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황량한 대지 위로 잿빛 모래바람이 휘몰아쳤다. 지평선은 온통 찢겨나간 캔버스처럼 갈라지고 솟구친 암석들로 가득했다. 한때는 푸르렀을 숲의 흔적은 그저 메마른 나무 뼈대들이 앙상하게 꽂힌 무덤과 같았다. 이 세상이 숨 쉬었던 온기라곤, 진우의 폐부를 긁는 먼지 섞인 열기뿐이었다.

진우는 허리까지 오는 바위 틈새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낡은 도포는 곳곳이 헤지고 흙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해 뱃속에서는 천둥소리가 울렸지만, 이곳에서 식량을 찾는 건 바위에서 꽃을 피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생존에 대한 의지는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젠장,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거야….”

갈라진 입술 새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전 속 영기는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남아 있는 희미한 기운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한때는 강대한 신선들이 하늘을 가르고 비검을 휘두르던 세상이었다지만, 지금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벌레들의 세상이 되어버렸다.

진우는 품속에서 손바닥만 한 돌멩이 하나를 꺼냈다. 한때는 은은한 영기를 뿜어냈을 영석이었겠지만, 이제는 그저 빛바랜 회색 조약돌에 불과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자 그의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아주 미약하지만, 이 돌멩이는 서쪽 어딘가에 아직 영기가 남아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비록 한 줌의 영기라도, 그것이 곧 생명줄이 될 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스락거리는 모래 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거센 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렸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멀리, 지평선과 맞닿은 곳에 흐릿한 실루엣이 보였다. 오래된 신전의 잔해 같기도 했고, 거대한 바위산 같기도 했다. 그곳에서 영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드디어….”

진우는 힘없이 웃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씁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저곳에 도착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리 만무했다. 영기가 있는 곳엔 반드시 그것을 노리는 다른 존재들이 있을 터였다. 황폐해진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더 강해지는 것뿐이었다.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걸고 걷는 듯했다. 황량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그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짧아지기를 반복했다.

***

두어 시간쯤 걸었을까. 멀리 보이던 실루엣이 점차 선명해졌다. 그것은 무너져 내린 거대한 절벽 아래 자리한 폐허였다. 검게 그을린 바위들이 마치 거인의 이빨처럼 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과거의 영광을 잃은 건물 잔해들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이곳은 분명, 한때 강력한 영맥이 흐르던 곳이었으리라.

진우는 조심스럽게 폐허 안으로 들어섰다. 공기는 더욱 무겁고 탁했다. 기괴한 형상의 잡초들이 갈라진 돌 틈을 비집고 자라 있었고, 이름 모를 짐승들의 뼈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사방에서 음습한 기운이 풍겨왔다.

‘이 기운은….’

진우의 심장이 불길하게 요동쳤다.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던 영기 속에서, 불쾌하고 사악한 기운이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영수를 넘어선, 이 세상의 균열 속에서 태어난 변종의 징조였다.

그는 검집에 손을 얹었다. 허리에 찬 녹슨 비검은 그의 유일한 벗이자 생존 도구였다. 비록 영기가 약해 검기를 제대로 운용할 수는 없었지만, 날카로운 칼날은 여전히 적의 목숨을 끊을 수 있었다.

폐허의 가장 깊은 곳, 무너진 건축물의 중앙으로 향했다. 그곳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낮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콰아앙!

갑자기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네 발 달린 짐승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온몸은 검붉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뼈가 드러난 척추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솟아 있었다. 두 개의 머리는 각각 이빨이 시퍼런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고, 핏빛 눈동자는 진우를 먹잇감으로 인식한 듯 사납게 번뜩였다. 영수라기보다는 차라리 악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쌍두 역린수…!’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이런 하급 변종 영수는 본래라면 상대할 가치도 없었겠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이 될 터였다. 쌍두 역린수는 그의 망설임을 놓치지 않았다. 한쪽 머리가 맹렬하게 돌진하며 거대한 앞발을 휘둘렀다. 쩌저적! 바닥의 돌멩이들이 산산조각 났다.

진우는 몸을 날려 간신히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검집에서 비검을 뽑아냈다. 쉭! 날카로운 쇠붙이 소리가 공간을 갈랐다.

“이 빌어먹을 괴물!”

그는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남아있던 미약한 영기를 검날에 집중시키자, 희미하지만 차가운 빛이 비검을 감쌌다. ‘풍영검결(風影劍訣)’ 1식, ‘일도추풍(一刀追風)’. 바람처럼 빠르게 내지르는 일격.

쉬이이익!

검날이 쌍두 역린수의 옆구리를 스쳤다. 단단한 비늘을 뚫지는 못했지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찢겨나간 비늘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역린수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캬르르륵! 다른 한쪽 머리가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진우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역린수의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녀석의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와 그의 어깨를 강타했다. 억! 진우는 짧은 신음을 내뱉으며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어깨에서부터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크윽…!”

바닥에 쓰러진 채, 역린수의 거대한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두 개의 머리가 동시에 으르렁거리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죽음의 위협이 그의 목을 조여왔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

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에 섬광이 스쳤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의 단전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아주 미약하지만, 과거의 그가 익혔던 영기 운용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하아아아앗!”

그는 전신의 힘을 모아 비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몸을 솟구쳐 올렸다. 마치 춤을 추듯, 그의 몸이 역린수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역린수는 예상치 못한 움직임에 잠시 주춤했다.

‘풍영검결 3식, ‘낙엽비(落葉飛)’!’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엽처럼 가볍고 빠르게, 진우는 비검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이번에는 비늘이 아닌, 두 머리 사이의 연약한 목덜미를 노렸다. 희미한 영기가 검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푸욱!

비검이 역린수의 목덜미에 깊숙이 박혔다. 끔찍한 비명 소리가 폐허를 뒤흔들었다. 역린수는 발버둥 쳤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터였다. 그 거대한 몸뚱이가 쿵, 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두 개의 머리는 축 늘어졌고, 핏빛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진우는 숨을 헐떡이며 역린수의 등 위에서 내려섰다. 비검을 뽑아내자 검붉은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온몸이 땀과 피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싸움에서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쓰라린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젠장… 정말 죽는 줄 알았잖아….”

그는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어깨의 통증은 더욱 심해졌지만, 살아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

진우는 상처를 대충 지혈한 후, 폐허 안을 살폈다. 역린수의 시체 옆, 바닥의 갈라진 틈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흙먼지를 걷어내자, 그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한 움큼의 영초(靈草)였다. 푸르스름한 빛을 띠며 고요히 숨 쉬고 있는,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영초.

‘이것은… 한기초(寒氣草)?’

그는 조심스럽게 영초를 뽑아냈다. 이 한기초는 비록 하급 영초였지만, 이 황폐한 세상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귀한 약초였다. 체내의 영기를 안정시키고 상처를 회복시키는 효능이 있었다. 무엇보다, 영기가 메마른 그의 단전에 작은 기운이라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터였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한기초를 입에 넣었다. 싸늘한 기운이 혀끝을 스치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메말랐던 단전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잃어버렸던 활력이 조금씩 되돌아오는 기분이었다.

폐허의 구석에 몸을 기댄 채, 진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잿빛 구름이 가득한 세상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작은 희망의 불씨가 피어났다.

‘아직 끝이 아니다. 이 세상이 끝장나지 않았듯, 나도… 아직 끝이 아니야.’

그는 비검을 다시 검집에 꽂아 넣었다. 어깨의 통증은 여전했지만, 그의 눈빛은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이 황량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의 여정은,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내일은 또 어떤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오늘처럼 기필코 살아남을 것이었다.

진우는 폐허의 어둠 속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너머 어딘가, 이 모든 황폐함을 되돌릴 수 있는 희망이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희망을 찾아, 그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