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그곳은 무림이었다**
[장면 1]
**배경:** 잿빛 도시의 빌딩 숲, 아침 출근길.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역 플랫폼. 지친 얼굴의 직장인들이 콩나물시루처럼 열차에 몸을 싣는다.
**인물:** 이진우(30대 초반). 낡은 정장 차림.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깊게 드리워져 있고, 손에는 내용물이 넘칠 듯한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들려 있다. 표정은 누가 봐도 ‘월요병’ 그 자체. 그의 머리 위로 ‘오늘의 할 일: 보고서 마감, 김부장 접대, 야근 확정…’ 등의 생각들이 말풍선처럼 떠오른다.
**내레이션 (진우):** (깊은 한숨)
젠장, 또 월요일이야. 이 놈의 커피는 왜 이렇게 쓰지? 인생의 쓴맛을 보여주는 건가? 설탕을 더 넣을걸 그랬나. 아, 어제 로또 번호는 몇 번이었더라?
**SFX:** 지하철 도착 알림음 ‘띵동~’
[장면 2]
**배경:**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간다. 진우는 겨우 한 발을 들이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압력에 휘청인다. 발아래 누군가 놓고 간 커다란 가방에 발이 걸린다.
**액션:** 균형을 잃은 진우의 손에서 커피잔이 ‘툭’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다. 뜨거운 커피가 그의 낡은 정장 바지에 흥건히 튀고, 그의 발치에 엎질러진다. 주변 승객들의 짜증 섞인 시선이 쏟아진다.
**진우:** (경악하며) 으악! 뜨거워! 내 바지!
**주변 승객 1:** (퉁명스럽게) 아, 좀 조심해요! 민폐잖아!
**주변 승객 2:** (짜증스레) 재수 없게 아침부터 이게 뭐야!
**내레이션 (진우):**
완벽한 월요일 아침이었다. 이쯤 되면 우주의 기운이 날 괴롭히려고 작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망할 일들이 벌어질까… 내 인생 왜 이래…
[장면 3]
**배경:** 갑자기 지하철 내부의 조명이 ‘지이잉-‘ 하는 기분 나쁜 기계음과 함께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열차가 격렬하게 흔들리고,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뒤섞인다.
**액션:** 천장에서 스파크가 ‘파직-‘ 하고 튀고, 창밖 풍경이 섬뜩할 정도로 일그러진다. 도시의 빌딩들이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하늘이 마치 물감처럼 번져 보이는 기묘한 감각.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어지러움에 진우는 비명을 지르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눈앞이 번쩍, 하고 섬광에 휩싸인다.
**SFX:** ‘지이이이잉-!’,’콰콰콰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모든 것이 백색으로 변한다)
[장면 4]
**배경:** (순식간에 전환)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는 푸른 하늘, 저 멀리 웅장한 산맥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진우는 흙먼지 날리는 넓은 마당 한가운데 쓰러져 있다. 주변에는 나무로 된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고, 머리 위로는 기와지붕이 보인다. 훈련장 한쪽에는 커다란 장승이 서 있다.
**액션:** 진우가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그의 정장 바지는 흙투성이가 되어 있고, 아까 엎지른 커피 자국은 온데간데없다. 신기하게도 바지는 말끔히 말라 있다. 주변을 둘러보는 그의 눈은 혼란과 함께 경계심으로 가득하다.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상투를 틀거나 비단옷을 입고,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다.
**진우:** (어리둥절하게) 어… 여긴 어디… 난 누구?
방금 지하철이었는데? 꿈인가? 너무 생생한데?
[장면 5]
**배경:** 진우의 시야에 훈련장 한쪽에서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려온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맨손으로 커다란 나무 기둥을 ‘콰직!’ 하고 부수고, 공중에서 몸을 날려 허공을 가르며 날아다닌다. 칼과 칼이 부딪히는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액션:** 한 무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주먹에서 푸른 기운을 ‘파아앙-!’ 하고 번개처럼 뿜어내 거대한 바위를 ‘쩌저저적!’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내는 모습이 보인다. 진우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본다.
**SFX:** ‘쩌저저적!’,’파아앙-!’ (바위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
**진우:** (경악하며) 저… 저게 뭐야?! CG야? 영화 촬영장인가? 저 정도면 어벤져스급인데…?
[장면 6]
**배경:** 진우의 뒤에서 누군가 ‘툭’, 하고 그의 어깨를 친다.
**인물:** 노인(70대 후반). 긴 수염과 형형한 눈빛. 비단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는 용머리 지팡이를 짚고 있다. 그의 등 뒤에는 ‘강호객잔’이라는 낡은 간판이 보인다. 그의 눈빛에는 세월의 풍파와 함께 묘한 통찰력이 서려 있다.
**노인:** 쯧쯧, 젊은이. 낮잠을 너무 오래 잤구먼. 천하제일 비무대회 접수시간이 코앞인데, 아직도 멍하니 있을 텐가? 자네, 참가를 앞두고도 이렇게 여유로운가?
**진우:** (화들짝 놀라며 돌아본다) 네? 천하제일 비무대회요? 아, 그게… 저기, 할아버지…
[장면 7]
**배경:** 노인이 혀를 차며 진우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진우의 낡은 정장과 흙투성이 운동화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린다.
**노인:** 꼴이 그게 뭔가? 비무대회에 참가할 기개는 있어도 복장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했단 말인가? 혹 귀공은 듣보잡 문파의 말단 제자인가? 낭인치고도 꼴이 말이 아니군.
**진우:** (더욱 혼란에 빠진다) 문파요? 듣보잡이요? 낭인요? 할아버지,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기, 여긴 대체 어디예요? 전 분명 지하철에 있었는데… 여긴 진짜 한국 맞아요?
[장면 8]
**배경:** 노인이 진우의 말을 끊고 껄껄 웃는다. 그의 웃음소리는 왠지 모르게 비웃음처럼 들리기도 하고, 혹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움으로 가득하다.
**액션:** 노인이 지팡이로 진우의 가슴팍을 ‘툭’, 건드린다. 진우는 그 지팡이에서 묘한 기운을 느낀다.
**노인:** 하하! 젊은이, 농담도 잘하는구먼. 여긴 강호 제일의 문파들이 모여 ‘천하의 명운’을 걸고 겨루는 천검성이네. 그리고 오늘부터 그 명운을 가를 ‘천하제일 비무대회’가 시작되는 날이지! 모르는 이가 감히 발붙일 수 없는 땅이란 말이야.
**내레이션 (진우):**
천하의 명운? 천검성? 강호?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내 눈앞에서 돌을 부수는 무사들이,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리고 이 수상한 할아버지가 모두 현실이었다.
나는… 어딘가로 날아와 버린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믿을 수 없는 현실.
그곳은 무림이었다.
[장면 9]
**배경:** 노인의 손짓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광장 중앙에는 십여 명의 장인들이 합심하여 세운 듯한, 웅장한 비무대가 솟아 있고, 그 주변으로는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해 있다. 비무대 위로는 ‘천하제일 비무대회’라고 쓰인 붉은색 현수막이 펄럭이며 위용을 자랑한다.
**액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기대감이 교차한다. 모두들 허리춤에 검이나 도를 차고 있거나, 손에 철사장 같은 무기를 들고 있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날카롭고,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진우는 그들의 기세에 압도되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진우:** (침을 꿀꺽 삼킨다) 저… 저 사람들이 전부… 무공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인가요? 죄다 무협지에 나오는 주인공들 같은데…?
[장면 10]
**배경:** 노인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그는 비무대를 응시하며 중얼거린다. 그의 눈빛에는 아련한 옛 기억과 함께 비장함이 스쳐 지나간다.
**노인:** 암, 그렇고 말고. 이 대회는 단순한 힘겨루기가 아니네. 수십 년 전, ‘파천교’라 불리는 사악한 무리가 천하를 휩쓸려 했을 때, 우리 강호 정파는 막대한 희생을 치러 그들을 겨우 물리쳤지. 하지만 그들의 잔당은 여전히 그림자 속에 숨어 힘을 키우고 있다고 하네. 언제 다시 나타나 강호를 피로 물들일지 모르는 상황이지.
**진우:** 파천교…? 잔당…? 설마, 내가 알던 그런 평화로운 세상이 아니라는 건가?
[장면 11]
**배경:** 노인이 진우를 다시 돌아본다. 그의 눈빛에는 묘한 기운과 함께 깊은 뜻이 서려 있다. 마치 진우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이다.
**노인:** 이번 비무대회는 단순히 ‘천하제일’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네. 각 문파의 최고 고수들이 모여, 파천교의 부활을 막고 새로운 ‘천하맹주’를 추대하기 위한 것이지. 그 맹주의 뜻에 따라 강호가 다시 하나로 뭉쳐야만, 다가올 암흑의 그림자를 물리치고 이 천하를 지킬 수 있을 게야. 실패한다면… 이 강호는 파천교의 발아래 무릎 꿇을 것이고, 백성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 테지.
**내레이션 (진우):**
천하의 명운을 건 무술 대회.
파천교의 부활.
천하맹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난 그저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이진우일 뿐인데, 지금 나는 도대체 이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뭘 해야 한단 말인가. 난 무공도 모르고, 심지어 싸움도 못하는데!
[장면 12]
**배경:** 갑자기 비무대 중앙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킨다. 비무대 위에 우뚝 선 거대한 체구의 심판관이 마이크도 없이 엄청난 성량으로 외친다. 그의 목소리에는 내공이 담겨 있는 듯하다.
**인물:** 거대한 체구의 심판관(50대). 검은 도포를 입고 팔짱을 낀 채 위엄 있게 서 있다.
**심판관:** (우렁찬 목소리로) 강호의 벗들이여! 그리고 이 강산의 모든 무인들이여! 드디어 ‘천하제일 비무대회’가 막을 올린다! 이번 대회의 승자는 단순한 영예뿐만 아니라, 파천교의 잔당을 뿌리 뽑고 강호의 미래를 이끌어갈 ‘천하맹주’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다! 명심하라! 이번 대회는 단순한 자웅을 겨루는 것이 아닌, 이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대회가 될 것이다!
**SFX:** ‘와아아아-!’ (천지를 뒤흔드는 군중들의 거대한 함성)
[장면 13]
**배경:** 진우는 군중들의 함성 속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뜬다. 그의 눈빛에 알 수 없는 결심이 스친다. 막막함과 두려움 속에 한줄기 희망 같은 것이 피어나는 듯하다.
**액션:** 그는 문득, 아까 그 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접수시간이 코앞인데, 아직도 멍하니 있을 텐가?’
**내레이션 (진우):**
내가 왜 여기에 떨어진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혹시 내가 여기에 온 이유가 있다면?
파천교니, 천하맹주니, 나에게는 너무나 거대한 이야기지만…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뭔가 해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는 분명히 무슨 위험에 휘말리거나, 비참하게 죽을 것 같은 예감이 강하게 든다.
일단, 저 대회라는 거에라도 끼어봐야 하는 건가? 접수처라…
[장면 14]
**배경:** 진우가 노인을 향해 다급하게 몸을 돌린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희망과 함께 여전히 혼란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그의 정장 차림과 비장한 표정이 대비되어 웃음을 자아낸다.
**진우:** 할아버지! 저… 저도 그 대회에 참가할 수 있나요?! 제가 참가하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장면 15]
**배경:** 노인이 진우를 빤히 바라본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그 미소에는 진우의 질문에 대한 답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아는 듯한 심오함이 담겨 있다.
**노인:** (의미심장하게) 음… 자네, 참가하고 싶다고 했나?
그럼 일단 저기 보이는 접수처에 가 보게나. 늦지 않았다면… 자네에게도 기회가 있을지도. 허나, 명심하게. 한번 발을 들이면 쉽사리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 이곳 강호이자, 이번 대회이니.
**내레이션 (진우):**
기회?
아니, 이건 기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젠장, 해볼 수밖에 없잖아?
이 빌어먹을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혹시 알아?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SFX:** ‘두근-! 두근-!’ (진우의 심장 소리가 격렬하게 울린다)
[장면 16]
**배경:** 진우가 노인의 말을 뒤로하고 접수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간다. 그의 뒷모습은 여전히 어설프지만, 그의 눈빛은 굳은 결의로 빛나고 있다. 비무대회 접수처 앞은 길게 줄을 선 무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노인은 그런 진우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 피식 웃는다. 그의 눈은 진우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쫓는다.
**노인:** (작게 중얼거린다) 흥미롭군. 과연 ‘시공의 틈새’를 넘어온 이방인이, 이 강호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그의 시선이 멀어지는 진우를 쫓아간다.)
아니면… 그저 한낱 비루한 먹잇감이 될 뿐인가… 어쩌면… 거대한 파도를 일으킬 한 방울의 물방울이 될지도. 흐흐…
**내레이션 (진우):**
내 이름은 이진우.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무림에 떨어졌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무술 대회에,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들게 생겼다.
정말, 미쳐버리겠네!
**[에피소드 1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