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오페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별들의 무림

## 1장. 무림성계, 천하의 부름

시공의 흐름조차 멈춰 선 듯한 고요 속에서, 은하수 저편에 홀로 빛나는 거대한 건축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단순히 행성이나 인공 구조물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장엄하고, 동시에 너무나 비현실적인 경지였다. 수천, 수만 겹의 고밀도 은하 금속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원형 경기장. 그 중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듯, 검푸른 오라를 뿜어내는 거대한 ‘무극탑(無極塔)’이 우뚝 솟아 있었다. 이곳은 강호성계(江湖星系)의 심장이자, 천하무림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천무행성(天武行星)’이었다.

천무행성의 대기권 밖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수많은 성선(星船)들로 가득했다. 행성의 푸른 대기 너머로 보이는 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거대 전함에서부터, 한 명이 겨우 탑승할 수 있는 소형 기뢰정(機雷艇)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문파와 세력을 상징하는 문양을 새긴 비선(飛船)들이 마치 별똥별처럼 쇄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하나의 목소리에 답하여 이곳 천무행성에 모인 것이었다.

“천하제일무투대회(天下第一武鬪大會).”

그 이름만으로도 모든 강호인들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십오 년에 한 번씩 열리는 대장정. 하지만 이번 대회는 그 어떤 때보다도 비장하고, 동시에 절망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무극탑 최상층, 천궁(天宮)이라 불리는 의전 홀. 투명한 시공간 유리가 우주를 그대로 비추는 이곳에, 천무연맹의 최고 수장인 ‘무림대종사(武林大宗師)’ 혈도신군(血刀神君)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의 옆으로는 각 성계의 문파를 대표하는 연맹 상임위원들이 좌정해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들뜬 기색 대신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천마성계(天魔星系)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보고가 도착했습니다.” 한 상임위원이 침통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미 절반 이상의 행성이 마기(魔氣)에 잠식되었고, 남은 문파들도 겨우 숨만 쉬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혈도신군은 말없이 창밖의 우주를 응시했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별빛이, 마치 희미한 희망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사백 년 전, ‘공허의 틈’이 열렸을 때 우리는 겨우 막아냈다. 그때는 열 개의 성계가 단결했지만, 지금은… 이미 다섯 개의 성계가 무너졌어.”

또 다른 위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기(魔氣)는 물질은 물론이고, 우리의 내공(內功)마저 오염시킵니다. 정파(正派)의 기운을 무(無)로 돌려버리고, 결국엔 육신을 마물로 변이시키니… 우리의 무공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혈도신군의 굳은 목소리가 홀을 울렸다. “대회 우승자는 단순히 천하제일무사의 칭호만 얻는 것이 아닙니다. 무극탑의 봉인을 풀고, ‘태초의 기원(太初의 氣源)’을 다룰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모든 위원들의 얼굴에 경악과 함께 희미한 희망이 스쳐 지나갔다. 태초의 기원. 그것은 강호성계가 탄생했을 때부터 무극탑에 봉인되어 있던 전설 속의 힘이었다. 만물을 창조하고 소멸시키는 궁극의 에너지. 그것을 다룰 수만 있다면, 공허의 마기 따위는 한 줌 재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힘은 우주를 파멸시킬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누가 그 막강한 힘을 감당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위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혈도신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것이 바로 이번 대회의 목적이다. 천하제일의 무위를 넘어, 그릇과 덕을 갖춘 진정한 영웅을 찾아야 한다.”

***

천무행성 대기권 아래, 수십 개의 거대한 착륙장이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었다. 각 착륙장마다 화려하거나 혹은 투박한 문파의 성선들이 굉음을 내며 착륙을 시작했다. 착륙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강호인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푸른색 도포를 휘날리는 청운문(靑雲門)의 선객들, 육중한 갑옷을 두른 천뢰궁(天雷宮)의 무사들, 허공을 날아다니는 듯 가벼운 발걸음의 유성문(流星門) 협객들… 각기 다른 문파의 색깔이 행성을 물들이는 듯했다.

이들 중 가장 먼저 착륙을 마친 성선 중 하나는 황금빛 용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비선이었다. 착륙구가 열리자, 가장 먼저 우르르 쏟아져 나온 것은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은 시종들이었다. 그들이 깔아놓은 황금빛 융단 위로, 한 사내가 여유로운 걸음으로 내려섰다.

그는 마치 별빛을 먹고 자란 듯 수려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패기로운 기운은 주변의 모든 강호인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사내의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문파의 장로들과 고수들이 모여들어 고개를 숙였다.

“천마검제(天魔劍帝)께서 강림하셨으니, 이번 대회의 우승은 이미 정해진 것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공허의 마기에 맞서 가장 강력하게 저항해 오신 분이 바로 천마검제시지 않습니까!”

환호와 아첨이 섞인 목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사내, 즉 천마검제 ‘묵현(默賢)’은 빙긋이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살짝 비웃는 듯한 기색마저 엿보였다.

“과분한 칭찬들. 허나, 나는 그저 나의 천마검(天魔劍)으로 이 천하를 지키고자 할 뿐이다.” 묵현의 목소리는 낮고 위엄 있었다. “어찌, 공허의 마기 따위가 이 천하를 집어삼킬 수 있겠는가. 태초의 기원이 내게 있다면, 나는 단숨에 그들을 소멸시킬 것이다.”

그의 말에 강호인들은 더욱 열광했다. 묵현은 이미 오랜 기간 동안 공허의 마기에 맞서 싸우며 명성을 쌓아온 이였다. 그의 검법은 오차 없이 정교하고, 그 내공은 우주를 가를 듯 강력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 저 깊은 곳에는 무언가 섬뜩하고 차가운 그림자가 깃들어 있었다.

그때였다. 묵현의 눈길이 한쪽에 조용히 착륙하고 있는 작은 소형 기뢰정으로 향했다. 문파의 문양도, 그 흔한 장식 하나 없는 투박한 비선이었다. 묵현의 시종들이 경멸 어린 눈으로 그 비선을 쳐다봤다.

“저런 누추한 비선이 어찌 감히 이곳에….”

묵현은 시종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착륙구에서 막 내려서고 있는 한 여인에게 고정되었다. 여인은 화려한 비단옷 대신 낡고 헤진 검은 도포를 입고 있었다. 등에 짊어진 것은 녹슨 칼집에 담긴 한 자루의 낡은 검. 그 무엇 하나 화려한 것이 없었으나, 그녀의 존재감은 주변의 모든 소음을 잠재우는 듯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물이 흐르듯 유연했고, 그녀의 시선은 묵현의 거만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직 무극탑을 향하고 있었다. 마른 가지처럼 가녀린 몸매였으나, 그 안에서는 마치 억눌린 화산처럼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다.

묵현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흥, 제법 재미있는 자도 있었군. 저런 초라한 행색으로 태초의 기원을 탐하다니.”

묵현의 말이 그녀의 귀에 닿았는지, 여인의 발걸음이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묵현을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읽을 수 없는 검은 눈동자. 하지만 묵현은 그 속에서 얼음장 같은 냉기를 느꼈다.

묵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 눈빛. 아주 마음에 드는군. 허나, 저항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 수는 없을 게다.”

여인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무극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이름은 ‘류화(柳花)’. 사라진 것으로 알려진 ‘절영문(絶影門)’의 마지막 계승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번 대회가 단순히 천하제일무사를 가리는 자리가 아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강호성계의 모든 별들이 숨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무극탑의 거대한 광장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혈도신군의 묵직한 목소리가 성계 전체에 울려 퍼졌다.

“강호성계의 모든 무림인들이여! 천하의 존망이 걸린 대회가 마침내 개막한다! 그대들의 무공과 의지로, 이 천하를 구원하라!”

환호성과 함께 수만 개의 빛줄기가 무극탑을 향해 솟구쳤다. 각 문파의 기운들이 뒤섞여 거대한 무림의 물결을 이루는 장관이었다. 대회의 막이 올랐다. 그리고 그 막 뒤에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