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지배하는 시간, 삭막한 도시의 가장 후미진 골목. 달빛조차 드리우기를 포기한 좁은 틈새로 비집고 들어선 그림자 하나가 묵묵히 서 있었다. 축축한 바닥에 밟히는 흙먼지는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조용했다. 닳아 해진 검은 로브 아래로 드러난 그의 얼굴은 한때 따뜻한 미소로 가득했지만, 이제는 흉터와 고통으로 뒤덮인 차가운 가면이었다. 카인.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아벨….”
말없이 속삭인 이름은 쓰디쓴 독이었다. 그의 시선은 저 멀리, 빛과 소음으로 가득 찬 대공의 저택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지금, 도시의 가장 화려한 가면들이 모여 위선적인 웃음과 탐욕스러운 속삭임을 나누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 중심에는, 카인의 모든 것을 앗아간 자, 아벨이 서 있을 터였다.
7년 전.
배신은 비수처럼 심장을 꿰뚫었다. 가장 믿었던 친구의 손에 의해,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영혼까지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을 때, 카인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불태워 오직 복수라는 단 하나의 열망만을 남겼다. 그 7년 동안, 그는 그림자 속에서 살았고, 칼날 위를 걸었으며, 피로 손을 물들였다. 그의 복수는 단순히 목숨을 빼앗는 것을 넘어, 아벨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그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산산조각 내는 것이었다.
오늘 밤. 시작이었다.
카인의 시선이 저택에서 조금 벗어난, 그러나 여전히 대공의 영향력 아래 있는 한 건물로 향했다. 그곳은 대공가의 비밀 물품들을 보관하고 유통하는 거점 중 하나였다. 아벨이 직접 관리하는 곳은 아니지만, 그의 충직한 부하들이 드나드는 중요한 장소였다.
흐릿한 달빛 아래, 그 건물은 마치 거대한 검은 바위처럼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카인의 눈에는 그 견고함 속에 숨겨진 약점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는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 그 자체였다. 골목의 어둠이 그를 삼키고, 다시 토해내듯 그는 건물의 측면 담벼락에 조용히 착지했다.
“크흠, 크흠… 야, 오늘따라 왜 이렇게 춥냐? 이거 괜히 야간 근무 걸려가지고.”
담벼락 너머에서 경비병들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불타는 통나무 앞에서 몸을 녹이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카인은 한숨처럼 낮게 숨을 내쉬었다.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담벼락을 넘어섰다. 훈련받은 병사들이었지만, 그들의 감각은 그저 평범한 인간의 것에 불과했다.
세 명의 경비병.
한 명은 연신 하품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막대기로 불씨를 헤집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등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방심. 카인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였다.
그의 손에서 그림자처럼 번쩍이는 칼날이 나타났다. 특별한 마법이 깃든 검은 아니었다. 다만, 수많은 피를 마시고 단련된 숙련된 살인자의 도구일 뿐이었다.
첫 번째. 불씨를 헤집던 병사의 목덜미에 칼날이 스치고 지나갔다. 컥, 하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의 몸은 풀썩, 쓰러졌다. 그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다가선 카인의 움직임은 번개보다도 빨랐다.
두 번째. 하품하던 병사는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차가운 칼날이 그의 복부를 꿰뚫었고,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세 번째. 마지막 병사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에 몸을 움찔 떨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난 눈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두 개의 얼어붙은 눈동자를 마주했다.
“누… 누구… 윽!”
카인은 망설임 없이 칼날을 꽂아 넣었다. 그의 손은 한치의 떨림도 없었다. 차가운 눈빛은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바위를 깎아내듯, 그는 생명을 거두어들였다.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지만, 카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병사의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 단순한 살육이 아니었다. 이건 메시지였다.
삑- 삑- 삑-
경고음이 울렸다. 너무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주위를 끌기에는 적합한 소리였다. 그는 일부러 경보 장치를 건드렸다. 아벨의 부하들이 이 소리를 들을 것이었다. 그리고 달려올 터였다.
거대한 철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창고 안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뒤섞여 역겨운 불쾌감을 주었다. 카인은 안으로 들어섰다.
창고 내부는 예상대로 보물과 희귀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아름다운 보석들이 박힌 왕관, 고대 유물로 보이는 조각상, 그리고 어둠의 마법이 서려 있는 듯한 기이한 두루마리들까지. 아벨이 얼마나 많은 부를 축적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카인은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하고, 한쪽 구석에 놓인 상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나무 상자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아벨이 비밀리에 거래하는 금지된 물품들이 들어있을 터였다. 마약을 넘어선, 인간성을 좀먹는 흑마법의 재료들이거나, 잔인한 실험에 사용될 생체 샘플 같은 것들.
그는 가장 큰 상자 하나를 발로 걷어찼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무 상자는 산산조각 났다. 그 안에서 드러난 것은 핏자국으로 얼룩진 천뭉치와 그 아래 놓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형상의 기형 생물 표본이었다. 썩어가는 악취가 순식간에 창고를 뒤덮었다.
“젠장! 대체 무슨 일이…!”
경보음을 듣고 달려온 병사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섰다. 그들은 카인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세 명의 동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분노로 눈을 번뜩였다.
“침입자다! 잡아라!”
칼을 뽑아든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카인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칼날이 번뜩였다.
“하찮은 것들.”
그의 움직임은 물처럼 유연했고, 바람처럼 빨랐다. 병사들의 칼날이 허공을 갈랐고, 그들의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몇 초 만에, 다섯 명의 병사가 차가운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카인의 로브에는 핏방울 하나 튀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병사들 사이를 걸어갔다. 그의 눈은 여전히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는 가장 높은 곳에 매달려 있던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림자처럼 벽을 타고 올라가 샹들리에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그리고는 미리 준비해둔 작은 불씨 주머니를 꺼냈다.
“이것이… 복수의 시작이다.”
그의 손에서 불씨가 떨어졌다. 작은 불씨는 기름에 젖은 천에 옮겨붙었고,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창고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불꽃은 춤을 추듯 위로 솟구쳤고, 유독가스와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콰아아앙!
기름통 하나가 폭발하며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았다. 화염은 창고 안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카인은 불길 속에서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불꽃에 붉게 물들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펜던트를 꺼내 들었다. 낡고 빛바랜 펜던트에는 두 소년이 다정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한 명은 카인, 다른 한 명은… 아벨.
카인은 그 펜던트를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펜던트는 순식간에 녹아내려 재가 되었다. 과거의 잔해를 스스로 불태우는 행위였다.
“아벨…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내가 불태워주마.”
그는 불길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창고는 거대한 화염에 휩싸여 도시의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화재를 진압하려는 병사들의 혼란스러운 발소리와 비명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대공의 저택.
화려한 연회장 한가운데서 아벨은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귀족들의 칭송을 받고 있었다. 그때, 한 병사가 허둥지둥 달려와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제2창고가…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되고 있습니다!”
아벨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전소? 감히 누가…!”
그의 뇌리에 문득 스쳐 지나가는 얼굴이 있었다. 7년 전, 자신이 직접 나락으로 떨어뜨린 한 사내의 얼굴. 설마.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카인은 죽었어야 했다.
연회장의 웅성거림 속에서, 아벨의 심장이 불길한 예감으로 얼어붙었다.
불타는 창고의 잔해 속에서, 한 병사가 겨우겨우 살아남은 채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폐허를 응시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피로 쓰인 듯한 글자를 발견했다.
[시작일 뿐.]
그 글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의 눈을 꿰뚫고 지나갔다.
복수의 서막이, 그렇게 강렬하게 막을 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