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우주를 캔버스 삼아 펼쳐진 거대한 그림자처럼 드리워진 곳. ‘심연의 그림자’호의 함교는 차가운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함장석에 기댄 카인의 얼굴은 그림자에 반쯤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불타는 혜성처럼 맹렬했다. 수많은 별들이 창밖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한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멀리, 은하 연합의 기함 ‘천상의 날개’가 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함장님, 목표 시야 확보. 방어막은 표준 운용 중입니다.”
침묵을 깨고 항법사의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가락이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들렸다. 7년. 지옥 같은 7년이었다.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진 폐허 속에서 오직 복수만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접근 각도 유지해. 최대한 은밀하게. 놈들이 이 어둠 속에 잠긴 칼날을 눈치채지 못하게.”
카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지만, 그 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의 뇌리에는 언제나 그날의 악몽이 재생되었다. ‘성간 핵’을 찾기 위한 마지막 탐사. 인류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미지의 행성, 제노아-7.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진 처참한 배신.
* * *
우리는 형제나 다름없었다. 세라핌과 나. 은하 연합 최고의 탐사 대원이자 절친한 동료. 우리의 이름은 언제나 함께 불렸다. 무모하리만치 과감한 내가 돌진하면, 냉철한 세라핌이 뒤를 받쳐 주었다. 그런 우리가 발견한 것이 바로 ‘성간 핵’이었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를 제어할 수 있는, 신의 조각이라 불릴 만한 궁극의 유물.
“카인! 우리가 해냈어! 드디어… 우리가 해냈다고!”
붉은빛을 발하는 핵을 품에 안고 세라핌은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그의 얼굴에는 순수한 환희가 가득했다. 적어도 그때까진, 그렇게 보였다. 행성의 대기권으로 진입하는 순간, 통신이 끊어졌다. 함선의 동력 장치가 이상을 일으켰다. 우리는 놈들의 매복에 걸린 줄 알았다.
“카인, 함교는 내가 맡을게! 자네는 성간 핵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해!”
세라핌은 급박하게 외쳤다. 그의 얼굴에는 절박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주저 없이 그의 말을 따랐다. 우리의 오랜 신뢰는 단 한 번도 금이 간 적이 없었기에. 나는 성간 핵을 들고 비상 탈출 포드로 향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온몸의 신경이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 등에 박힌 것은 우리 함선의 표준 무장인 고에너지 플라즈마 블레이드였다. 피를 토하며 쓰러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차가운 미소를 띠고 있는 세라핌의 얼굴이었다.
“미안하다, 친구. 이 우주에 두 명의 영웅은 필요 없어. 그리고… 이 핵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자네 같은 이상주의자가 다루기엔 위험하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비상 탈출 포드에 던져졌다. 포드의 문이 닫히고,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은하 연합은 내가 ‘성간 핵’을 되찾아 온 영웅으로 기억할 거야. 자네는… 불운한 사고로 산화한 전우가 되겠지. 편히 잠들어라, 카인.”
포드는 행성의 대기권으로 추락했다. 나는 죽지 않았다. 폐허가 된 행성 표면에서, 부러진 갈비뼈와 찢어진 폐를 끌어안고 간신히 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내 심장은 더 이상 피가 아닌, 증오로 뛰기 시작했다.
* * *
“함장님, 적함과의 거리 3000킬로미터. 스캔 회피 모드 최대로 가동 중입니다.”
항법사의 목소리에 카인은 과거의 악몽에서 깨어났다. 심연의 그림자호는 마치 먹이감을 노리는 상어처럼, 세라핌의 함대에 스텔스 모드로 접근했다. 7년의 세월 동안, 카인은 이름도, 얼굴도, 심지어 영혼까지 바꿔 버렸다. 그는 은하계 변방의 암흑가에서 잔뼈 굵은 현상금 사냥꾼이 되었고, 해적들의 왕으로 군림하며 자신만의 전함을 건조했다. 모든 것은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였다.
“놈의 기함, ‘천상의 날개’의 방어막에 직접 타격할 거야. 우리 함선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켜.”
카인의 명령에 함교는 다시 긴장감에 휩싸였다. 일반적인 우주선으로는 기함의 방어막을 뚫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심연의 그림자호는 카인이 7년간의 증오를 연료 삼아 개조한 괴물이었다.
“전방 함선 스캔! 미확인 스텔스 신호 감지!”
갑작스러운 적함의 외침이 함교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카인의 입술에 비틀린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눈치챘군. 늦었다, 세라핌.
“선제 공격! 회피 기동 없이 정면 돌파한다!”
카인의 외침과 동시에 심연의 그림자호의 스텔스 장막이 걷혔다. 칠흑 같은 우주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전함은 마치 거대한 그림자 상어 같았다. 선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보라색 광선이 ‘천상의 날개’의 방어막에 맹렬하게 꽂혔다.
콰앙! 쾅!
격렬한 진동이 심연의 그림자호를 뒤흔들었다. 함교의 패널들이 번쩍이며 경고음을 토해냈다.
“방어막 30% 손실! 주포 과열!”
“하지만… 천상의 날개 방어막도 50% 손실입니다!”
항법사의 경악 섞인 목소리에 카인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번. 이번엔 심장을 꿰뚫는다.”
재차 에너지를 모은 심연의 그림자호의 주포가 불을 뿜었다. 보라색 광선은 마치 작렬하는 번개처럼 ‘천상의 날개’의 방어막을 뚫어버렸다. 거대한 전함의 방어막이 산산조각 나는 섬광이 우주를 환하게 밝혔다.
“전원, 백병전 준비! 착륙선 발사!”
방어막이 무너진 순간, 카인의 명령이 떨어졌다. 수십 대의 소형 착륙선들이 심연의 그림자호의 격납고에서 튀어나와 ‘천상의 날개’를 향해 돌진했다. 카인 역시 최정예 대원들을 이끌고 선두에 섰다. 그의 손에는 7년 전, 세라핌이 자신을 찌른 것과 똑같은 형태의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들려 있었다.
‘천상의 날개’ 내부. 거대한 함선의 복도는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카인의 대원들은 압도적인 화력과 훈련으로 세라핌의 경비병들을 쓸어버렸다. 그는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오직 함교를 향해 나아갔다.
“카인? 설마… 자네가 살아있을 줄이야!”
함교 문을 박살 내고 들어선 순간, 세라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함장석에 앉아 자신의 병사들이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과 경멸, 그리고 미세한 두려움이 스쳤다.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젊고 자신감 넘쳤다. 그는 ‘성간 핵’의 힘으로 은하 연합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카인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뒤로 대원들이 함교를 장악했다.
“살아있을 줄 몰랐겠지. 네가 나를 죽였다고 철석같이 믿었을 테니.”
카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세라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금빛 장식이 달린 에너지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래, 놀랐다. 하지만 살아 돌아왔다고 한들, 달라질 건 없어. 내가 이 성간 핵으로 이뤄낸 업적을 봐! 난 우주를 안정시키고, 인류를 더 높은 단계로 이끌었어! 자네의 어설픈 이상주의로는 불가능했을 일이지!”
세라핌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을 변호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배신을 정당화하고 있었다. 카인의 손에 들린 플라즈마 블레이드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 모든 업적이… 내 피와 시체를 밟고 선 대가라고는 말하지 않는군. 수많은 전우들이 자네의 위선에 속아 넘어갔지. 감히, 나의 모든 것을 빼앗고서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있나!”
카인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블레이드를 휘둘러 세라핌에게 달려들었다. 세라핌은 침착하게 에너지 권총을 발사했지만, 카인은 번개처럼 몸을 움직여 피했다. 그의 블레이드는 세라핌의 방어막을 찢고 그의 어깨를 스쳤다.
“크윽!”
세라핌의 얼굴에서 오만함이 사라지고 고통이 스쳤다. 그는 재빨리 물러나며 다시 권총을 겨눴다.
“미친놈! 아직도 그날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나! 나는 그저… 더 큰 그림을 보았을 뿐이다!”
“더 큰 그림? 아니, 자네의 탐욕일 뿐이야!”
카인은 다시 달려들었다. 그의 플라즈마 블레이드는 죽음의 춤을 추듯 세라핌을 몰아붙였다. 세라핌은 필사적으로 막아냈지만, 7년간의 고통과 분노로 단련된 카인의 검술은 그를 압도했다. 블레이드는 세라핌의 팔을 베고, 다리를 스쳤다.
“내가… 내가 그토록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폐기된 행성에서 죽어갈 때… 자네는 이 함장석에서 영웅 행세를 하고 있었겠지! 이 고통을… 너도 느껴야 해!”
카인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닌, 응축된 분노의 결정이었다. 그는 세라핌의 가슴에 플라즈마 블레이드를 찔러 넣었다. 7년 전,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크으으으… 카… 카인…!”
세라핌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다. 그의 몸에서 생명의 빛이 빠르게 꺼져갔다. 그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카인은 블레이드를 뽑아내지 않고,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이게… 네가 내게 선사했던 지옥이다. 이제… 네 차례야.”
마지막 힘을 다해 세라핌은 카인의 손을 움켜쥐려 했지만, 그의 손은 힘없이 떨어졌다. 생명 없는 눈은 허공을 응시했다. 은하 연합의 영웅은 그렇게, 배신자의 최후를 맞이했다.
카인은 축 늘어진 세라핌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이제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오랜 갈증이 해소된 듯한 공허함. 혹은, 그 갈증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깊은 허무함.
“함장님, 상황 종료입니다.”
대원 중 한 명이 다가와 낮게 보고했다. 카인은 천천히 블레이드를 거두었다. 그의 옷깃에 묻은 세라핌의 피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함교 창밖의 우주를 바라보았다. 저 무수한 별들 중, 어느 한 곳에 자신이 버려졌던 폐허가 있을 터였다. 복수는 끝났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 공허하게 뛰고 있었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가야 할까. 망망대해 같은 우주 속에서, 그는 홀로 서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