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검은 심장의 제국

### 1. 갈라지는 땅

진흙골의 새벽은 언제나 잿빛이었다. 해가 떠오르기도 전부터 지독한 흙먼지가 바람에 실려와 눈꺼풀 위로 내려앉았다. 간혹 그 먼지 속에 섞여 들어오는 이상한 비린내. 쇠 비린내 같기도 하고, 썩은 꽃잎 같기도 한 그 냄새는, 아린에게는 이젠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었다. 저 멀리, 제국의 심장이 펄떡이는 수도 방향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실어 나르는 기괴한 냄새. 사람들은 아무도 입에 담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 냄새의 근원을 알고 있었다.

아린은 닳아빠진 짚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새근거리는 미나의 마른기침 소리가 여전히 그녀의 심장을 저몄다. 열 살이 채 되지 않은 미나는 올봄부터 기력을 잃어갔다. 창백한 얼굴과 툭 튀어나온 뼈마디. 진흙골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미나도 느리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이 땅이 메말라가는 속도와 다를 바 없었다.

문 밖으로 나서자마자 마른 흙먼지가 신발 사이로 파고들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제법 비옥했던 밭은 이제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져 있었다. 굳어버린 흙덩이 위로 삐죽이 솟아난 풀들은 푸른색이라기보다 병색이 완연한 회색에 가까웠다. 어둠이 덜 걷힌 동쪽 하늘은 늘 그랬듯이 붉은 기운을 띠고 있었다. 피를 머금은 듯한 불길한 붉은빛.

“아린아, 벌써 일어났느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허스키한 목소리에 아린은 뒤를 돌아보았다. 늙은 제우 할아버지가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문간에 서 있었다. 그의 눈은 진흙골의 다른 노인들처럼 핏발이 서 있었다. 제국이 부과하는 무거운 공물과 알 수 없는 질병은 노인들의 마지막 기력마저 앗아갔다.

“네, 할아버지. 해 뜨기 전에 밭이라도 한 번 둘러봐야지요.”
아린은 일부러 쾌활하게 대답했지만, 그녀의 시선은 밭보다 잿빛 하늘을 향했다. 비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제우 할아버지는 아린의 마음을 읽었는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징수관들이 온다는 소문이 돈다. 이번엔 더 빠르고, 더 거칠게 올 게야.”

아린의 심장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징수관. 제국의 손발이자, 진흙골 주민들에게는 굶주림과 공포 그 자체였다.
“또 뭘 뜯어 가려고요? 남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요.”

“제국의 심장이 더 많은 피를 갈구하는 모양이다.”
제우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노기가 아린의 귀에 박혔다.
“옛날에는 그저 곡식 몇 섬, 짐승 몇 마리면 되었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정화’라는 명목으로 어린것들을 찾아. 수도의 ‘어둠의 제단’에 바쳐야 한다면서.”

아린은 저절로 미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린아이들, 특히 병약하거나 부모 없는 아이들이 주로 그들의 표적이 되었다. 사라진 아이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온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텅 빈 눈동자와, 더 깊어진 진흙골의 침묵뿐이었다.

그때였다.
마른 흙먼지를 흩뿌리며 거대한 그림자가 진흙골 어귀에 드리워졌다. 제국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다. 검은 바탕에 붉은색의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깃발. 그 문양은 마치 핏줄처럼 얽혀 있었고, 중심에는 검은 심장 같은 형상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징수관들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훨씬 많이.
철제 갑옷을 입은 병사들 사이로, 검은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위압적으로 말을 타고 들어왔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감정이 없었고, 얇은 입술은 잔인하게 굳어 있었다. 그의 뒤로는 열 명이 넘는 병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평소에는 한두 명이 전부였다.

마을 사람들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밭을 매던 이들, 우물가에 모여 있던 이들, 모두가 굳은 채로 징수관들을 응시했다. 공포가 진흙골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검은 비단옷의 징수관은 말에서 내려 천천히 마을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마다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그는 멈춰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마치 짐승들을 헤아리는 사냥꾼의 눈빛이었다.

“진흙골 주민들이여.”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제국의 영원한 번영을 위해, 황제 폐하의 ‘어둠의 심장’을 충만하게 할 ‘공물’을 바칠 때가 왔다.”

공물.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가져가려는가. 작년에 바친 곡식과 가축만으로도 겨울을 나기가 버거웠다.

“곡식은 기본이다. 올해는 세 배를 징수한다.”
징수관의 말에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세 배? 그것은 진흙골 사람들에게 죽음을 의미했다. 남은 씨앗마저 모두 바쳐도 채울 수 없는 양이었다.

“그리고…” 징수관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시선이 아이들을 향했다. 미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공포에 질려 부모의 등 뒤로 숨었다.
“이번 기원제에는 ‘깨끗한 양’ 다섯이 필요하다. 제국의 심장에 바쳐질 고귀한 제물 말이다.”

아린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다섯 명의 아이들. 그것은 진흙골의 어린 생명을 절반 이상 앗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 제발…! 저희에게는 남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누군가 용기 내어 외쳤지만, 병사들의 창끝이 그를 향하며 입을 다물게 했다.

징수관의 시선은 아린의 곁에 서 있는 제우 할아버지에게 향했다.
“제우, 네가 책임자였지. 어서 명단을 내놓아라. 쓸모없고 병약한 것들 말고, 싱싱한 것으로.”

제우 할아버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만 바라보았다.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아린의 옆에 서 있던 미나가 기침을 심하게 했다. 콜록거리는 소리에 징수관의 시선이 불현듯 미나에게 꽂혔다. 미나는 바짝 마른 몸으로 공포에 질린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음, 저 아이는 안 되겠군. 너무 말랐어.”
징수관은 실망한 듯 혀를 찼다. 아린은 안도했다. 그러나 그 안도는 잠시였다.

“하지만… 저 여아는 제법 건강해 보이는군.”
징수관의 손가락이 아린의 바로 뒤에 서 있는 어린 소녀를 가리켰다. 마을에서 가장 건강하고 명랑했던, 아린과 친자매처럼 지내던 ‘나리’였다. 나리의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를 감싸 안았다.

“안 돼! 우리 나리는 안 돼!”
나리의 어머니는 발버둥 쳤지만, 병사들이 거칠게 그녀를 밀쳐냈다. 어린 나리는 공포에 질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아린의 눈앞이 붉게 물들었다. 미나를 겨우 지켰다는 안도감이 순식간에 비명으로 변했다. 저들은 이제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생명을 앗아가려 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꾹꾹 눌러 담았던 분노와 절망, 무력감이 한꺼번에 폭발할 것 같았다.

“안 됩니다!”
아린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온 마을에 울려 퍼질 만큼 강렬했다.
모든 시선이 아린에게 집중되었다. 징수관의 차가운 눈빛도 그녀를 향했다.

“네가 감히 지금 누구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냐?”
징수관의 얼굴에 처음으로 짜증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아린은 두려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하지만 나리의 울음소리가, 미나의 마른 기침 소리가, 그리고 제우 할아버지의 핏발 선 눈이 그녀를 더 이상 침묵하게 두지 않았다.
“우린 더 이상 바칠 것이 없습니다! 남은 생명마저 바치면, 우린 무엇으로 살아갑니까! 차라리 죽이십시오!”

징수관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병사들도 창을 고쳐 쥐었다.
“하찮은 벌레가 감히 제국의 법도를 거스르는구나. 네놈이 죽고 싶다면, 그렇게 해주지.”

병사들이 아린을 향해 다가섰다. 아린은 몸을 굳혔다.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낡은 괭이가 들어왔다. 밭을 갈던 농부가 버려둔 것이었다. 아린은 망설이지 않고 괭이를 움켜쥐었다. 손잡이의 거친 나무 질감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낯선 감각, 하지만 묘하게 익숙한 분노가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더 이상 빼앗기지 않아!”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렸지만, 그 속에는 이전에는 없던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괭이 끝이 징수관을 향했다. 낡고 녹슨 괭이는 하찮았지만, 아린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병사들은 잠시 멈칫했다. 감히 한낱 평민 여인이 제국의 징수관에게 대들다니.

징수관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건방진 것. 네놈의 피로 이 땅의 저주를 정화하겠다!”

병사들이 일제히 아린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흙골의 잿빛 새벽은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아린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심장 속에서, 억압받던 모든 것들이 깨어나 폭풍처럼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갈라진 땅 위에서, 첫 번째 피가 곧 흐를 참이었다. 그것이 누구의 피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진흙골의 침묵이 깨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균열은, 언젠가 거대한 제국의 심장까지 갈라놓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