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둠은 끈질겼다. 덧대고 덧댄 비단처럼, 숨 막히는 침묵과 함께 우주선 ‘세레스’를 감싸고 있었다. 지구로부터 수십 광년 떨어진 이 심우주에서, 세레스호의 승무원들은 끝없는 고독과 미지의 기대 속에 표류하고 있었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에는 별들의 차가운 빛만이 반짝였고, 그 빛은 마치 인류의 존재를 비웃는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캡틴, 이상 신호입니다.”

정적을 깬 건 세라 박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항상 침착했지만, 이번만큼은 미세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리오 캡틴은 눈을 가늘게 떴다. 탐사 임무 중 수없이 많은 미세 신호를 접했지만, 세라가 이 정도로 반응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세히 설명해봐, 세라.”

“불가능한 수치입니다. 이온화된 가스 구름도 아니고, 블랙홀의 잔여물도 아닙니다. 특정 주파수로 고정된… 일종의 인공적인 파동으로 보입니다.”

준은 조종간에서 손을 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공적이라고요? 이 미개척 영역에서?”

“위치는?” 리오가 물었다.

세라는 몇 번의 키 조작 후 스크린에 홀로그램 좌표를 띄웠다. “불과 수십만 킬로미터 이내입니다. 저희 경로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믿기 어렵지만, 거의 고대 문명 수준의 에너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대 문명이라….” 리오의 뇌리에는 경고등이 울렸다. 인류는 우주에서 자신들 외의 지성체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지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항로를 변경한다. 접근 속도는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모든 센서를 최대치로 가동해.”

“캡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나나가 경고했다. 그녀는 늘 그렇듯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날카로운 눈빛에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 세레스호의 보안 및 의료 담당관인 나나는 임무 중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게 우리 임무다, 나나. 미지를 탐사하는 것.” 리오는 단호하게 말했다.

수 시간의 항해 끝에, 스크린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것은 별도 아니었고, 행성도 아니었다. 폐허가 된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불규칙한 모양새의 잔해가 우주를 떠다니며, 마치 오랫동안 잊힌 거인의 뼈대 같았다. 그 뼈대 사이로 희미한 에너지 파동이 규칙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군요.” 준이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엔진 출력은 없지만, 이 정도 잔해라면 최소한 행성 하나를 파괴하고 남을 만한 덩어리인데요.”

세라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빛났다. “분석 결과, 이 구조물은 최소 백만 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떤 금속 합금인지도 파악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어떤 문명의 흔적도 없어요.”

“중심부에는 뭐가 있죠?” 리오가 물었다.

구조물의 한가운데에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듯한 완벽한 흑색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었다. 그 길이는 세레스호의 두 배에 달했고, 표면은 거울처럼 매끄러웠지만, 어떤 이미지도 비추지 않았다.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그 자체였다.

“이것이 에너지 파동의 근원입니다.” 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캡틴, 저건… 유물입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발견보다도 중요한 유물이에요!”

리오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인류가 이 우주에서 마침내 찾은, 외계 문명의 흔적.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 아니, 어쩌면…

“접근 준비. 착륙은 불가능해 보이고, 직접 도킹도 위험하다. 세라, 준, 나나. 탐사선 준비해. 나도 간다.”

“캡틴!” 나나가 불렀다. “지휘관은 함선에 남으셔야 합니다.”

“안 돼. 이건 내 임무다. 게다가, 이런 중요한 순간을 놓칠 순 없어.” 리오는 방호복을 착용하며 말했다.

탐사선이 세레스호를 벗어나 검은 구조물의 잔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잔해들은 기이한 대칭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안쪽은 차가운 우주가 아니라 마치 거대한 동굴처럼 느껴졌다. 탐사선 라이트가 비추는 곳마다, 묘한 문양들이 벽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언어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했지만,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였다.

마침내, 탐사선은 오벨리스크 앞에 멈춰 섰다. 그 거대한 어둠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믿을 수가 없어…” 세라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이 표면을 보세요. 어떤 충격에도 견딜 수 없는 강도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매끄러워요.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것처럼.”

“에너지 반응이 더욱 강해지고 있습니다.” 준이 계기판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에너지인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아는 어떤 스펙트럼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나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의 자동소총은 준비되어 있었지만, 과연 저런 존재에게 총알이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접촉해봐야겠어.” 세라가 마침내 결심한 듯 말했다.

“안 돼, 세라!” 리오가 소리쳤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

“캡틴, 저희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세라는 이미 탐사선의 팔을 조작해 오벨리스크를 향해 뻗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에요. 어쩌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탐사선의 기계 팔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오벨리스크의 표면에 닿았다.

정적.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세라는 실망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아무것도….”

그 순간, 오벨리스크의 표면에서 미세한 떨림이 시작됐다. 흑색의 표면에 마치 은하수가 깃든 듯, 수많은 작은 빛의 점들이 피어났다. 그 빛들은 서로 연결되며 기이한 문양을 형성했고, 탐사선 내부의 모든 조명이 꺼진 것처럼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다.

“젠장!” 준이 소리쳤다. “시스템이 오작동하고 있습니다! 탐사선 전력이… 먹통이에요!”

“나도 보입니다!” 리오의 눈앞에 섬광처럼 스치는 이미지들이 있었다. 잿더미가 된 지구. 불타는 도시. 비명을 지르는 인류. 그리고 그 모든 파괴의 한가운데서 비웃듯 서 있는, 바로 저 검은 오벨리스크의 환영. 그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생생한 감각, 절망의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이게… 뭐지?” 나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눈빛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세라는 오벨리스크의 빛나는 문양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캡틴… 이건… 언어입니다. 그들의 언어… 그들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어요.”

오벨리스크에서 뿜어져 나온 파동이 탐사선 전체를 뒤흔들었다. 빛이 아니었다. 소리도 아니었다. 존재의 진동이었다. 그것은 뇌를 직접 파고드는 듯한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세라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야….”

“세라! 괜찮아?” 리오가 그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탐사선 내부의 중력이 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몸이 제멋대로 흔들리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엔진 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습니다! 세레스호와의 통신도, 모두 먹통입니다!” 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눈은 이미 충혈되어 있었다.

나나의 총이 저절로 손에 들렸다. 그녀의 몸은 마치 기계처럼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겨눌 대상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허공을 노려볼 뿐이었다.

오벨리스크의 문양은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밝아졌다. 이제 그것은 탐사선 내부로 스며드는 듯했다. 조종석의 금속 표면에 검은 무늬들이 기생하듯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오벨리스크의 피부가 탐사선을 감싸는 듯했다.

“우린… 뭘 건드린 거지?” 리오의 목소리가 절망에 가까웠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불타는 지구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그것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예언이었다. 혹은… 이미 벌어진 미래의 조각이었다.

세라가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몸을 웅크렸다. 그녀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들은… 종말을 가져오는 자들이 아니었어… 종말을 경험한 자들이야… 그리고 그 종말이… 다시 찾아왔어….”

오벨리스크는 침묵 속에 빛을 뿜었다. 그 빛은 우주선 내부의 모든 것을 뒤덮었고, 리오의 눈앞에는 이제 끝없이 펼쳐진 어둠만이 존재했다.
세레스호는 정체불명의 외계 유물에 의해 삼켜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심우주 한가운데서, 인류가 직면할지 모르는 종말의 서곡을 온몸으로 느끼며 처절한 생존 싸움을 시작해야 했다. 그들이 데려온 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차가운 우주가 품은, 인류의 존재를 뒤흔들 재앙의 씨앗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