 작고 단단해 보이는 배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래되었지만, 방수 처리된 재질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은 아직 그 배낭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배낭 안에는 분명 귀중한 것이 들어 있을 터였다. 최소한 식량 아니면 쓸모 있는 도구라도. 하지만 저 짐승과 싸워야 했다. 그것도 혼자서.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그림자 사냥개의 머리가 천천히 지혁이 숨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녀석의 붉은 눈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젠장!”
지혁은 짧게 욕설을 내뱉으며 벽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쇠 파이프를 든 채 창고 안으로 돌진했다. 녀석이 고개를 완전히 돌리기도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했다.
그림자 사냥개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짧게 비명을 질렀다. 녀석의 거대한 몸집이 지혁을 향해 돌진하려 했지만, 지혁은 이미 몸을 날린 후였다. 그는 쇠 파이프를 휘둘러 녀석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콰앙!’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 사냥개가 옆으로 휘청거렸다. 녀석의 비명 소리가 창고를 가득 채웠다. 하지만 이내 녀석은 자세를 잡고 지혁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세운 채.
지혁은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창고는 너무 비좁았다. 등 뒤로는 무너진 선반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녀석은 지혁의 팔을 노리고 점프했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재킷을 찢으며 살을 파고들었다.
“크윽!”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피가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쇠 파이프를 든 손에 더욱 힘을 주고, 녀석의 목덜미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퍽!’
이번에는 제대로였다. 그림자 사냥개는 목에서 피를 뿜으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지만 그 생명력은 놀라웠다. 녀석은 곧바로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붉은 눈은 여전히 살의로 가득했다.
지혁은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고 판단했다. 쇠 파이프를 다시 한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녀석의 머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내려찍었다. 두 번, 세 번. 녀석의 비명 소리가 끊기고, 몸이 축 늘어질 때까지.
축 늘어진 짐승의 시체 위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지혁의 모습은 처절했다. 그의 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방독면 너머로 느껴지는 땀방울이 눈을 따갑게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지혁은 주저앉아 거친 숨을 골랐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창고 구석의 배낭을 향했다. 다리를 절뚝이며 배낭으로 향했다.
배낭은 예상대로 꽤 견고했다. 지퍼를 열자, 안에서 빛바랜 비닐 포장지가 나왔다. 그 안에는 압축된 에너지 바와, 얇은 금속 캔 두 개, 그리고 작은 물통 하나가 들어 있었다. 기적 같았다. 건조하고 어두운 곳에서 오랫동안 보관된 덕분인지, 부패의 흔적은 없었다.
지혁은 조심스럽게 에너지 바 포장을 뜯었다. 입안에 넣자마자, 잊고 있던 단맛과 고소한 맛이 혀끝을 강타했다. 눈물이 찔끔 솟았다. 며칠 만에 맛보는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
목마름에 재빨리 물통을 들어 뚜껑을 열었다. 꿀꺽꿀꺽 목 넘기는 소리가 폐허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갈증이 가시자, 이제야 비로소 살 것 같다는 감각이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평화는 잠시였다.
배낭 깊숙한 곳에서, 지혁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장치를 발견했다. 낡고 오래되었지만, 투박한 금속 재질은 여전히 견고해 보였다. 그는 호기심에 장치 중앙에 있는 버튼을 눌러보았다.
‘삑-!’
희미한 전자음과 함께 장치 중앙에 작은 액정이 켜졌다. 몇 개의 알 수 없는 기호들과 함께, 한 줄의 문구가 나타났다.
[탐지 완료. 목표 지점 : 북서쪽 3.2km.]
지혁의 눈이 가늘어졌다. 목표 지점? 대체 무엇을 탐지했다는 걸까? 이 장치는 또 무엇이며, 누가 이곳에 이것을 남겨두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목표 지점에는 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푸른빛이 그의 얼굴을 비췄다. 어두운 폐허 속에서, 그 작은 빛은 희망처럼 보이기도, 또 다른 거대한 위험의 예고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혁은 잠시 망설였다. 배낭을 들고 조용히 이곳을 떠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액정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북서쪽 3.2km. 그곳에 미지의 무언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생존을 끝낼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그는 천천히 장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팔의 상처는 여전히 쓰라렸지만, 그의 얼굴에는 새로운 결의가 떠올랐다. 어차피 이 지옥에서 도망칠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미지의 길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어쩌면 그 끝에, 이 모든 고통의 이유를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창문 너머로 잿빛 노을이 길게 드리워졌다. 지혁은 쇠 파이프를 고쳐 잡고, 다시 한번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의 목표는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섰다. 그는 답을 찾아야 했다. 이 무너진 세상의 한가운데서, 그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