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탐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폐부를 긁었다. 비릿한 피 냄새와 썩은 흙냄새가 뒤섞인 이곳은 ‘망각의 심연’, 그가 숨통을 조여오는 복수심을 단련하는 사냥터였다. 류진은 묵직한 대검을 어깨에 메고 어둠 속을 걸었다. 그의 발소리만이 고요한 심연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크르르…”

어둠 속에서 희미한 녹색 눈동자들이 번쩍였다. 굶주린 그림자 늑대 무리였다. 녀석들은 류진의 존재를 감지하고 경계하며 원을 그렸다. 과거 같았으면 신경 썼을 법한 하급 몬스터들이었지만, 지금 류진의 눈에는 한낱 장애물에 불과했다.

“귀찮군.”

류진의 입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검이 그의 손에서 번개처럼 뽑혀 나왔다. 푸른 마력이 칼날을 따라 일렁였다.

콰아앙!

첫 번째 늑대가 류진을 향해 덮쳐들었을 때, 그의 대검은 이미 허공을 갈랐다. 섬광 같은 일격에 늑대의 몸통이 두 동강 나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피 튀는 광경에도 류진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을 뿐이다.

“덤벼라, 벌레들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은 늑대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류진은 몸을 숙이며 첫 번째 늑대의 발톱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검을 역수로 쥐어 복부를 꿰뚫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늑대의 뒤통수를 대검의 손잡이로 후려쳐 그대로 땅에 처박았다. 녀석은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고통에 몸부림치다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검은 마력으로 뒤덮인 류진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다. 마치 춤을 추듯, 혹은 죽음의 예술가처럼 그림자 늑대들을 하나씩 도륙해 나갔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고, 으르렁거리던 소리들은 곧 단말마의 비명으로 바뀌었다. 10여 마리의 늑대 무리가 채 1분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쓰러졌다.

류진은 묵묵히 대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깊은 분노가 서려 있었다. 1년 전, 그날의 기억은 매일 밤 그의 꿈을 찢어발겼다.

* * *

“…젠장, 여긴 너무 위험해! 류진, 우리가 빠져나갈 길을 열어야 해!”

‘천공의 탑’ 최하층, 균열로 뒤덮인 붉은 용암 지대. 거대한 화염 거인이 포효하며 길을 막고 있었다. 파티의 리더였던 지혁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류진은 그의 눈빛에서 다른 무언가를 읽었다. 흔들림, 그리고… 계산.

“내가 몸을 묶을 테니, 너희는 먼저 탈출구를 확보해! 후퇴는 없어!”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들의 목표는 화염 거인의 핵. 그것만 얻으면 파티는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 류진! 네가 있어 든든하다! 믿고 맡길게!” 지혁이 활짝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 순간, 류진의 등 뒤에서 섬뜩한 냉기가 스쳤다.

쿠구궁!

발밑의 지반이 거칠게 흔들렸다. 지혁이 어깨를 두드렸던 손이 류진의 등을 강하게 밀쳤다. 류진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균열 속으로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자신을 향해 비웃듯이 일그러진 지혁의 얼굴, 그리고 동료들의 경악인지, 동조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미안하다, 류진. 여기까지야. 그 망할 ‘영혼흡수’ 스킬은 네놈에게 너무 과분했어.”

그의 목소리는 용암의 끓는 소리보다 더 뜨겁게 류진의 귓가를 태웠다.

* * *

류진은 이를 악물었다. 떨어지는 순간 그의 목숨을 건진 것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고, 마력 회로가 망가졌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오직 복수심 하나로.

“지혁… 네놈의 영혼을 조각조각 찢어발겨 줄 테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류진’이 아니었다. 배신당한 분노와 절망 속에서 그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몸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어둠의 마력. 비록 주변에서는 그를 ‘타락한 각성자’라 부르며 손가락질했지만, 류진에게는 오직 복수만이 존재했다.

깊숙한 심연 속으로 더 나아가자, 망각의 심연의 주인이라 불리는 ‘심연의 망령’이 나타났다. 육신 없는 검은 형체가 거대한 낫을 들고 허공에 떠 있었다. 망령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이 주변을 압도했다.

“누가 나의 영역을 침범하는가…” 망령의 목소리는 수천 개의 영혼이 비명을 지르는 듯했다.

류진은 대답 대신 검을 고쳐 쥐었다. 대검의 푸른 마력과 그의 몸에서 피어나는 검은 마력이 뒤섞여 기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는 망령의 거대한 낫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망령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쉬이이익!

망령의 낫이 그의 코앞을 스쳤다. 류진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검은 마력이 칼날을 따라 길게 뻗어 나가 망령의 몸통을 가로질렀다.

콰지직!

망령의 몸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망령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이내 연기가 뭉치더니 다시 완전한 형태로 돌아왔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망령의 특성을 류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웃기는군. 영혼만 남은 주제에.”

류진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검은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영혼 흡수’. 지혁이 탐냈던 바로 그 스킬이었다. 류진은 망령이 내뿜는 붉은 기운을 검은 소용돌이로 빨아들였다. 망령의 몸이 점점 희미해졌다.

“크아아악! 이… 이 힘은… 감히… 감히 너 같은 하찮은 존재가…”

망령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저주를 퍼부었지만, 류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자신의 영혼까지 깎아 먹는 위험한 스킬이었지만, 이제 류진은 어둠의 마력으로 이를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는 망령의 영혼을 뿌리째 뽑아내듯 흡수했다. 망령의 거대한 형체가 소멸하고, 바닥에는 짙은 검은 기운만이 맴돌았다.

류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흡수한 망령의 영혼 조각들이 그의 몸속을 채워나가며 힘을 불어넣었다. 강해지는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아직 부족했다. 지혁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로는 어림없었다.

그가 심연의 가장 깊은 곳, 망령이 지키던 공간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작은 마력석 제단이 있었다. 그리고 제단 위에는 익숙한 문양이 새겨진 낡은 편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류진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 문양은 한때 자신과 지혁, 그리고 동료들만이 알던, 그들의 첫 번째 길드 ‘새벽의 그림자’의 문양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집어 들었다. 봉투는 이미 뜯겨 있었고, 안에는 빛바랜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류진은 한 글자 한 글자, 그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류진에게… 네가 이걸 읽을 때쯤이면 난 이미 ‘천공의 탑’ 최상층에 도달했을 거야. 네 ‘영혼 흡수’ 스킬은 내가 필요했어. 네놈은 그저 도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 네 희생 덕분에 난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 언젠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네가 내 발밑에 무릎 꿇는 모습을 보게 될 거야. 그때까지, 편히 잠들어라. 영원히.”

편지의 말미에는 지혁의 이름이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류진의 손에서 편지가 부들부들 떨리다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눈동자는 활활 타오르는 용암처럼 붉게 물들었다. 몸속의 어둠의 마력이 폭주하듯 솟구쳐 올랐다.

“지혁… 네놈이… 네놈이 기어코…!”

그는 이를 악물었다. 심연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류진의 분노는 망각의 심연 전체를 뒤흔들었다. 망령의 영혼을 흡수하고 얻은 새로운 힘, 그리고 지혁의 오만한 도발. 모든 것이 하나로 뭉쳐져 류진의 심장을 집어삼켰다.

이제 망각의 심연은 더 이상 그에게 사냥터가 아니었다. 복수의 서막을 알리는 종착역이었다.

“기다려라, 지혁. 내가 네놈을 찾아가…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갚아줄 테니까.”

류진의 핏발 선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의 손에 쥐어진 대검에서 검붉은 마력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지혁의 오만한 웃음이 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류진은 심연의 어둠 속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사냥꾼은 사냥감을 향해 나아갈 시간이었다. 그 어떤 지옥이라도 기꺼이 헤치고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