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 전, 세상은 무림의 칼날 아래 드물게 평화를 찾았다. 하지만 그 평화는 모래성 같았다. 거대한 어둠이 하늘을 갈랐고, 균열이라 불리는 미지의 문들이 열렸다.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었다. 온갖 괴이한 존재들이 세상을 활보했고, 삶의 터전은 절규와 피로 물들었다. 무림은 한때 자신들끼리의 쟁투에 빠져 있었으나, 이내 더 큰 위협 앞에서 칼끝을 거두고 하나로 뭉쳤다. 그들이 내린 최후의 결단은, 영웅을 찾는 것이었다.
‘천하무림대회’. 과거라면 무림맹의 패권을 다투는 영광스러운 무대였을 이름이, 이제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걸어야 하는 절박한 성전으로 변모했다. 대회는 대륙의 중심, 거대한 ‘절망의 균열’이라 불리는 거대한 균열 지대 바로 아래에 마련된 임시 아레나에서 열렸다. 하늘을 찢어놓은 듯 검푸르게 일렁이는 균열은 그 자체로 거대한 입 같았다. 쉴 새 없이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며 대지 위를 뒤덮었고, 그 틈새로 간간이 튀어나오는 이형의 존재들은 무인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수많은 인파가 대회장을 가득 메웠다. 정파의 명문 대가에서 온 청아한 검객들, 사파의 비정한 맹주들과 그를 따르는 무뢰배들, 마교의 그림자 같은 사제들, 그리고 세상의 부름에 응답하여 모습을 드러낸 이름 모를 은둔 고수들까지. 각 문파의 깃발이 바람에 휘날렸고, 팽팽한 긴장감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공기 중에 섞여 맴돌았다. 그러나 그 어떤 자도 감히 눈앞의 대균열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것은 단순히 풍경이 아니었다. 종말의 전조였다.
침묵 속에 백발의 노인이 단상에 올랐다. 무림맹주, 용호성. 깊게 패인 주름과 지친 눈빛은 지난 세월의 고통과 희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그의 손에 쥐어진 지팡이가 땅을 한 번 울리자, 대회장 안의 모든 소음이 멎었다. 수많은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무인들이여.”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지만, 그 안에는 깊은 슬픔과 비통함이 배어 있었다. “우리가 수호하던 강호는 이제 위태롭다. 저 대균열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한다. 미지의 존재들은 우리의 터전을 유린하고, 희망조차 집어삼키려 한다. 우리는 더 이상 분열되어 싸울 여유가 없다. 하나되어 맞서야 한다. 허나… 대균열의 심연은 인간의 힘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곳이다. 우리는… 새로운 무위, 새로운 길을 찾아야만 한다.”
용호성 맹주의 시선이 잠시 허공의 대균열을 향했다. 그의 눈빛에 절박한 간절함이 서려 있었다.
“오늘부터 시작될 천하무림대회는 과거의 영광을 다투는 싸움이 아니다. 이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찾는 성전이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균열의 봉인자’로서 대균열 깊은 곳으로 향할 자격을 얻을 것이다. 허나, 그 전에… 너희는 너희의 의지와 무위를 증명해야 한다.”
맹주는 다시 대회장의 모든 무인을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간절했고, 때로는 엄격했다.
“첫 번째 시련은 ‘심연의 조각’이다. 대회의 영역 내에는 수십 개의 ‘소균열’이 열려 있다. 그곳은 대균열의 에너지가 불완전하게 뻗어 나온 위험한 장소이자, 미지의 존재들이 서식하는 미궁과도 같다. 너희는 그 소균열 속으로 들어가, 그 안에 숨겨진 ‘빛의 조각’을 찾아 탈출해야 한다. 그것이 너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증표가 될 것이다. 제한 시간은 단 하루. 실패하는 자는… 그 자리에서 탈락할 것이다. 명심하라. 너희의 적은 옆의 무인이 아니다. 너희의 적은 균열 속의 존재들이며, 너희 자신과의 싸움이다.”
맹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징 소리가 하늘을 찢고 울려 퍼졌다. 웅성거리던 무인들 사이에서 긴장과 흥분이 뒤섞인 함성이 터져 나왔다. 대회의 광활한 영역 곳곳에 갑자기 검고 푸른 소용돌이 형태의 소균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땅이 숨을 쉬듯, 수십 개의 어둠의 아가리가 활짝 벌어진 것이다.
“자, 시작하라!”
맹주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수많은 문파의 고수들이 각자 자신의 무기를 움켜쥐고 가장 가까운 소균열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검강이 번뜩이고, 내공이 충돌하는 듯한 굉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어떤 이는 망설임 없이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고, 어떤 이는 주변을 살피며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이름값이나 문파의 위세는 중요치 않았다. 오직 눈앞의 시련을 극복하고 살아남는 자만이 다음 기회를 얻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세상의 운명에 도전할 자격을 얻을 것이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한 젊은 무인이 조용히 자신의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얼굴은 평범했으나, 눈빛은 깊은 심연처럼 고요했다. 그는 대균열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마치 그 심연 너머의 무언가와 교감하는 것처럼.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 있는 소균열, 푸른 빛이 스산하게 감도는 어둠 속으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바깥에서는 격렬한 기세가 이어졌지만, 그 소균열 안은 이미 다른 세상이었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기괴한 울음소리가 어둠 속을 헤매는 그의 귀를 자극했다. 그는 검의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이제, 그의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