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독립적인 단편 소설

황동과 강철, 증기가 만들어내는 도시, 기계동은 늘 뿌연 안개 속에 잠겨 있었다.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밤낮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는 도시의 심장 박동 같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의 그림자는 지상의 인간들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거대한 증기 엔진의 굉음과 쇳덩이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경감 최성훈은 삐거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젠장, 대체 이게 무슨….”

그의 손에는 땀으로 축축한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내용은 간결했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은 최성훈의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도시 최고의 시계공학자이자 기계 장치 발명가인 박만수 박사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살해당했다는 보고였다. 문제는 살해 현장이 완벽한 ‘밀실’이었다는 점이었다.

“경감님, 현장 보고드립니다.”

순경 하나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도 곤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뭐가 달라졌나?”

최성훈은 찌푸린 미간으로 그를 응시했다.

“아니요.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박만수 박사의 연구실은 20층 펜트하우스에 위치해 있습니다. 출입문은 안에서 이중 잠금장치로 단단히 잠겨 있었고, 창문들도 모두 안에서 빗장이 걸린 채였습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침입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박사님은 연구용 대형 황동 작업대 위에서 발견되셨습니다. 흉기는…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사망 시각은 어젯밤 자정 무렵으로 추정됩니다.”

최성훈은 보고서를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박만수는 기계동의 유명 인사였다. 그의 죽음은 도시 전체를 들썩이게 할 사건이었다. 그리고 밀실 살인이라니. 평생 쇠 냄새 나는 사건만 파고든 최성훈의 경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퍼즐이었다.

“이시진 그 자식이라면 혹시….”

그는 마지못해 중얼거렸다. 최성훈은 이시진 탐정을 싫어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오만함과 번번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듯한 천재성을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기괴한 천재 외에 달리 기댈 곳도 없었다.

밤늦게 연락을 받은 이시진 탐정은 한 시간 후에 현장에 도착했다. 낡았지만 윤기 나는 검은색 기계식 자동차에서 내린 그는 늘 그렇듯 어딘가 모르게 신경질적이고, 동시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코에는 얇은 금속테 안경이 걸려 있었고, 낡은 트렌치코트 자락이 증기 바람에 살랑였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경감님.”

그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그 속에는 최성훈을 비웃는 듯한 묘한 울림이 있었다.

“시끄럽고, 상황이나 들어봐.”

최성훈은 대충 브리핑을 했다. 이시진은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의 눈은 최성훈의 얼굴이 아니라, 주변의 증기 파이프나 벽의 작은 균열을 훑고 있었다.

“아직 박사님의 시신은 옮기지 않았습니다. 탐정님이 직접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이시진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황동으로 번쩍이는 엘리베이터는 증기 압력으로 움직이는지, 굉음을 내며 천천히 상승했다.

박만수 박사의 연구실 문이 열렸다. 금속과 약품 냄새, 그리고 희미한 피 냄새가 섞인 기이한 공기가 이시진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는 안경 너머로 실내를 응시했다. 거대한 톱니바퀴와 징이 박힌 황동 파이프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낡은 책상 위에는 정교한 설계도와 수많은 태엽 장치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정말, 대단한 밀실이군요.”

이시진의 눈은 먼저 문과 창문, 환기구를 천천히 훑었다. 최성훈이 설명한 대로, 모든 것이 안에서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 어떤 외부 침입의 흔적도 없었다.

시신은 황동 작업대에 엎어져 있었다. 박만수 박사는 한 손에 미완성된 태엽 새를 쥐고 있었고, 그의 목덜미에는 작은 구멍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마치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른 듯한, 그러나 일반적인 흉기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교한 구멍이었다.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최성훈의 설명에 이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장갑을 끼고 시신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는 목덜미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상처 주변에는 미세한 그을음이 있었고, 극히 작은 금속 조각이 박혀 있는 듯했다.

이시진은 작업대 위를 둘러보았다. 박만수가 작업하던 태엽 새는 놀랍도록 정교했다. 작은 톱니바퀴와 스프링으로 이루어진 날개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그러나 이시진의 시선은 새가 아닌, 작업대 구석에 놓인 낡은 먼지 낀 공구 상자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평범해 보이는 쇠 파이프 조각.

“경감님, 이 방의 환기구는 언제 마지막으로 청소했습니까?”

이시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최성훈은 당황했다.

“환기구라뇨? 그게 이 사건과 무슨 상관입니까? 한 달 전쯤 정기적으로 청소한 걸로 압니다만.”

“이 방의 환기 시스템 도면을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건물에 드나들었던 모든 인원의 출입 기록과 박만수 박사의 최근 계약서 일체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이시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일말의 의심도 허용치 않는 단호함이 있었다. 최성훈은 여전히 의아했지만, 이시진의 통찰력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도면이 도착하고, 이시진은 그것을 펼쳐 들었다. 연구실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환기 통로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다시 환기구 쪽으로 향했다. 환기구 덮개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이 환기구, 경첩이 닳아 있군요. 그리고 이 주변에 아주 희미한 스크래치 자국들이 보입니다. 마치 무언가 긁고 지나간 듯한….”

최성훈은 이시진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지만, 육안으로는 잘 식별되지 않았다. 이시진은 작은 돋보기와 함께 가느다란 금속 막대를 꺼내 들었다. 막대 끝에 달린 작은 카메라가 환기구 내부를 비췄다. 화면에는 먼지와 거미줄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금속 조각들이 보였다.

“이건… 정교하게 가공된 티타늄 합금 조각입니다. 박사님 목에 박혀 있던 것과 같은 재질이군요.”

이시진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조각이 대체 어떻게…?”

최성훈이 말을 잇지 못하자, 이시진은 피식 웃었다.

“이 밀실은 완벽하게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는 문이나 창문을 통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이 거대한 환기구를 통해 들어왔죠. 물론, 살인자 본인이 직접 들어온 건 아닙니다.”

이시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모두가 숨죽인 가운데 말을 이었다.

“박만수 박사는 자동화된 기계장치의 대가였습니다. 특히 소형 자동 장치에 능했죠. 살인자는 그 박사님의 능력을 역이용한 겁니다. 그가 만든 것은 암살용 소형 태엽 자동 장치였습니다. 마치 독사의 머리처럼 생긴, 날카로운 독침을 가진 기계 장치였을 겁니다.”

이시진은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박만수의 미완성 태엽 새를 집어 들었다.

“박사님은 이 새처럼 정교하고 작은 기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살인자는 박사님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수준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거나, 박사님의 설계도를 훔쳤겠죠. 그는 작은 태엽 장치를 환기구에 침투시켰습니다. 미리 프로그래밍되어 박사님이 가장 취약한 순간, 즉 작업에 몰두하는 순간을 노린 겁니다.”

이시진은 박만수의 시신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박사님의 목에 난 상처는 일반적인 칼날이 아닙니다. 극도로 얇고 날카로운 바늘, 혹은 송곳과 같습니다. 그리고 상처 주변의 그을음은 독침이 발사될 때 발생한 고열, 혹은 미량의 증기 압력 때문일 겁니다. 소형 자동 장치는 박사님의 심장에 가장 가까운 목 혈관을 정확히 노려 치명적인 독을 주입했습니다. 혹은 단순히 정교한 기계적 충격으로 숨통을 끊었겠죠.”

최성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 장치는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그리고 누가 그런 짓을….”

“장치는 임무를 완수한 후, 다시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갔거나, 혹은 완벽하게 자폭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몇몇 미세한 부품 조각과 스크래치가 남은 거죠. 그리고 범인은… 박사님의 라이벌이자, 최근 공동 연구를 두고 다툼이 잦았던 김철웅 씨입니다.”

이시진은 그렇게 말하며 최성훈이 가져온 계약서 뭉치 중 하나를 가리켰다. 박만수와 김철웅이 최근 새로 개발될 예정이던 ‘인공 지능형 자동 조종 장치’ 특허를 두고 격렬하게 대립했던 기록이었다. 김철웅은 박만수의 기술력을 탐냈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김철웅 씨는 이 건물의 환기 시스템 도면을 박사님과 함께 작업하면서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박사님 못지않은 소형 태엽 장치 기술자였죠. 그는 박사님이 완성한 ‘인공 지능형 자동 조종 장치’의 핵심 기술을 훔치려 했거나, 박사님이 그것을 발표하기 전에 영원히 침묵시키려 했을 겁니다.”

최성훈은 즉시 김철웅을 체포하기 위한 명령을 내렸다.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은 듯했다. 기계적인 완벽함 속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욕망. 그것이 이 밀실 살인의 진실이었다.

이시진은 사건 현장을 떠나기 전, 작업대 위에 놓인 미완성 태엽 새를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새의 눈은 여전히 생기 없는 황동이었지만, 이시진의 눈에는 그 작은 기계가 박만수 박사의 마지막 꿈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꿈은 인간의 질투와 탐욕 때문에 영원히 날아오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마음만큼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기계는 없습니다, 경감님.”

이시진은 최성훈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며 차에 올랐다. 그의 검은색 기계식 자동차는 증기를 내뿜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최성훈은 한동안 그가 남긴 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연기와 톱니바퀴 소리로 가득 찬 기계동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또다시, 그는 이시진 탐정의 천재성에 압도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