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 틈으로 네온사인이 피처럼 번졌다. 길바닥은 오물과 찌든 기름,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화학 물질로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속으로 기계 오일과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스며들었다. 이곳, 신서울의 가장 밑바닥 ‘구룡 영역’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재하는 낡은 작업복 소매로 축축한 얼굴을 한 번 닦아냈다. 머리 위로 펼쳐진 거대한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무너져가는 낡은 건물들의 그림자와 간헐적으로 울리는 전자파 소음만이 그의 세상을 지배했다. 낡은 강화섬유 장갑을 낀 손에는 고장 난 드론의 잔해가 들려 있었다. 폐기 처리장에서 겨우 건져낸 부품 몇 개를 비집어 보았지만, 쓸 만한 건 하나도 없었다. 오늘도 꽝이었다.
“빌어먹을.”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에 심어진 음성 증폭 임플란트가 소리를 미세하게 조절했다. 이 도시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건 미친 짓이었다. 저편에서 거대한 기업의 순찰 드론이 묵직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드론의 스캔 레이저가 재하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그는 등록된 폐기물 처리자 명단에 있었고, 불법 침입자 감지 범위 밖이었다.
재하는 등 뒤에 멘 낡은 백팩을 고쳐 맸다. 오늘 건진 유일한 소득은 부식된 금속 파편 몇 조각뿐이었다. 이걸 팔아봤자 오늘 저녁 한 끼 값도 안 나올 터였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쓰레기 더미를 한 번 더 훑었다. 이곳은 신서울이 확장되기 전, 구시대의 잔해가 매립된 곳이었다. 온갖 폐기물과 버려진 기술의 무덤. 누군가에게는 쓰레기장이겠지만, 재하 같은 밑바닥 인생에게는 한 줄기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보물창고이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절망뿐이었지만.
어딘가에 숨겨진, 가치를 알 수 없는 ‘유물’이라도 하나 찾는다면 그의 인생은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오늘 저녁은 굶지 않을 테지.
발밑에 채이는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을 헤치고 나아가던 재하의 시야에 뭔가가 들어왔다. 흔한 폐기물 더미 한구석에 파묻혀 있었다. 보통의 쓰레기와는 달랐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칙칙한 검은색. 매끈하지만 거칠게 다듬어진 돌덩이 같았다. 아니, 돌이라고 하기엔 너무 인공적인 모양새였다.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런 곳에서 발견되는 예상치 못한 물건은 대부분 위험했다. 폭발물일 수도, 바이오 폐기물일 수도, 심지어는 오래된 자율 방어 시스템의 잔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가치를 지닌 희귀 부품일 가능성도 있었다.
강화섬유 장갑을 낀 손으로 물건을 집어 들었다. 예상보다 차가웠다. 그리고 그 무게는 겉보기와 달리 묵직했다. 손안에 쥐자마자 그의 손목에 이식된 데이터 분석 임플란트가 작게 윙- 소리를 냈다. 재하는 즉시 임플란트의 스캐닝 기능을 활성화했다. 렌즈 안의 정보 창이 깜빡였다.
[오류: 인식 불가능한 물질.]
[오류: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지 않음.]
[오류: 시스템 불안정.]
재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스템 불안정? 그의 임플란트가 이런 메시지를 띄우는 건 처음이었다. 대개는 최소한의 물질 성분이라도 분석해냈다. 알 수 없는 오류 메시지에 그의 신경망이 미약하게 저릿거렸다. 마치 손안의 물건이 그의 몸에 이식된 전자기기와 미묘하게 간섭하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그는 중얼거렸다. 흥미가 일었다. 재하는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연결 포트도 없었다. 마치 자연물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가공된 인공물 같았다. 고대의 유물? 아니면 미지의 외계 기술?
그 순간,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폐기물 처리장의 저편에서 거대한 크레인이 휘청거리며 무너지는 소리였다. 뒤이어 보안 드론의 경고음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재하의 데이터 패드에 즉시 지역 경고가 떴다.
[경고: 구룡 영역 7구역, 대형 구조물 붕괴 발생. 대기 불안정. 즉시 대피하십시오.]
재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젠장. 이런 일은 종종 있었다. 낡은 구조물들이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는 일. 문제는 그 여파였다. 공중에 떠도는 먼지와 유독성 입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무너진 잔해 속에서 튀어나오는 예기치 못한 위험이었다. 구시대의 자율 전투 로봇이나, 아니면 약탈자들.
멀리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최소 셋 이상. 그들은 재하처럼 폐기물을 뒤지는 약탈자들이거나, 아니면 기업의 비공식적인 ‘청소부’들일 터였다. 어느 쪽이든, 그들에게 들키면 좋을 리 없었다. 재하는 재빨리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바로 옆에 거대한 컨테이너 박스 더미가 있었다. 그는 그 사이의 좁은 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몸을 완전히 숨기자마자, 날카로운 금속음이 들렸다.
“이봐, 누가 저쪽으로 가는 거 봤어?”
“어렴풋이 그림자 같은 게 움직이는 걸 봤는데. 크레인 무너진 소리 듣고 도망친 걸까?”
“젠장, 그 자식이 뭐라도 주웠을 수도 있어. 이 구역은 어차피 다 우리 구역이라고!”
거친 목소리가 컨테이너 너머에서 들려왔다. 재하는 숨을 죽였다. 그의 손에 쥐여 있던 검은 물건이 순간적으로 미지근하게 느껴졌다. 그는 무심코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그 순간, 그의 손안에 쥐여 있던 검은 물체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컨테이너 너머에서 그들을 비추던 약탈자들의 손전등이 갑자기 깜빡거리더니 꺼져버렸다. 주변이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뭐야?! 전력 공급이 끊어졌나?”
“이런 씨발! 내 비주얼 임플란트도 맛이 갔잖아!”
혼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재하는 눈을 깜빡였다.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의 시야는 놀랍도록 선명했다. 그의 강화된 망막이 어둠 속에서도 움직이는 약탈자들의 희미한 실루엣을 정확히 포착했다. 동시에, 그의 임플란트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재하는 자신의 손에 쥐인 검은 물체를 내려다봤다. 그것은 여전히 칙칙한 검은색이었지만, 아주 미세하게, 그의 눈에만 보이는 듯한 옅은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마치 숨겨진 에너지가 깨어나는 것처럼.
방금 일어난 전력 교란은 분명 이 물건 때문이었다. 그의 임플란트에 오류 메시지를 띄우고, 주변 전자기기를 마비시킨 이 검은 돌. 재하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고대 유물이 아니었다. 이건…
그는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어둠 속에서 컨테이너 사이를 빠져나왔다. 혼란에 빠진 약탈자들이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그들은 손전등이 꺼지고 시야가 마비되자 완전히 무력해져 있었다.
재하는 그들을 지나쳐,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소리는 빗소리에 묻혔다. 손안의 검은 물건은 여전히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알 수 없는 에너지를 품고 그의 손에 안겨 있었다.
폐기물 더미를 헤치고, 눅눅한 공기를 가르며 달렸다. 그의 뒤에서는 여전히 혼란에 빠진 약탈자들의 고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재하는 오늘 밤, 그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고철 몇 조각을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도시의 모든 기술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대의 숨겨진 힘이었다. 그것은 그의 손안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잊힌 시대의 속삭임처럼. 그리고 재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작은 검은 물건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거라는 것을. 좋든, 나쁘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