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3화: 고요 속의 균열

지영은 눈을 떴지만,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몸뚱이는 마치 무거운 납덩이처럼 침대에 박혀 있었다. 온몸의 감각이 아직 밤의 심연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5월 말, 초여름의 문턱임에도 불구하고 보일러를 튼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등골이 서늘했다.

“에어컨을 끄고 잤나?”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지만, 리모컨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흐릿한 시야를 비비며 눈을 크게 뜨자, 늘 머리맡에 두던 휴대폰이 침대 아래, 정확히는 발치 쪽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어… 내가 이렇게 칠칠치 못했었나.”

어젯밤 분명히 충전기에 꽂아 머리맡 협탁 위에 올려두었던 기억이 선명했다. 잠결에 뒤척이다 건드렸을 수도 있겠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목덜미에 닿는 한기(寒氣)가 마치 누군가 차가운 손가락으로 훑고 지나간 것처럼 소름 돋게 했다. 지영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머리카락이라도 닿았나? 어깨를 으쓱하며 베개에 코를 박아 냄새를 맡아 보았다. 며칠 전 새로 교체한 세탁세제 향이 났다. 킁킁거려도 별다른 이상한 냄새는 없었다.

“피곤해서 예민해졌나 보네.”

그녀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 때문에 요즘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던 탓일 것이다. 삐걱이는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내려와 휴대폰을 주웠다. 화면은 깨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마치 냉동실에 잠시 넣어두었던 것 같은 온도였다.

주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절실했다. 커피머신에 원두를 넣고 물을 채우는 동안, 그녀는 문득 거실의 정적을 느꼈다. 아파트 꼭대기 층, 가장자리 호수. 고립된 듯한 고요함이 때때로 그녀를 짓눌렀다. 창문 너머로 시끄러운 도심의 소음이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이 공간 안은 완벽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위이잉- 칙-**

커피머신이 돌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막 추출된 커피의 구수한 향이 공기 중으로 퍼져 나가는 순간, 지영은 자신의 등 뒤에서 아주 희미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쉬익…”

환풍기 소리인가? 아니, 더 낮고 불분명한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좁은 틈새로 숨을 내쉬는 듯한, 혹은 낡은 종이가 바닥에 스치는 듯한…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늘 그렇듯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현관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시 커피머신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였다. 씽크대 위, 컵을 넣어두는 상부장 문이 **끼이이익** 소리를 내며 아주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경첩이 녹슨 듯한 끔찍한 마찰음이었다.

“뭐야?”

지영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젯밤 분명히 닫았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는 상부장에 컵을 꺼낼 일이 거의 없었다. 자주 쓰는 컵은 하부장 식기 건조대에 걸어두니까.

“내가 정신이 없었나…?”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려 애썼다. 며칠 밤낮으로 야근을 하면서 컨디션이 최악이었고, 잠결에 뒤척이다 휴대폰도 떨어뜨린 마당이니, 깜빡하고 상부장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열린 상부장 안으로 보이는 하얀 찻잔들이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저 안에 무언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

커피를 들고 거실로 나왔지만, 그녀의 신경은 온통 그 열린 상부장에 가 있었다. 텔레비전을 켜서 시끄러운 뉴스를 틀었지만,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주방으로 가 상부장 문을 닫았다. **덜컥** 소리를 내며 완전히 닫힌 문을 확인하자 그제야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점심시간, 간단히 빵으로 끼니를 때우려 식탁에 앉았다. 손에 쥔 볼펜으로 메모지를 끄적이던 중, 펜이 갑자기 스르륵, 식탁 모서리를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아, 진짜.”

지영은 짜증스럽게 한숨을 쉬었다. 요즘 왜 이러지? 이렇게까지 덤벙거리는 성격은 아니었는데. 펜을 주우려 몸을 숙이자, 책꽂이에 꽂혀 있던 얇은 에세이집 한 권이 스르륵 미끄러져 나왔다. 꽂혀 있던 자리에서 2센티미터 정도.

“…?”

책꽂이는 완벽하게 수평이었다. 지진이 난 것도 아니고, 누가 건드린 것도 아닌데. 그녀는 순간 숨을 멈췄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어깨 너머로 빤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머릿속으로 온갖 합리적인 설명을 찾으려 했지만, 이 모든 기이한 현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우연치고는 기이했다.

밤이 되자 공포는 더욱 증폭되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거실 조명이 갑자기 **번쩍** 하고 꺼졌다. 순간의 암흑. 지영은 숨을 들이켰다.

“뭐야… 정전인가?”

스마트폰을 더듬어 찾아 플래시를 켜려는 순간, 조명이 다시 **번쩍** 하고 켜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빛을 내는 조명 아래, 지영의 그림자가 덜덜 떨고 있었다.

**덜컥! 덜컥! 덜컥!**

이번에는 거실 한가운데 놓인 대형 스탠드 TV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켜졌다. 화면 가득 노이즈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온갖 빛의 파편들이 정신없이 튀어 오르는 와중에, 지영은 화면 속에서 무언가 형체를 알아보려 애썼다.

**지직- 팍!**

그리고는 이내 다시 꺼졌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어둠. 잠시 후, 거실 조명이 다시 **번쩍** 하며 켜졌고, 방금 전 TV가 켜졌던 일은 환각이었다는 듯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지영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헛것을 본 것이라고, 착각이라고 스스로를 다그쳤지만,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파트에, 그녀의 보금자리에, 그녀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두려움에 질려 주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지만, 등골에 흐르는 식은땀은 멈추지 않았다.

주방은 거실보다 훨씬 차가웠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마치 한겨울의 칼바람이라도 불어오는 듯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지영은 떨리는 손으로 물병을 내려놓았다. 그때, 씽크대 위 식기 건조대에 가지런히 꽂혀 있던 접시 중 하나가, 마치 무언가에 걷어차인 것처럼 **팟!**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그리고는 그대로 벽을 향해 날아갔다.

**콰앙!**

섬뜩한 굉음과 함께 접시가 산산조각 났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지영의 비명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이 느리게, 아주 느리게 칼꽂이로 향했다.

**스륵… 스륵…**

칼꽂이에 박혀 있던 칼들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칼날들이 희미한 조명 아래 섬뜩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중 가장 긴 셰프 나이프가, 마치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라도 되는 양, **쓰으윽** 소리를 내며 칼꽂이에서 천천히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은색 칼날이 공중에 떠올랐다. 칼끝은 지영의 심장을 향해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 칼을 쥐고 있는 것처럼, 칼은 공중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지영은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이 아니었다. 꿈이었다. 악몽이었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와 심장을 찢는 듯한 공포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소리 지를 수도 없었다. 셰프 나이프의 날카로운 칼끝이 흔들리는 조명 속에서 섬뜩하게 번뜩였다.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아파트에, 그녀와 함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서늘한 존재감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지금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