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심연의 그림자: 첫 번째 기록

새벽은 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올 수도 없는 곳이었다. 아르테미스 호의 함교 통창 너머는 태초의 어둠이 영원히 군림하는 심연뿐이었다. 빛이라곤 수억 광년을 달려온 희미한 별무리, 그리고 그보다 더 멀리 떨어진 은하들의 잔상뿐이었다. 망망대해 같다고들 하지만, 우주는 망망대해조차 비할 바 없는 절대적 공허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공허 속에서, 아르테미스 호는 마치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유리병처럼 조용히 표류하고 있었다. 표류라고 해도 항로를 이탈한 것은 아니었다. 이 지루하고도 장엄한 항해는 인류의 뻗어 나가는 호기심이 도달한 가장 먼 지점에서 이루어지는 규격화된 임무의 일부였다. 이미 수개월째, 탐사선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광대한 성간 물질의 해류를 가르고 있었다.

“함장님, 순항 상태 안정적입니다. 특이 사항 없습니다.”

조타석의 박선우 조종사가 기계적인 목소리로 보고했다. 모니터의 숫자들은 언제나처럼 초록색이었다. 아르테미스 호의 심장 박동과도 같은 엔진의 미세한 진동이 함교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강준호 함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전방의 메인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파랗고 노란 점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탐사선 주변의 광대한 공간을 실시간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특이 사항이 없다는 보고는 곧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고, 이 광대한 우주에서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진실이었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바로 함장의 어깨를 짓누르는 고독감의 원인이었다. 수만 명의 인류가 그의 지휘 아래 깊은 잠에 빠져 이 머나먼 탐사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명과 희망이 이 강철 덩어리에 실려 있었다.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꿈을 꺾는 일과도 같았다.

“이수진 박사, 과학 부서는 여전히 이상 없습니까?”

준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피로감이 묻어났다.

함교 한켠의 과학 분석 스테이션에서 이수진 박사가 고글을 벗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녀의 헝클어진 갈색 머리카락이 가운 어깨에 닿아 있었다. “네, 함장님. 별다를 건 없지만, 오히려 그게 이상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넓은 공간에 정말 아무것도 없을 줄은…….”

수진은 말을 흐렸다. 그녀의 표정에는 타고난 호기심과 실망감이 뒤섞여 있었다. 우주 과학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없음’은 가장 큰 적이었다.

그때였다.

“함장님!”

수진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롭게 변했다. 준호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탐사선에서 ‘함장님’이라는 호칭 뒤에 붙는 놀라움은 늘 사고의 전조였다.

“무슨 일입니까, 이수진 박사?” 준호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수진은 다시 고글을 고쳐 쓰고 미친 듯이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놀림이 평소보다 두 배는 빨랐다.
“알 수 없는 에너지 서명 감지! 저희 탐사 범위 내에서요! 지척은 아니지만……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입니다!”

함교의 분위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조타석의 선우 조종사도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메인 디스플레이를 응시했다. 함교 중앙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새로운 점 하나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점들 사이에서 홀로 불길하게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정체불명?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보시오.” 준호의 목소리에 일말의 흥분이 섞이기 시작했다. 수개월간의 지루함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어떤 파장에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전자기파도 아니고, 중력파도 아니에요. 기존의 어떤 에너지 유형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마치…… 존재하지 않아야 할 것 같은 신호예요!” 수진은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경외심과 함께 미지의 공포가 서려 있었다.

“김태영 보안팀장, 전투 준비 태세.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승무원들에게 알리시오.” 준호가 침착하게 지시했다. 그의 시선은 붉은 점에 고정되어 있었다.

함교 한쪽에서 대기 중이던 김태영 보안팀장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통신장비를 들었다. 그의 단단한 얼굴에는 긴장감이 스쳤지만, 흔들림은 없었다. 태영은 이 대규모 탐사에 합류하기 전 특수부대 출신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이 그의 본성이었다.

“선우 조종사, 붉은 점 방향으로 최대로 스캔하시오. 접근 경로 확인.”

“예, 함장님!”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일렁이더니, 붉은 점의 상세 정보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신호가 미약하지만, 거대한 질량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탐사선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아요. 그리고… 이게 가장 이상한 부분인데…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중력장의 영향도 받지 않고 완벽하게 정지해 있어요.” 수진이 숨죽이며 말했다.

준호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심우주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거대 질량.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행성이나 소행성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인공적인 것이라면, 어떤 동력으로 그 위치를 유지하고 있을까?

“영상 데이터를 올려봐요. 최대한 확대해서.” 준호가 명령했다.

잠시 후, 메인 디스플레이에 흐릿한 영상이 나타났다. 수천 배 확대된 영상은 여전히 불분명했지만, 그 형체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

“세상에….” 선우 조종사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 잠겨 있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그것은 분명 무엇인가 ‘존재’했다. 육각형과 오각형이 불규칙하게 뒤섞인 듯한 기이한 구조. 매끄럽다기보다는 투박하고, 어떤 인공적인 광원도 없이 그 자체로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표면은 반사율이 거의 없어 빛을 흡수하는 검은 벨벳 같았다.

“이게… 대체 뭡니까?” 태영 팀장조차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주선처럼 보이진 않습니다. 어떤 문명의 유물 같지도 않고요. 자연 생성물이라고 하기엔… 저런 기하학적 형태는 불가능합니다.”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호는 침묵 속에서 화면을 응시했다. 그의 직감이 경고를 울렸다. 저것은 인류의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 어떤 문명이 저런 것을 만들었을까? 아니, 만들 수 있었을까?

수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이름 없는 우주 공간 한복판에,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검은 물체가 마치 거울을 통해 비친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선이 아니었다. 행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이었다.

“선우 조종사, 경로를 수정하시오. 저 물체로 접근한다. 최대 속도로.” 준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동자에선 수개월간의 지루함이 씻겨 내려가고, 오직 미지의 존재를 향한 강렬한 탐구심만이 이글거렸다.

“함장님! 위험합니다! 어떤 예측도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수진이 다급하게 외쳤다.

“알고 있소, 이수진 박사. 하지만… 저것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소.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야. 최소한, 우리는 저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야 해.”

준호는 손을 뻗어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의 검은 물체를 가리켰다.

“저것을 분석하고, 필요하다면, 우리 인류의 이름으로 접촉한다.”

아르테미스 호는 엔진의 출력을 높였다. 조용히 미끄러지던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서서히 속도를 올리며 미지의 그림자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붉은 점은 점점 더 크게,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 검은 물체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였다.

순간, 아르테미스 호의 모든 센서가 비명을 질렀다. 함교의 불빛이 일렁였고,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함장님! 강력한 에너지 서명입니다! 기존의 어떤 측정치도 넘어섰습니다!” 수진이 절규했다.

마치 심연의 그림자가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을 향해 눈을 뜬 것처럼, 그 거대한 검은 물체는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던 색깔처럼, 보는 이들의 시신경을 직접 자극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 빛과 함께, 탐사선 전체를 관통하는 듯한 끔찍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마치 우주의 심장이 처음으로 고동치기 시작하는 것 같은, 거대하고 낯선 맥박이었다.

“함장님, 뭔가… 뭔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저희 시스템에… 침투하고 있어요!” 선우 조종사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강준호 함장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의 뇌리 속으로, 알 수 없는 형상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그림자 같기도 했고, 기호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이제 더 이상 멀지 않은, 거대한 검은 물체가 서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문’이었다. 그리고 그 문이, 지금 막 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