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핏빛 그림자

썩어 문드러진 건물의 잔해 사이로 스며드는 새벽빛은 회색빛 세상에 생기를 불어넣기보다, 죽음의 흔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뿐이었다. 진우는 차가운 금속 파편 위에 웅크리고 앉아 식어버린 통조림 내용물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흙먼지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하게 풍기는 피 냄새가 뒤섞인 공기는 이제 그에게 익숙했다. 아니, 익숙해져야만 했다.

“젠장.”

낮게 읊조린 욕설은 입안에 맴돌다 흩어졌다. 긁어낸 캔 바닥에 남은 찌꺼기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서야 그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배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었다. 그것은 육체의 허기가 아니었다. 심장을 갉아먹는, 끝없는 복수심의 허기.

눈을 감자, 시커먼 악몽이 다시 찾아왔다. 굉음과 비명으로 가득했던 그날. 무너진 공장 지대, 발밑을 기어 다니던 끔찍한 그림자들. 그리고… 그 그림자들 틈에서 저를 밀어 넣던 서늘한 손길.

*“미안하다, 진우야.”*

그때 선우의 얼굴에 떠오르던 비열한 미소. 자신을 던져버리고, 도망치던 그 녀석의 뒷모습. 배신감에 물들었던 세상은 그 순간 지옥으로 변했다. 찢겨나가고, 짓밟히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처박히면서도, 진우는 죽을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오직 하나, 그 새끼에게 똑같이 되갚아주기 위해.

벌써 1년. 지옥 같은 1년이었다. 온몸의 흉터는 그날의 기억을 피부 위에 새겨 넣은 문신과도 같았다. 아물지 않는 상처들이었다.

진우는 벌떡 일어섰다. 등 뒤에 짊어진 낡은 배낭은 그의 모든 삶이었다. 한 손에는 녹슨 쇠지팡이를 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캔을 발로 짓이겨 찌그러뜨리고, 그는 폐허의 틈새로 몸을 던졌다. 녀석의 흔적을 쫓는 일은 맹목적이고 집요했다. 작은 소문, 희미한 낙서, 심지어 버려진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발견된 찢어진 천 조각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제, 마침내 확실한 정보를 손에 넣었다.

북쪽, 옛 고속도로를 따라 며칠을 가면, ‘요새’라고 불리는 거대한 폐기물 처리장이 나온다는 소문이었다. 선우가 그곳의 우두머리가 되어 소규모 집단을 규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정보통은 비쩍 마른 고물상 노인이었다. 쌀 한 봉지를 대가로, 노인은 눈을 번뜩이며 진우에게 속삭였다.

“선우 놈은… 변했어. 덩치를 키우고, 사람들을 쥐락펴락하고 있지. 거기 들어가려면 피를 봐야 할 거야.”

피. 진우는 그 단어를 되뇌며 옅게 비웃었다. 피라면, 이미 충분히 봤다. 앞으로 더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끝에는 선우의 피가 있을 터였다.

오래된 지도를 펼쳐 길을 확인했다. 갈라지고 찢겨나간 종이 위로 굳은살 박인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낡은 볼펜으로 표시된 작은 점 하나. 그곳이 바로 그의 목적지였다.

길은 험난했다. 썩은 냄새를 풍기는 시체들이 널브러진 고속도로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녹슨 차량들은 길을 막았고, 어둠 속에서는 알 수 없는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의 감각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언제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세상이었다. 적은 변종 생명체일 수도 있었고, 굶주린 인간일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었다.

해질녘, 그는 숲속의 작은 동굴을 찾아 몸을 숨겼다. 희미한 불을 피우고, 남은 식량을 씹었다. 귓가에는 끊임없이 선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건… 어쩔 수 없었어.”*

개소리.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어쩔 수 없는 건 없었다. 오직 선택만 있을 뿐. 그리고 선우는 가장 비열하고 잔인한 선택을 했다.

삼 일째 되던 날, 멀리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요새’. 마침내 도착한 것이다.

진우는 몸을 낮춰 수풀 속으로 파고들었다. 몇 시간 동안 주변을 탐색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거대한 폐기물 더미를 병풍 삼아 세워진 거점은, 낡은 철판과 콘크리트 잔해로 얼기설기 덧대어져 있었다. 망루에는 감시병들이 서 있었고, 주변에는 뾰족한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눈에 익숙한 뒷모습이 들어왔다. 망루 아래, 대여섯 명의 부하들과 함께 서서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는 남자. 단단한 어깨와 늘름한 체격. 변함없는, 아니, 더욱 당당해진 모습이었다.

“선우… 이 개새끼.”

진우의 목구멍에서 끓어오르는 욕설이 터져 나왔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저 녀석은 이곳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데, 자신은 지옥의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와야 했다. 공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 공평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진우는 조용히 배낭에서 작은 공구를 꺼냈다. 낡았지만 잘 관리된 칼날과 얇은 철사. 저 견고해 보이는 요새의 방어벽은 틈새가 없을 리 없었다. 모든 인간의 작품은 허점을 가지고 있었다.

밤이 깊어지고, 요새 내부의 불빛이 희미해졌다. 감시병들의 움직임도 뜸해지는 것을 확인한 진우는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철조망의 틈새를 찾아냈다. 녹슨 철사를 끊어내는 데는 숙련된 기술이 필요했다. 쇳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칼날을 움직였다.

싸늘한 밤공기 속에서 진우의 눈은 이글거렸다.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웃고 있었다. 편안해 보였다. 그 모습에 진우의 심장은 더욱 차갑게 얼어붙었다.

철조망을 넘어 요새 안으로 진입했다. 복잡한 폐기물 더미와 낡은 컨테이너 박스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다. 경비병들의 순찰 경로를 피하며, 진우는 내부로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그의 목표는 선우의 침실이나 집무실 같은 은밀한 공간이 아니었다. 좀 더 넓고, 공개적인 장소. 녀석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곳.

그가 찾아낸 곳은 요새의 중앙 광장 같은 곳이었다. 내일 아침, 이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식량을 배급받거나, 일거리를 할당받을 터였다. 선우가 가장 권위를 과시하기 좋은 장소.

진우는 빈틈없이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그는 배낭에서 미리 준비해 온 낡은 천 조각과 작은 칼을 꺼냈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 녀석이 매일 발을 디딜 그곳에 그림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거친 천 위에 피가 마른 붉은 흙을 문지르고, 칼날로 글자를 새겼다. 단순한 글자였지만, 그 의미는 선우의 심장을 얼려버릴 것이었다.

진우는 작업을 마치고 한 발짝 물러났다. 달빛 아래, 붉은 흙으로 새겨진 글자가 섬뜩하게 빛났다.

**”기다려라.”**

그 짧은 두 글자 아래, 찢어진 자신의 옛 사진 조각을 놓았다. 배신당하기 전, 선우와 함께 웃고 있던 자신의 얼굴. 정확히 반으로 찢겨진 사진.

진우는 조용히 몸을 돌려 요새를 빠져나왔다. 떠오르는 새벽, 멀리서 들려오는 요새 내부의 소음. 아마 누군가 그의 메시지를 발견했을 터였다. 곧, 그 소음은 혼란과 경악으로 변할 것이다.

진우는 폐허가 된 고속도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복수는 이제 시작이었다.
선우. 네가 날 기억한다면, 오늘 밤부터 네 숨통을 조이는 그림자가 되어줄 테니.
기대해도 좋다. 네 심장이 피 말라 죽을 때까지, 나는 네 그림자가 될 테니까.
핏빛 그림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