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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異形)의 공명(共鳴): 0시의 아파트

### **프롤로그: 익숙한 균열**

**[장면 1] 고층 도시 야경**

**VISUAL:**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의 스카이라인. 수많은 고층 빌딩들이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빌딩 창문마다 작은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 마치 거대한 회로 기판의 점멸하는 신호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한 특정 아파트 단지를 향해 천천히 줌인한다. 다른 빌딩보다 유독 창문이 적게 빛나는, 어딘가 음산하고 비현실적인 기운을 풍기는 고층 아파트, ‘시그니엘 레지던스’가 화면 가득 들어온다. 창문의 불빛은 기묘하게 불규칙적이다. 일부는 강렬하게 빛나고, 일부는 맥없이 깜빡이며, 어떤 창은 아예 검은 심연처럼 텅 비어 있다. 미세하게, 도시의 불빛 사이로 옅은 푸른색 잔광이 번뜩이는 것이 보이지만, 곧 사라진다.

**SOUND:** 도시의 웅성거림. 멀리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바람 소리가 점차 날카롭게 변하며 고층 빌딩 사이를 휘감는 소리.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낮은 톤의 웅얼거림 같은 노이즈.

**NARRATION (이하진, 덤덤한 목소리):**
“우리는 익숙함 속에 산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커피를 마시며, 같은 빌딩의 닳아빠진 엘리베이터를 탄다. 아주 가끔, 그 익숙함에 미세한 균열이 생길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정전이 된 것처럼 깜빡이는 가로등이나, 이유 없이 삐걱거리는 문짝 같은 것들. 우리는 대개 그걸 피로 탓하거나,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해 버린다. 이 도시가 본래부터 품고 있던, 숨 쉬는 균열의 존재를 애써 외면하면서.”

**[장면 2] 이하진의 거실 (밤)**

**VISUAL:** 어둠이 내려앉은 이하진의 아파트 거실. 현대적이고 미니멀한 인테리어지만, 책이나 그림, 오브제들이 가득하여 다소 산만한 느낌을 준다. 간접조명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지만, 거실 한쪽 구석은 그림자에 잠겨 있다. 창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펼쳐져 있지만, 커튼이 반쯤 닫혀 있어 빛이 차단된 상태다. 거실 중앙에는 낡은 소파가 있고, 그 위에 하진이 앉아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피곤함과 짜증이 섞여 있다. 머리는 대충 묶고 편한 잠옷 차림이다.

**SOUND:**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간간이 들리는 한숨 소리. 아파트 내부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진동음. (낮은 주파수). 창밖에서 바람이 창문을 긁는 듯한 소리.

**이하진 (독백):**
“아, 정말. 데드라인이 코앞인데, 왜 하필 이럴 때…. 머리는 지끈거리고, 글은 한 글자도 진도가 안 나가고. 이런 게 ‘슬럼프’인가? 아니면 단순히 ‘피곤함’인가? 요즘 들어 부쩍 예민해진 것 같기도 하고. 밤마다 들리는 저 이상한 진동음 때문인가?”

하진이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거실 한쪽 벽에 걸린 낡은 액자로 향한다. 액자 속에는 흐릿하게 빛바랜 흑백사진이 담겨 있다. 알 수 없는 기호와 복잡한 회로도가 그려진 벽면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모습. 사진 속 인물들은 군복을 입고 있거나, 연구원 가운을 걸치고 있다.

**이하진 (독백):**
“이런 시대에 굳이 흑백 사진이라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기신 유일한 유품이라 버리지도 못하고. 대체 저게 뭔 사진이라고 그렇게 애지중지하셨는지.”

그녀가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순간, 거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의 크리스털 장식 하나가,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튕긴 것처럼, 미세하게 흔들린다. 아주 작고 짧은 움직임이었기에 하진은 알아채지 못한다.

**SOUND:** (거의 들리지 않는) 크리스털이 미세하게 부딪히는 쨍, 하는 소리.

**이하진:**
“젠장,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둘까? 어차피 대리님이 알아서 수정해주시겠지.”

하진이 노트북을 덮으려던 순간, 서재 문이 *끼이익* 하고 소리를 내며 아주 미세하게 열렸다 닫힌다.

**SOUND:** 낡은 문이 서서히 열리는 *끼이익* 소리, 그리고 스르륵 닫히는 소리.

하진은 미간을 찌푸린다.

**이하진:**
“문 안 닫았나? 에어컨 때문에 틈새 바람 들면 안 되는데.”

하진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서재 쪽으로 걸어간다. 서재 문은 닫혀 있지만, 아주 미세한 틈이 벌어져 있다. 그녀가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서재 안에서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SOUND:** 서재 안에서 ‘툭’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작지만 명확하게 들린다).

하진은 순간 멈칫한다.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이하진:**
“뭐지?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아닌데.”

하진이 천천히 문을 열고 서재 안으로 고개를 내민다.

**[장면 3] 이하진의 서재 (밤)**

**VISUAL:** 어둡고 정돈되지 않은 서재 내부. 책들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 작업용 책상, 그리고 구석에 쌓인 박스들. 방은 전체적으로 먼지가 희끗희끗하다. 바닥에는 방금 떨어진 듯한, 낡은 세계 지도가 펼쳐져 있다. 지도는 군데군데 찢겨 있고, 특이하게도 몇몇 대도시의 위치에 붉은색 점이 찍혀 있다. 서울에도 붉은 점이 찍혀 있고, 그 위에 하진의 아파트가 있는 지역이 붉은색으로 강조되어 있다.

**SOUND:** 정적. 하진의 거친 숨소리. 벽시계의 *째깍*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하진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간다. 떨어진 지도를 주워 올리려던 순간,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연필 한 자루가, 마치 누군가 건드린 것처럼, 스르륵 굴러 떨어진다.

**SOUND:** 연필이 굴러 떨어지며 바닥에 부딪히는 ‘또각’ 소리.

하진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는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그녀의 시선은 연필이 떨어진 방향, 즉 책상 아래를 향한다. 책상 다리 밑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하진:**
“……바람? 창문이 열렸나?”

하진이 황급히 창문을 확인한다. 굳게 닫혀 있다. 그녀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서재 안의 공기가 갑자기 차갑게 느껴진다.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듯한, 음습한 냉기가 그녀의 뺨을 스친다.

**SOUND:** 서재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듯한 효과음 (으스스한 바람 소리, 미약한 고주파음).

하진은 재빨리 서재를 빠져나와 문을 닫는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소파로 돌아와 몸을 웅크린다.

**이하진 (독백):**
“말도 안 돼. 내가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야. 아니면, 이 아파트가 너무 낡아서 그런 거겠지. 그래, 낡아서….”

그녀는 애써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지만,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때, 거실 벽에 걸려 있던 할아버지의 흑백사진 속에서 미세한 빛이 깜빡인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사진 속 기이한 기호들이 희미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SOUND:** (사진에서) 아주 미세한, 전기 스파크 같은 ‘치직’ 소리.

하진은 사진을 응시하지만, 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비빈다.

**이하진 (독백):**
“정말 미쳤나 봐. 나도 이젠.”

그녀는 애써 침착하려 하지만, 이미 균열은 시작되었다.

**[장면 4] 이하진의 침실 (새벽)**

**VISUAL:** 하진이 침대에 누워 뒤척인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한다. 침실은 어둡고 조용하다. 창밖으로는 아직 여명이 밝아오기 전의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감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역력하다.

**SOUND:** 하진의 뒤척이는 소리. 불규칙한 심장 박동 소리 (BGM처럼 깔림).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아파트의 ‘삶의 소리’ (배관 소리, 멀리서 들리는 냉장고 소리 등).

그때, 침대 발치에 놓인 작은 협탁 위, 스마트폰 화면이 *번쩍* 하고 켜진다. 문자나 알림이 온 것은 아니다. 그저 화면이 스스로 켜졌다 꺼지기를 반복한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SOUND:** 스마트폰 화면이 켜지고 꺼질 때마다 나는 희미한 ‘띠링’ 하는 전자음.

하진은 눈을 번쩍 뜬다. 그녀의 시선이 스마트폰으로 향한다. 스마트폰은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은 채, 화면이 주기적으로 깜빡이고 있다.

**이하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뭐야…? 고장 났나?”

그녀가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으려던 순간, 스마트폰 화면이 갑자기 강렬한 흰색 섬광을 내뿜으며 *찌이익* 하는 고주파음을 낸다. 마치 감전된 것처럼.

**SOUND:** 스마트폰에서 ‘찌이익’ 하는 고주파음과 함께 강렬한 전자음이 터져 나온다.

하진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거둔다. 스마트폰은 섬광과 고주파음을 낸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깜빡이기 시작한다. 이제는 더 빠르고 불규칙하게, 마치 무언가가 그녀를 비웃는 것처럼.

**이하진 (떨리는 목소리로):**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라고….”

그녀는 벌떡 일어나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눈은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다. 그때, 침대 아래에서 *스윽* 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누군가 침대 밑을 기어가는 소리처럼.

**SOUND:** 침대 아래에서 들려오는 마찰음, *스윽*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

하진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녀는 다리를 오므려 가슴까지 끌어안는다. 침대 밑을 내려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이하진 (공포에 질려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 없어? 제발…”

그녀의 시선이 문득 방 한쪽에 놓인 옷장 거울로 향한다. 거울 속에는 하얗게 질린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 뒤, 어둠 속에 흐릿한 실루엣이 보인다. 아주 짧은 순간, 그것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사라진다.

**VISUAL:** 거울 속, 하진의 어깨 너머로 흐릿하고 검은 형상이 스치듯 보인다. 섬뜩한 시각적 효과.

**SOUND:** (환청처럼) 멀리서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기분 나쁘게 왜곡되어 들린다. 그리고 속삭임. *“찾았다…”*

하진은 비명을 삼킨다. 눈을 질끈 감는다.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침대 아래의 ‘스윽’ 하는 소리는 멈췄다. 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더 무겁고 차갑게 가라앉아 있다. 그녀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압도적인 공포 속에서,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다.

**NARRATION (이하진, 떨리는 목소리):**
“그날 새벽, 나는 깨달았다. 이 아파트의 익숙한 균열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오래된 것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균열의 틈새로 무언가 기어 나와, 나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장면 5] 아파트 외경 (새벽/해 뜨기 직전)**

**VISUAL:**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도시의 풍경. 시그니엘 레지던스 아파트 건물은 여전히 어둡고 음침한 기운을 풍긴다. 하진의 아파트 창문은 여전히 어둡게 그림자 져 있다. 건물 외벽에 미세한 푸른 잔광이 깜빡이다가 사라진다. 마치 건물이 숨 쉬는 것처럼.

**SOUND:** 새벽을 알리는 새소리 (멀리서 희미하게). 그러나 건물 자체에서 나는 낮은 주파수의 진동음은 여전히 지속된다.

**NARRATION (이하진, 공포와 체념이 섞인 목소리):**
“그것은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이 도시는, 아니, 이 세계는,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숨 쉬고 있었다. 과거의 어떤 사건, 어떤 비극이 불러온, 혹은 깨워버린 잔류체들. 그들은 그림자 속에 숨어, ‘공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아파트는, 그 공명을 위한 완벽한 안식처였다.”

**[장면 6] 오프닝 크레딧**

**VISUAL:** 푸른 잔광과 함께 타이틀이 떠오른다. 뒤로는 도시의 흐릿한 윤곽이 보인다.
**타이틀: 이형(異形)의 공명(共鳴)**

**SOUND:** 웅장하고 미스터리한 오프닝 곡.

### **에피소드 1: 깨어나는 그림자**

**[장면 7] 이하진의 거실 (아침)**

**VISUAL:** 아침 햇살이 거실로 쏟아져 들어온다. 어젯밤의 음산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하진은 소파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있다. 얼굴은 여전히 창백하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깊다. 간밤의 공포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그녀는 흐릿한 정신으로 눈을 뜬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SOUND:** 아침의 소음.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이웃집에서 나는 생활 소음. 커피 머신이 물을 끓이는 소리 (주방에서).

하진이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젯밤 일은 꿈이었던가?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이 있던 협탁으로 향한다. 스마트폰은 아무렇지 않게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액정은 꺼져 있고,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인다.

**이하진 (혼잣말):**
“젠장, 꿈이었나. 하긴, 그럴 리가 없지.”

하진은 애써 자신을 다독인다. 어젯밤의 모든 일이 피곤함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믿고 싶다. 그녀는 주방으로 향한다.

**[장면 8] 이하진의 주방 (아침)**

**VISUAL:** 깔끔한 현대식 주방. 하진이 비틀거리며 커피 머신 앞에 선다. 커피 컵을 집으려 손을 뻗는 순간, 컵이 그녀의 손이 닿기도 전에, 미세하게 *달그락* 하며 흔들린다.

**SOUND:** 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달그락’ 소리.

하진은 컵을 쳐다본다.

**이하진:**
“뭐야? 지진인가?”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창밖을 본다. 도시는 평온하다. 아무도 흔들리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하진은 컵을 조심스럽게 집어 든다. 그녀의 손끝이 컵에 닿는 순간, 컵 표면이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이하진 (독백):**
“에어컨을 틀어놓고 잤나? 이상하네. 새벽에 껐는데.”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데, 냉장고 문이 *삐익* 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SOUND:** 냉장고 문이 천천히 열리는 ‘삐익’ 소리.

하진이 깜짝 놀라 냉장고를 돌아본다. 냉장고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안에서는 차가운 김이 피어오른다. 냉장고 안의 식재료들은 멀쩡해 보인다.

**이하진:**
“세상에… 왜 이래, 오늘? 냉장고 문도 제대로 안 닫았나?”

그녀는 냉장고 문을 닫는다. 손바닥으로 꾹 눌러 잠그지만, 문은 이상하게도 꽉 닫히지 않고 아주 미세하게 틈이 벌어져 있는 것을 느낀다.

**[장면 9] 이하진의 사무실 (낮)**

**VISUAL:** 활기찬 분위기의 현대적인 사무실. 하진은 자신의 책상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다. 노트북 화면에는 작업 중이던 문서가 켜져 있다. 그녀의 얼굴은 피로에 절어 있다. 옆자리 동료인 강민우가 그녀를 툭툭 건드린다.

**SOUND:** 사무실의 소음. 키보드 소리, 전화벨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 민우가 하진을 건드리는 소리.

**강민우:**
“야, 이대리. 여기서 이러고 있다가 부장님한테 걸리면 큰일 난다?”

하진이 화들짝 놀라 눈을 뜬다.

**이하진:**
“어… 민우 씨. 미안. 잠깐 잠들었네.”

**강민우:**
“잠깐이 아니라 거의 시체 수준이었는데. 얼굴이 왜 이렇게 핼쑥해? 귀신이라도 봤어?”

민우가 농담처럼 말하자, 하진의 표정이 순간 굳어진다.

**이하진 (억지로 웃으며):**
“하하, 무슨 소리야. 그냥 어제 야근해서 그래.”

**강민우:**
“야근? 요즘 야근할 것도 없잖아. 혹시 썸 타는 사람이라도 생겨서 밤새 통화하고 그런 거 아니야? 오, 이대리 드디어 연애하나?”

**이하진:**
“쓸데없는 소리. 됐고, 어제 보낸 기획안 피드백은 왔어?”

하진이 대화를 돌리려 한다. 그녀는 노트북 화면을 켜고 작업을 재개하려 하지만, 마우스 포인터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 한다.

**VISUAL:** 노트북 화면에 마우스 포인터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폴더가 열리고 닫히는 모습.

**이하진 (당황):**
“어? 왜 이래?”

**강민우:**
“응? 뭐가?”

민우가 하진의 노트북 화면을 흘끗 본다.

**강민우:**
“음… 마우스 배터리 나갔나? 아니면 무선 간섭인가? 요즘 이런 일 많잖아.”

**이하진:**
“그런가?”

하진은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마우스를 바꿔 본다. 하지만 포인터는 여전히 미세하게 덜덜 떨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사무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다.

**이하진 (독백):**
“간섭… 간섭이라니. 도대체 무엇의 간섭인 건데?”

**[장면 10] 이하진의 아파트 복도 (밤)**

**VISUAL:** 어둠이 깔린 아파트 복도. 복도등이 간간이 깜빡인다. 하진이 지친 걸음으로 자신의 아파트 문을 향해 걸어온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피곤함과 미세한 불안감을 담고 있다. 복도 끝, 그녀의 아파트 현관문은 유독 검게 그림자 져 보인다.

**SOUND:** 하진의 구두 굽 소리. 복도등이 깜빡일 때마다 나는 ‘치직’ 하는 작은 소리.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고양이 울음소리 (기이하게 들린다).

하진이 현관문에 다가갈수록, 복도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는 팔짱을 끼며 몸을 웅크린다.

**이하진 (독백):**
“이상하다. 보일러를 켜고 나갔는데.”

그녀가 현관문 앞에 섰을 때, 문에 달린 디지털 도어락이 *삐비비빅* 하고 불규칙적인 경고음을 내기 시작한다. 액정에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SOUND:** 도어락에서 ‘삐비비빅’ 하는 불규칙한 경고음. 짧은 전자 스파크 소리.

하진은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친다.

**이하진:**
“뭐야? 고장 났나?”

그녀가 손을 뻗어 도어락을 만지려던 순간, 문 안쪽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SOUND:** 아파트 문 안쪽에서 ‘쿵’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하진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는다.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 같다.

**이하진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 있어요?”

그녀는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잠겨 있지 않다. 분명히 잠그고 나왔는데. 하진은 문을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밀어 연다.

**[장면 11] 이하진의 거실 (밤)**

**VISUAL:** 어둠이 깔린 거실 내부. 창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커튼이 활짝 젖혀져 있어 밖의 어두운 도시 야경이 그대로 보인다. 거실 중앙에는 낡은 액자가 떨어져 깨져 있다. 할아버지의 흑백사진이 산산조각난 유리 조각들 위에 놓여 있다. 사진 속,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번개처럼 푸른빛을 내며 섬광처럼 깜빡인다. 그리고 사진 속 인물들의 눈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잠시 푸르게 빛나는 것이 보인다.

**SOUND:** 액자가 깨진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부딪히는 ‘쨍그랑’ 소리. 사진에서 나는 ‘치직’ 하는 전기 스파크 소리. 하진의 거친 숨소리.

하진은 충격과 공포에 질려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 그녀의 시선은 깨진 액자에 고정된다. 사진 속에서 푸른 잔광이 깜빡이는 것을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이하진 (혼잣말, 떨리는 목소리):**
“이건… 꿈이 아니야. 이건….”

그때, 주방 쪽에서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누군가 칼로 식탁을 긁는 듯한 섬뜩한 소리.

**SOUND:** 주방에서 들려오는 칼로 식탁을 긁는 듯한 ‘달그락달그락’ 소리.

하진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다. 그녀는 주방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어둠 속에 잠긴 주방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소리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하진 (작은 목소리로):**
“누구… 거기 있어요?”

대답은 없다. 대신, 소리가 멈추고, 이번에는 안방 침실에서 *쿵* 하고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SOUND:** 안방 침실에서 ‘쿵’ 하고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

하진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음을 직감한다. 그녀의 머릿속에 할아버지의 흑백사진이 떠오른다. 사진 속 기호들. 그리고 할아버지가 생전에 가끔 하셨던 알 수 없는 말들.

**FLASHBACK (하진의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목소리):**
“하진아, 이 세상은 말이야,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다. 특히 이 서울이라는 도시는… 오래된 역사의 틈새에 숨겨진 비밀이 많지. 아주 오래전, 나라를 위해 뭔가 특별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어. 그들이 남긴 기록과 흔적들이 여전히 이 땅속에 흐르고 있단다. 그걸 ‘공명’이라고 불렀지. 때로는… 그 공명이 너무 강해져서, 보이지 않는 것들이 현실로 튀어나오기도 한단다.”

**[장면 12] 이하진의 거실 (밤)**

**VISUAL:** 플래시백이 끝나고, 다시 현실의 하진. 그녀는 여전히 거실에 서서 주방과 침실 사이를 오가는 기척에 공포에 질려 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단순히 유령이 아니다. 할아버지의 말과, 사진 속의 기호들. 이 모든 것이 지금 그녀의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공포는 점차 미스터리로 변해간다.

**SOUND:** 거실 전체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진동음이 점점 커진다. 낮은 주파수의 웅얼거림이 벽을 타고 울리는 듯하다.

하진은 손을 덜덜 떨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 하지만, 화면에 뜨는 것은 끊임없이 깜빡이는 화면과 ‘서비스 불가’ 메시지뿐이다.

**이하진 (절망적으로):**
“안 돼… 전화도 안 돼!”

그때, 거실의 간접조명이 *번쩍* 하고 터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튄다. 방은 순간적으로 암흑에 잠긴다.

**SOUND:** 전등이 터지는 ‘펑!’ 하는 소리, 유리 파편이 튀는 ‘쨍그랑’ 소리. 순간적인 정적 후, 더욱 커지는 낮은 주파수의 웅얼거림.

완전한 어둠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차가운 손길을 느낀다.

**이하진 (비명):**
“아악!”

**VISUAL:** 암흑 속에서 하진의 비명만 들린다. 스크린은 완전히 어둡지만, 마지막 순간, 하진의 눈동자에 비친 형체만은 선명하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온몸이 기이한 푸른 잔광으로 뒤덮여 있고, 눈은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그 형체의 뒤로, 할아버지 사진 속의 기호들이 아파트 벽면 전체에 푸르게 새겨지는 것이 보인다.

**SOUND:** 하진의 비명과 함께, 압도적인 저음의 공명음이 아파트 전체를 뒤흔든다.

**NARRATION (이하진, 마지막 절규):**
“할아버지… 이 공명… 이 잔류체들이 대체… 뭘 하려는 거죠?”

### **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공명**

**[장면 13] 아파트 외경 (다음 날 아침)**

**VISUAL:** 다음 날 아침,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운 서울의 전경. 시그니엘 레지던스 아파트 건물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서 있다. 그러나 하진의 아파트가 있는 층의 창문은, 다른 어떤 창문보다도 유독 짙은 그림자에 잠겨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건물 외벽에 아주 미세하게, 옅은 푸른색 잔광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건물이 다시금 숨을 고르는 것처럼.

**SOUND:** 평온한 아침의 도시 소음. 희미하게, 아주 낮은 주파수의 진동음이 도시 전체에서 깔려 있다.

**NARRATION (이하진, 속삭이듯):**
“그날 이후, 나는 그 아파트에서 도망쳤다. 텅 빈 몸으로, 모든 것을 잃은 채. 하지만 알게 되었다. 그건 단순한 ‘현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도시는 오래전부터, 아니, 어쩌면 이 세계는 ‘대공진’이라 불리는 거대한 사건 이후부터, 보이지 않는 균열과 공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을. 내가 보았던 잔류체는…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익숙한 것들 틈새에 숨 쉬고 있다. 또 다른 ‘공명’의 순간을 기다리면서.”

**[장면 14] 뉴스 화면 (TV 모니터)**

**VISUAL:** 길거리 카페의 TV 화면. 뉴스 속보가 흘러나온다. 앵커는 무표정한 얼굴로 속보를 전하고 있다.

**뉴스 앵커:**
“어젯밤, 서울 시내 고층 아파트 ‘시그니엘 레지던스’에서 발생한 원인 미상의 화재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경찰은 내부 전기 합선으로 인한 화재로 잠정 결론 내렸으며, 현재까지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아파트에서는 최근 들어 전력 계통 불안정 및 이상 현상 신고가 잦았던 것으로….”

**SOUND:** 뉴스 앵커의 목소리 (담담한 톤). 카페 내부의 웅성거림.

카메라가 TV 화면에서 천천히 빠져나와, 창밖을 응시하는 한 여인의 뒷모습을 비춘다. 그녀는 하진이다. 그녀의 눈은 어딘가 초점 없이 멀리,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손목에는 옅은 푸른색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VISUAL:** 하진의 손목에 남아 있는, 마치 무언가에 잡혔던 듯한, 옅은 푸른색 손자국.

**SOUND:** 하진이 마시던 커피잔이 테이블 위에서 *달그락* 하고 미세하게 흔들린다.

하진은 컵을 내려놓으며,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짓는다. 그 미소는 공포보다는 알 수 없는 체념과 달관에 가깝다. 그녀의 시선은 다시 도시의 고층 빌딩들을 향한다. 빌딩들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푸른 잔광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NARRATION (이하진, 조용하고 결연한 목소리):**
“그것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끝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도시는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았고, 우리는 그 안에서, 깨어나지 말아야 할 것들을 깨워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나의 삶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공명은… 이미 시작되었으니까.”

**[장면 15] 엔딩 크레딧**

**VISUAL:** 어둠 속에서 푸른 잔광이 번개처럼 춤추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SOUND:** 미스터리하고 여운을 남기는 엔딩 곡.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희미하게 들리는 낮은 주파수의 ‘공명’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