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혔다.
내 인생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어처구니없고, 또 시시했다. 흔해빠진 전동 킥보드에 치여 보도블록에 머리를 박은 순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 이건 끝이구나.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번져가는 붉은 물감처럼, 나의 의식도 그렇게 흐릿해져 갔다. 젠장, 최소한 밀실 살인 사건 같은 멋진 미스터리를 풀다가 죽고 싶었는데.
그리고, 죽음의 장막이 걷히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 천장이 보였다. 낯선 문양으로 장식된 나무 천장. 창밖에서는 새소리 대신 낯선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자 뼈마디가 삐걱거렸지만, 묘하게 힘이 넘쳤다. 거울을 들여다보니 전혀 다른 얼굴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짙은 잿빛 머리카락, 깊고 푸른 눈동자. 창백하지만 날카로운 콧날과 굳게 다문 입술. 나이는 스무 살 남짓, 제법 단정하고 지적인 외모였다.
이세계 전생.
나는 납득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미스터리에 집착했던 나에게, 운명은 새로운 미스터리를 선물한 것이리라. 이 몸의 주인은 ‘이안’이라는 이름의 청년으로, 작고 낡은 서재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사는 고아였다. 이안의 기억은 낯설었지만, 놀랍도록 선명하게 나의 일부가 되었다. 이 세계의 언어와 상식, 역사와 문화, 심지어 마법에 대한 어렴풋한 지식까지. 이안의 조용하고 탐구적인 성격은, 전생의 내가 품었던 예리한 통찰력과 결합하여 묘한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새로운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안으로서, 낡은 서재를 나의 새로운 아지트로 삼았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청년’으로 여겼지만, 가끔 찾아와 사소한 문제 해결을 부탁하곤 했다. 잃어버린 물건 찾기, 복잡한 계약서 해석하기, 길 잃은 가축 찾아주기 같은 일들. 나는 그 일들을 해결하며 점차 ‘작은 명탐정’이라는 별명 아닌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엘리아스 시에 어둠이 짙게 깔리고, 가스등 불빛이 희미하게 거리를 비추는 시간. 내 서재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쾅, 쾅, 쾅! 흡사 도시를 수호하는 수호룡이 울부짖는 듯한 거친 소리였다.
나는 책상 위에 펼쳐진 고대 문헌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문은 열려 있습니다, 칼론 경감.”
육중한 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거대한 그림자가 서재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엘리아스 시 경비대 소속의 칼론 경감이었다. 험상궂은 인상에 우람한 체격, 항상 갑옷처럼 단단한 가죽 제복을 입고 다니는 그는 이 도시에서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자, 동시에 가장 심성이 여린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얼굴은 지금,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이안! 자고 있었나? 미안하다, 급하다네!”
칼론 경감은 평소라면 좁은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의자를 찾았겠지만, 오늘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그의 숨은 턱까지 차올라 있었고, 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나는 읽던 책을 조용히 덮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자, 경감은 움찔하며 말을 이었다.
“사건이다! 아주 끔찍한 사건이 터졌다! 크로이츠 백작 저택에서… 백작이 살해당했어!”
크로이츠 백작. 이 도시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귀족 중 한 명이었다. 그가 살해당했다니, 엘리아스 시 전체가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이었다.
“살해? 누가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칼론 경감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모른다네!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심지어 밀실 살인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와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백작의 서재는 안팎으로 굳게 잠겨 있었네. 창문도 안쪽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굴뚝조차 성인 남자가 통과할 수 없는 좁은 구조였어. 모든 문은 잠겨 있었고, 열쇠는 백작의 시신 옆에서 발견되었다네! 게다가… 서재 안에는 백작 외에 다른 침입자의 흔적이 전혀 없었어!”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밀실 살인. 전생에서 그토록 갈망했던, 그러나 결국 풀지 못하고 죽었던 궁극의 미스터리.
심장이 뜨겁게 뛰기 시작했다. 피가 온몸을 빠르게 순환하는 것을 느꼈다.
“자세한 이야기는 현장에서 듣죠, 경감님.”
—
크로이츠 백작의 저택은 도시 외곽의 언덕 위에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높은 담장과 굳게 닫힌 철문, 그리고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탑들이 저택의 권위를 말해주는 듯했다. 경비대의 불빛이 저택 안뜰을 어수선하게 비추고 있었고,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흔들렸다.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하인들과 경비대원들의 얼굴에는 공포와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칼론 경감을 따라 백작의 서재로 향했다. 묵직한 오크 나무 문 앞에 섰다. 문은 이미 경비대원들이 열어 놓은 상태였다.
“이쪽이네, 이안. 조심하게.” 칼론 경감은 굳은 얼굴로 문을 가리켰다.
나는 조용히 서재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무겁고 쿰쿰한 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서재는 생각보다 넓었다. 벽면 가득 오래된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중앙에는 거대한 서류 더미가 쌓인 오크 나무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책상 뒤편, 고급스러운 벨벳 카펫 위에 백작의 시신이 엎드려 있었다.
백작은 등에 칼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칼은 일반적인 검보다는 짧고 날렵한 모양으로, 손잡이 부분에 보석 장식이 박혀 있었다. 누가 봐도 백작 소유의 장식용 단검 같았다. 그의 옆에는 열쇠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서재 내부를 둘러보았다.
먼저, 문. 묵직한 오크 문은 안쪽에서 걸쇠로 단단히 잠글 수 있었고, 바깥쪽에서는 열쇠로 잠글 수 있었다. 칼론 경감의 말로는, 밤중에 하인들이 잠든 백작을 깨울 수 없어 문을 열 수 없었고, 결국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고 했다. 문은 부서진 자국 없이 열려 있었는데, 경감은 강제로 열쇠 구멍을 파손하여 문을 열었음을 설명했다.
다음은 창문. 서재의 창문은 두 개였는데, 모두 밖이 보이지 않도록 두꺼운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나는 커튼을 걷어냈다. 창문은 밖에서 열 수 없도록 안쪽에 굳게 빗장이 걸려 있었다. 경비대원들이 확인한 결과, 빗장에는 어떠한 외부인의 흔적도 없었다. 창틀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있었고, 바깥으로는 족히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이였다. 아래는 자갈이 깔린 정원이었다.
굴뚝. 경감의 말대로 성인 남자가 드나들기에는 너무 좁았다. 게다가 벽난로 안에는 방금이라도 불을 피운 듯 재가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누군가 굴뚝을 통해 침입했다면, 재와 그을음을 잔뜩 묻혔을 터인데, 서재 안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시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백작의 시신은 이미 굳어가는 중이었다. 등 뒤에 박힌 단검은 깊숙이 박혀 있었고, 주변에는 피가 흥건했다. 고통에 일그러진 백작의 얼굴은 마치 ‘왜’라고 묻는 듯했다.
“경감님, 백작은 언제 발견되었습니까?”
“새벽 세 시경. 야간 순찰을 돌던 하인이 서재 안에서 희미한 비명 소리를 들었다네.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이 없어 이상하게 여겼고, 결국 다른 하인들을 불러 열쇠를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네. 결국 경비대에 신고했고, 우리가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 백작은 이미… 흐읍…” 칼론 경감은 고통스러운 듯 한숨을 쉬었다.
나는 시신 옆에 떨어진 열쇠를 응시했다. 서재 문의 열쇠였다.
“그렇다면, 백작은 스스로 문을 잠근 채 살해당했다는 말이 되는군요.”
“그렇다네. 백작은 평소에도 서재에 들어가면 자신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안쪽에서 문을 잠그곤 했다네. 그러다 새벽에 변을 당한 거지. 침입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열쇠는 백작의 시신 옆에서 발견되었으니… 자살인가? 하지만 저 등에 박힌 단검은 도저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칼론 경감은 미치겠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주변을 계속 살펴보았다.
책꽂이 사이의 좁은 공간, 책상 아래, 그리고 천장까지. 내 시선은 모든 것을 훑고 지나갔다.
밀실 살인. 이세계에서도 미스터리는 여전히 건재했다. 아니, 오히려 전생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마법이라는 요소가 더해져 더욱 기묘한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서재에서는 어떤 마법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적인 트릭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발길은 서재의 가장 구석, 벽난로 옆에 놓인 작은 나무 의자 앞에 멈췄다. 의자 위에는 백작이 즐겨 읽던 것으로 보이는 두꺼운 책 한 권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책의 표지를 바라봤다. [역사 속 기묘한 발명품 100선].
나는 책에 손을 얹으려다 멈칫했다.
이것은 사건 현장이다.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된다.
내 시선은 다시 한번 방 전체를 빠르게 스캔했다.
잠긴 문. 잠긴 창문. 좁은 굴뚝. 그리고, 시신 옆에 떨어진 열쇠.
그 어떤 외부의 침입도 불가능해 보이는 완벽한 밀실.
칼론 경감은 답답한 듯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안, 자네라면 뭔가 단서라도 찾을 줄 알았는데… 이건 정말이지, 악마의 짓이 아닌가 싶다네.”
나는 피 묻은 카펫 위에 무릎을 꿇었다. 백작의 시신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시신의 굳어버린 표정, 단검이 박힌 각도, 그리고 피가 맺힌 방식.
그리고, 바닥에 아주 희미하게 남은 하나의 자국.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작은 긁힌 자국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은 다시 한번 방 안을 빠르게 훑었고, 특정 지점에서 멈췄다.
백작의 서재 벽에 걸린, 어딘가 익숙한 형태의 대형 장식물.
그것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소리가 들렸다.
완벽한 밀실? 아니다.
이것은 완벽한 밀실처럼 ‘보이게’ 만든 트릭이었다.
전생의 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었지만, 이 세계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나의 첫 번째 진짜 밀실 살인 사건을 마주했다.
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경감님.”
“응? 뭔가 알아냈나, 이안?” 칼론 경감이 급하게 나를 돌아봤다.
“범인은… 이 서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굳게 닫힌 서재의 벽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 밀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백작은 스스로 문을 잠그지 않았고, 범인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이 공간에 숨어 있습니다.”
칼론 경감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무슨 말인가, 이안? 범인이 아직 이 서재 안에 숨어있단 말인가?!”
나는 칼론 경감의 당황한 얼굴을 보며, 마치 전생의 내가 고대하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맞춘 탐정처럼 말했다.
“네. 단지… 우리가 그를 아직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내 눈빛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나의 무대였다. 나의 추리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