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은 짙고, 별은 더욱 차갑게 빛나는 밤이었다. 낡은 망토를 더욱 바싹 여민 서린의 심장이 마치 고동치는 북처럼 폐부를 울렸다. 숲 가장자리에 위태롭게 걸쳐진 고대 석벽의 그림자가 그녀를 삼킬 듯 일렁였다. 이곳, ‘경계의 폐허’는 인간 연맹과 야월족의 영역이 모호하게 뒤섞인 금지된 땅이자, 동시에 그들이 유일하게 만날 수 있는 은밀한 장소였다.

서린은 거친 숨을 고르며 돌무더기 사이를 헤쳐 나갔다. 발아래 마른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이 적막 속에서는 총성처럼 크게 울렸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는 존재가 있을까 두려워 그녀는 더욱 조심스레 움직였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에 저도 모르게 옷깃을 움켜쥐었지만, 그것은 환영이 아닐까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오래된 제단의 흔적이 남아있는 공터에 다다르자, 달빛 아래 홀로 서 있는 낯선 그림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은회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검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났다. 야월족의 왕자, 카인. 그의 피부는 달빛을 머금은 듯 창백했지만, 그 아래로 흐르는 고대의 힘은 늘 서린의 심장을 잡아챘다.

“카인…”

서린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망설임 없는 그의 눈빛과 마주하자, 불안으로 가득 찼던 심장이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언제나 짧았다.

카인은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차가운 손이 서린의 뺨을 감쌌다. 그의 손길은 늘 거칠고 투박했지만, 동시에 그녀의 얼어붙은 영혼을 녹이는 유일한 온기였다.

“늦지 않았어. 무사히 와주어 고맙다.”

그의 목소리는 숲의 바람처럼 낮고 깊었지만, 그 안에 담긴 안도감은 서린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서린은 저도 모르게 그의 품에 안겼다. 딱딱한 갑옷 같은 그의 몸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익숙한 숲과 어둠의 향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면서도, 그녀는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숨이 막혀… 연맹의 수색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이곳까지 탐색대가 들어왔어.”

서린의 말에 카인의 몸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다 멈췄다.

“알고 있다.” 카인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놈들의 냄새가 여기저기 묻어 있어. 며칠 전에는 우리 부족의 정찰대가 놈들에게 습격당했지.”

서린은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카인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의 뺨에는 옅은 흉터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야월족과 인간 연맹은 수백 년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녀는 인간 연맹의 고위 기사 단장이었고, 그는 야월족의 다음 왕이 될 자였다. 종족의 운명이 걸린 이 전쟁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더 이상은… 이곳에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 서린은 겨우 말을 이었다. 목소리가 바늘처럼 따끔거렸다. “나도… 나를 따르는 이들의 눈을 피하기가 힘들어지고 있어.”

카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안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차갑게 식어가는 폐허의 공기처럼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올 것이 왔군. 인간들은 만족을 모르지. 그들의 탐욕은 우리들의 숲을 갉아먹고, 이제는 이 경계의 땅마저 완전히 집어삼키려 한다.”

“카인… 오해하지 마. 나는…”

“아니.” 카인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의 손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렸다. “나는 너를 믿는다, 서린. 너만이 나의 유일한 믿음이다.”

그의 말에 서린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모든 것을 걸고 지키는 믿음. 그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잔혹한 무게였다.

그 순간, 멀리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숲의 깊은 곳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 그리고 발자국 소리. 한두 명이 아니었다. 연맹의 정찰대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은밀했지만, 야월족의 뛰어난 청력을 가진 카인에게는 분명하게 들렸을 터였다.

카인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그의 손이 허리춤에 찬 검의 손잡이로 향했다. 그 검은 밤의 어둠처럼 검고, 달빛 아래에서 희미하게 푸른 빛을 발했다.

“돌아가야 한다, 서린.” 그의 목소리는 명령조였다. “놈들이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 당장. 놈들에게 들키면 모든 것이 끝이다.”

서린은 망설였다.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 마치 심장을 도려내는 듯 아팠다. 그러나 카인의 눈빛은 단호했다. 그는 그녀의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서린!”

멀리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 인간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폐허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고, 서린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녀의 부재를 눈치챘거나, 아니면 애초에 덫을 놓았을 수도 있었다.

“가자.” 카인이 서린의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그의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그녀를 끌어당겼다. 그들은 폐허의 깊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고대 석벽의 그림자만이 그들을 뒤덮었다.

숨이 멎을 듯한 침묵 속에서, 숲을 가로지르는 인간 정찰대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들의 랜턴 불빛이 어둠 속을 헤집으며 위태롭게 흔들렸다. 날카로운 시선이 모든 곳을 훑었다.

“서린 단장님!” 한 병사의 목소리가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어디 계십니까!”

서린은 카인의 품에 바싹 달라붙어 숨죽였다. 그녀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어올랐다. 들키는 순간, 그들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날 터였다. 연맹에게는 반역이었고, 야월족에게는 배신이었다.

카인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숨어 있어. 내가 놈들을 다른 곳으로 유인하겠다.”

“안 돼! 혼자서는 위험해!” 서린은 필사적으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카인 혼자서 정찰대 전체를 상대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걱정 마.”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나는… 야월족이다.”

그의 말과 함께, 카인의 눈동자에 옅은 보랏빛 섬광이 스쳤다. 그의 몸에서 차가운 어둠의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야월족만이 지닌 고대의 마력이었다. 이 힘을 쓰면 그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서린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터였다.

카인은 서린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은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라, 서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인은 그림자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둠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서린은 그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정찰대원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쪽이다! 숲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 병사의 외침과 함께, 숲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휘몰아쳤다. 이어진 것은 섬뜩한 칼날 소리와, 인간 병사들의 비명, 그리고 어둠 속에서 번개처럼 번뜩이는 보랏빛 섬광이었다. 카인이 싸우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

서린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그가 위험에 처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가 지금 나서는 것은 그의 희생을 헛되이 만드는 일이었다. 그녀는 눈물을 참고, 카인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속삭였던 말을 되뇌었다.

*살아남아라, 서린.*

그녀는 차가운 석벽에 몸을 기댄 채, 숲을 가득 채우는 처절한 검투의 소리와 함께, 그가 인간들 속에서 얼마나 외로웠을지, 그리고 자신 또한 얼마나 위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금지된 사랑의 끝은 대체 어디일까. 그녀의 손이 저도 모르게 옷깃 안쪽, 심장 부근을 쓸었다. 그곳에는 카인이 준 작은 흑요석 조각이 숨겨져 있었다.

숲은 비명과 검의 충돌음으로 가득 찼다. 그녀는 들키지 않도록,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곧, 익숙한 숲의 침묵 속에, 싸움의 흔적만이 아득하게 남았다. 침묵이 너무 길었다.

카인은… 살아있는 걸까?

서린은 절규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참고, 오직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숨을 쉬었다. 이 금지된 사랑이 그녀를 어디까지 몰아붙일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사랑은, 결코 끝낼 수 없으리라는 것을.

폐허 깊은 곳에서, 서린은 차갑게 식어가는 흑요석 조각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숲 저편에서, 그녀의 심장을 찢어놓는 듯한, 섬뜩한 어둠의 절규가 메아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