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만이 지배하는 심우주, 고요를 깨뜨린 것은 탐사선 ‘세레스’ 호의 비상 알람이었다. 함교의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붉은 경고등이 섬뜩하게 깜빡였다.
“이선장님, 미확인 물체 접근입니다! 크기는 불명, 에너지 반응은 전혀 없습니다!” 항해사 조은유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선장은 굳은 표정으로 메인 스크린을 노려봤다. 별조차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센서가 감지한 것은 기이할 정도로 거대한 그림자였다. “항해 기록 확인해. 이 구역에 보고된 천체는 없어.”
“네, 선장님.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일치하는 정보가 없습니다. 마비된 소행성인가 했지만… 너무 깨끗하고… 마치 누군가 거기 놓아둔 것처럼…” 조은유의 목소리가 점차 불안에 떨렸다.
그때, 통신 채널이 열리며 한수연 박사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장님, 저 한수연입니다. 지금 뭘 발견하신 거죠? 제 연구실 센서가 난리예요! 제가 아는 어떤 물질의 파장과도 달라요!”
한수연, ‘세레스’ 호의 수석 과학자. 미지의 것을 향한 그녀의 탐구열은 때로 광기에 가까웠다.
이선장은 한숨을 쉬었다. “닥터 한, 진정하세요. 아직 아무것도 확인된 게 없습니다. 김민준 기관장, 선체 상태는?”
“아직까진 이상 없습니다, 선장님. 그런데 엔진실에서 미약한 공명음이 감지됩니다. 이 물체와 관련 있는 것 같습니다.” 김민준 기관장의 목소리도 경계심이 역력했다.
“박정희 보안관은?”
“여기 있습니다, 선장님. 전 대원 비상 대기 상태입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겠습니다.” 박정희 보안관은 침착했지만, 총기의 철컥이는 소리가 통신 너머로 들려왔다.
이선장은 턱을 쓸었다. “어쩔 수 없군. 소행성대도 아닌 심우주 한가운데서 이런 물체를 무시할 순 없어. 전진 속도 최저로 낮추고, 모든 스캐닝 장비 최대로 가동해. 닥터 한, 김기관장, 박보안관은 제 복장으로 함교로 집합해.”
수분 후, 함교에 모인 세 사람의 얼굴에는 각자의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한수연 박사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였고, 김민준 기관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시스템 로그를 주시했다. 박정희 보안관은 묵묵히 자신의 무기를 점검했다.
메인 스크린에 물체의 형상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말 그대로 ‘별의 잔해’였다. 하지만 자연적인 천체라기엔 너무나 인위적인 모습이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검은 금속 표면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의 피부처럼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했고, 간헐적으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맥동했다.
“이건… 대체 뭐죠?” 김민준 기관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떤 에너지원으로도 측정되지 않고, 어떤 금속으로도 분류되지 않습니다.”
한수연 박사는 홀로그램 스크린에 손을 뻗어 물체를 확대했다. “표면에 문양 같은 게 새겨져 있어요… 아니, 새겨진 게 아니라… 마치 태어난 것처럼, 유기적으로 형성된 것 같아요.”
이선장이 물었다. “침투 가능성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선장님.” 박정희 보안관이 대답했다. “하지만 저 물체…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바로 그때, 물체에서 방출되는 푸른빛이 강렬해지더니, ‘세레스’ 호의 내부 스크린 전체가 푸른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선내의 모든 조명이 깜빡이고, 함선 전체가 웅장한 공명음으로 가득 찼다.
“젠장! 무슨 일이야!” 김민준 기관장이 황급히 제어판을 두드렸다. “주 전원이 불안정합니다! 비상 동력으로 전환 중!”
“모든 시스템이… 반응합니다. 아니, 반응하는 게 아니라… 저 물체에 맞춰 춤을 추는 것 같아요.” 한수연 박사의 눈이 광기로 번뜩였다. 그녀는 마치 홀린 듯 스크린 속 푸른빛에 손을 뻗었다.
“닥터 한! 뭐하는 겁니까!” 이선장이 소리쳤지만 늦었다.
한수연의 손가락 끝이 홀로그램 스크린 속 푸른빛에 닿자마자, 선내의 모든 푸른빛이 그녀의 손끝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푸른 섬광이 번뜩였고,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정전기가 피어올랐다.
“콜록! 콜록!” 한수연이 격렬하게 기침하며 뒷걸음질 쳤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지만, 그 푸른빛이 스며든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닥터 한, 괜찮습니까?” 박정희 보안관이 다가서려 하자, 한수연은 마치 거미에게 물린 듯 움찔하며 손을 뺐다.
“아… 안돼… 오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푸른 잔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바로 그때, 메인 스크린의 ‘별의 잔해’에서 거대한 격벽이 미끄러지듯 열리며 내부가 드러났다.
그 안은 암흑으로 가득했지만, 중앙에는 마치 거대한 보석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은 눈부신 무지개색 빛을 뿜어내며, 함교의 모든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선장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젠장, 저건… 대체 뭘까.”
그리고 빛나는 물체의 중앙에서, 아주 미세한, 하지만 명확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진동은 점차 커지더니, ‘세레스’ 호의 선체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수연 박사의 푸른빛이 스며든 손끝에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너무나 기괴했다.
푸른빛은 그녀의 손끝에서 시작해 팔, 어깨, 그리고 가슴으로 퍼져나갔다. 그녀의 피부 아래로 푸른 혈관이 도드라지는가 싶더니, 살갗을 찢고 푸른 수정 같은 문양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흐읍… 흐으으읍…!” 한수연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비명을 삼켰다.
“닥터 한!” 김민준 기관장이 경악하며 외쳤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선장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미지의 ‘별의 잔해’가, 그리고 그 안의 무지개색 보석이, 한수연 박사와 무언가 끔찍한 방식으로 연결되었음을.
푸른 빛이 한수연의 전신을 감싸고, 그녀의 몸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은 고통과 황홀경이 뒤섞인 기이한 것이었다. 옷은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그 아래로 드러난 피부에는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하지만 동시에 섬뜩한 푸른 문양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마치 우주의 심연을 압축해 그녀에게 박아 넣은 듯한 문양이었다.
문양들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녀의 등 뒤에서 기이한 형상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금속과 유기체가 뒤섞인 듯한 날개, 혹은 촉수 같은 것이었다. 푸른빛을 반사하며 공간을 뒤틀었다.
“이선장님! 저 물체에서 엄청난 에너지 파장이 감지됩니다! 측정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조은유의 비명 같은 보고가 들려왔다.
동시에, 한수연의 공중으로 떠오른 몸이 정지했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이전의 한수연 박사가 아니었다. 눈동자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푸른 별처럼 빛났고,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세레스’ 호의 선원들을 꿰뚫는 듯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첫 마디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아니, 언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이질적이고, 고대적이면서도 미래적인, 우주 그 자체의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함선 전체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모든 스크린이 꺼지고, 비상등마저 깜빡임을 멈췄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한수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빛만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선장은 본능적으로 소리쳤다.
“전 대원, 비상 격벽 폐쇄! 엔진 가동! 당장 이 물체에서 떨어져!”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한수연의 눈에서 푸른 섬광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함교의 모든 대원을 덮쳤다.
마치 거대한 손이 ‘세레스’ 호를 움켜쥔 듯, 함선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한수연의 그림자 같은 모습이 섬뜩한 푸른빛을 배경으로 더욱 선명해졌다.
그녀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더 이상 인간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심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서 깨어난, 어떤 존재의 조용한 승리처럼 보였다.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그녀의 목소리가 모두의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차갑고, 공허하며, 무한한 힘을 품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녀의 손에서 푸른 에너지 구체가 형성되고, ‘세레스’ 호의 메인 스크린에 박혀 있던 ‘별의 잔해’의 형상이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