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녹슨 심장의 밀회

기름때 묻은 작업복 소매를 걷어 올린 리엔은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아 한참을 시계추처럼 흔들렸다. 톱니바퀴가 쉼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낡은 증기 파이프에서 새어 나오는 김이 희뿌연 안개처럼 작업장을 채웠다. 습하고 퀴퀴한 공기 속에서 구리 냄새와 쇠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이곳은 그녀에게 도피처이자 동시에 숨 막히는 감옥이었다.

벌써 세 시진째였다. 카이는 오지 않았다.

새벽녘, 도시의 심장부에서 터져 나온 증기 폭발 소식은 순식간에 골목골목을 휩쓸었다. ‘아우리아 족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재빨리 퍼졌고, 총독부의 감시망은 이전보다 훨씬 촘촘해졌다. 길거리엔 금속 부츠를 신은 감시병들이 부쩍 늘었고, 대형 비행선들이 낮은 고도로 순찰하며 도시 전체를 감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가 자신의 구역을 벗어나 리엔의 작업장으로 오는 것은 단순한 위험을 넘어선 무모함이었다.

“젠장, 젠장…….”

리엔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손에 쥐고 있던 렌치를 삐걱이는 작업대 위에 던졌다. 텅 빈 작업장에는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만이 울렸다. 불안감은 점차 그녀의 심장을 갉아먹는 녹처럼 번져갔다. 만약 카이가 잡히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규칙은 잔인했다. 아우리아 족은 인간과의 접촉, 특히 이런 ‘불순한’ 관계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작업장 한쪽 벽에 걸려 있던 낡은 압력계의 바늘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내 바닥에 깔린 톱니바퀴들이 미끄러지는 듯한, 아주 희미한 마찰음이 들렸다. 리엔은 숨을 들이켰다. 오직 자신만이 아는, 이곳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의 신호였다.

차가운 금속 벽 한 조각이 소리 없이 옆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그 틈새로, 어둠을 등지고 선 그림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길고 유려한 실루엣,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비늘 같은 피부. 카이였다.

그는 늘 그랬듯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나타났다. 잿빛 푸른색으로 빛나는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등대의 불빛처럼 리엔에게로 향했다.

“카이…!”

리엔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채 한 발짝도 떼기 전에 카이는 가늘고 긴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여전히 한 치의 소리도 내지 않는 움직임. 그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굳어 있었다.

벽이 다시 닫히는 둔탁한 소리가 등 뒤에서 울리고, 카이는 좁은 작업장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몸에서 희미하게 비릿한 철 냄새가 났다. 보통 아우리아 족은 그런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아니, 그보다… 괜찮아?”

리엔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카이의 팔에 손을 얹으려 했다. 그의 피부는 예상대로 차가웠다. 그러나 카이는 그녀의 손길을 피해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오늘 새벽, 총독부 직속 증기 엔진이 파괴되었다.” 카이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기계음처럼 감정 없는 울림이 공간을 채웠다. “아우리아 족 소행으로 단정되었고, ‘종족 간 접촉 금지령’이 강화되었다.”

리엔은 손을 굳게 말아 쥐었다. “알고 있어. 시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도. 그래서 더 걱정했어, 너.”

“나는 괜찮다.” 카이의 시선은 늘 그랬듯이 미동도 없이 리엔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네가 위험하다. 이곳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무슨 소리야? 이곳은 오랫동안… 아무도 몰랐잖아.” 리엔은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낡은 파이프, 녹슨 기어, 쓰다 만 부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작업실. 이곳은 그녀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공간이었다. 도시의 거대한 기계 장치 한가운데 숨겨진, 완벽한 은신처라고 믿어왔다.

“감시병들의 수색 범위가 넓어졌다.” 카이는 작업대 위에 놓인 낡은 지도 한 장을 가리켰다. 그가 손가락으로 지목한 곳은 다름 아닌 리엔의 작업장 바로 인근이었다. “특히, 오래된 비활성 증기 라인 주변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다.”

리엔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 작업장은 도시의 가장 오래된,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증기 라인 중 하나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을 통해 외부의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비밀 통로를 감추고 있었다.

“그럼… 누가 알았다는 거야? 우리가 여기서 만난다는 걸?” 리엔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잿빛 푸른 눈동자 속에 불안감이 번지는 것이 리엔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아우리아 족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었지만, 리엔은 그의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리엔은 허탈하게 웃었다. “이 빌어먹을 도시가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구나. 하다못해 숨 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아.”

“나 때문에 네가 위험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카이는 한 걸음 더 리엔에게 다가섰다. 그의 차가운 손이 조심스럽게 리엔의 뺨에 닿았다. 늘 감정을 억누르던 그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제… 만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의 말에 리엔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만나지 않는 것? 그건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서로의 온기만이 이 차가운 기계 도시에서 그들을 숨 쉬게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안 돼, 안 돼, 카이…!” 리엔은 카이의 손을 꽉 잡았다. 그의 손은 늘 그랬듯이 차갑고 단단했지만, 오늘은 유독 더 위태롭게 느껴졌다. “내가 괜찮아. 네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 순간이었다.

‘철컥… 삐이이이익….’

작업장 외부에서 들리는 익숙한 금속 마찰음. 그러나 평소와는 다른, 거칠고 불규칙한 소리였다. 마치 낡은 자물쇠가 강제로 열리는 듯한 불길한 소리였다.

카이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작업장으로 향하는 유일한 외부 문에서 나는 소리였다.

“누가… 온 거야?” 리엔의 목소리가 공포로 굳었다.

카이는 리엔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의 움직임은 순간적으로 빨라졌다. 작업장 구석에 있던 대형 증기 압축기 뒤편, 수많은 파이프와 밸브가 복잡하게 얽힌 곳. 그곳에는 리엔만이 아는, 어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비상 통로가 있었다.

“이곳으로… 빨리.” 카이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었다.

리엔은 망설일 틈도 없이 그가 가리킨 통로로 몸을 구겨 넣었다. 녹슨 철제 문이 그녀의 어깨를 스치며 닫히는 순간, 밖에서는 이미 거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금속 부츠가 바닥을 울리는 둔탁한 소리, 그리고 낮게 깔린 남자의 목소리.

“이봐, 이쪽을 자세히 봐. 이 근처에서 비활성 증기 라인의 미세한 에너지 유출이 감지되었다고 했다. 이곳에 수상한 움직임이 있었을 거야.”

리엔은 통로 안에서 숨을 죽였다.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와 먼지 냄새가 역겨웠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카이는 어디에… 그는 그녀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아 있었다.

“카이…!” 리엔은 입술을 꽉 깨물고 그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다급한 발소리가 작업장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의 대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리엔은 좁고 어두운 통로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렸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여기는… 아무것도 없군.” 한 감시병의 목소리. “오래된 고물상 같은데. 보고된 유출은 어디서…?”

“잠깐.” 다른 감시병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저기, 작업대 위에… 렌치가 왜 저렇게 놓여 있지? 그리고… 이 기름 냄새는 방금 쓰인 것 같은데?”

리엔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녀가 아까 던졌던 렌치…!

그때, 통로 밖에서 둔탁한 굉음이 울렸다. 마치 무언가가 벽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이어서 감시병의 외침이 들려왔다.

“누구냐! 정지해! 아우리아 족이다! 저놈을 잡아!”

카이…!

리엔은 비명처럼 터져 나오려는 자신의 목소리를 필사적으로 틀어막았다. 차가운 금속 벽에 기대어 그녀는 고통스러운 숨을 헐떡였다. 밖에서는 감시병들의 날카로운 호각 소리와 함께 격렬한 몸싸움 소리가 이어졌다.

카이가 잡히면… 그들의 규칙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리엔은 좁은 통로 안에서 몸을 떨었다. 그녀는 지금, 생애 가장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과연 이대로 숨어 있어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카이를…

바깥의 소리는 더욱 거칠고 절박하게 변해갔다. 이 어둡고 녹슨 심장의 은신처가, 지금 막 그들의 마지막 보금자리를 삼켜버리려는 듯했다.

_다음 화에 계속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