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아르카나의 균열

쨍한 정오의 햇살이 아르카나 마법 학원 대강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무지개색으로 부서진 빛줄기가 대리석 바닥 위로 흩어지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마법 역사학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얼굴 위를 스쳤다. 나는 그 빛줄기를 멍하니 올려다보며, 어서 이 시간이 끝나기를 바랐다.

강단 위에 선 트렌트 교수는 지팡이로 고풍스러운 두루마리를 툭툭 치며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마법 서적의 먼지처럼 건조하고 권위적이었다. “명심하십시오, 학생 여러분. 마법은 질서입니다. 질서 없이는 혼돈만이 남을 뿐이지요. 수백 년간 지켜온 아르카나의 굳건한 질서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근원입니다!”

강현. 그게 내 이름이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3학년생.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고 불렀지만, 그건 그저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빨리 주문을 외고, 조금 더 정확하게 마법을 구사할 뿐이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라, 그저 엿 같은 질서에 길들여지지 못한 이방인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저 트렌트 교수의 지겹도록 반복되는 ‘질서’ 타령은 내 신경을 긁는 데 도가 텄다.

내 옆자리에 앉은 세리나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질서, 질서. 지겹지도 않나 봐. 난 그냥 오늘 저녁 메뉴가 뭔지나 알고 싶다고.”

나는 피식 웃었다. 세리나는 내 오랜 친구이자, 이 갑갑한 학원 생활의 유일한 낙 같은 존재였다. “오늘 저녁은 어차피 양배추 수프에 딱딱한 빵일걸. 어제랑 똑같겠지.”

“으으, 상상만 해도 위산이 역류하는 것 같아.” 세리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차피 이 학원에서 먹을 만한 건 2년에 한 번 열리는 연회 때나 나오는 고급 요리뿐이야.”

그때였다. 대강당의 묵직한 오크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살짝 열렸다. 복도 너머에서 낮게 깔린 웅성거림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트렌트 교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무슨 소란이지? 복도 관리 담당 학생은 즉시 조용히 시키게!”

하지만 소란은 잦아들기는커녕 점점 커졌다. 급기야 비명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날카롭고 절박한,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비명이었다.

“뭐야?” 세리나가 불안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트렌트 교수는 평생 처음 겪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정숙! 학생들은 자리에 앉아 있게! 내가 직접 확인하도록 하겠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강단에서 내려오려 했다.

바로 그때, 쾅! 하는 굉음과 함께 대강당의 문이 활짝 열렸다. 문 너머의 복도 풍경은 차마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학생 몇몇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그 위로 다른 학생 하나가 엉겨 붙어 있었다. 살점이라도 뜯어 먹으려는 듯이. 그의 얼굴은 피범벅이었고, 눈은 비정상적으로 충혈되어 있었다. 입에서는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어어어…!”

“이, 이건 무슨…!” 트렌트 교수가 경악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비명 소리는 이제 대강당 안에서도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공포가 순식간에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다. 학생들은 혼비백산하여 의자에서 뛰쳐나왔고, 출구를 향해 우르르 몰려갔다.

“강현! 저게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세리나의 목소리에도 공포가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바라봤다. 방금 전까지 지루한 강의를 듣던 복도의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모르겠어… 하지만 저건… 정상적인 게 아니야.” 나는 세리나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 해.”

“크어어어어!”

복도에서 비틀거리며 들어온 ‘그것’들이 대강당 안으로 난입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둔했지만, 압도적인 숫자로 학생들을 덮쳐들었다. 누군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고, 순식간에 수많은 손길이 그를 덮쳤다. 살이 뜯기는 소리가 끔찍하게 울려 퍼졌다.

“이런 젠장!” 나는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세리나, 내 뒤로 붙어!”

“화염벽!” 내가 외치자 지팡이 끝에서 불꽃이 터져 나와 대강당 입구에 거대한 불의 장벽을 만들어냈다. ‘그것’들이 불꽃에 닿자 몸이 타들어가며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곧이어 뒤에서 밀려오는 것들에 의해 불길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안 돼! 오래 못 버텨!” 세리나가 소리쳤다.

나는 당황한 학생들 사이를 헤치고 나가며 소리쳤다. “빨리! 반대편 출구로!”

대강당에는 비상시를 대비한 작은 후문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뒤에서는 학생들이 ‘그것’들에게 물려 쓰러지는 소리,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팡이를 휘둘러 달려드는 ‘그것’들의 머리를 강타하거나, 작은 불꽃 마법으로 경로를 차단하며 겨우 후문까지 도달했다.

문을 박차고 나가자 우리는 좁은 복도를 가로질러 별관으로 통하는 통로로 이어졌다. 사방이 혼돈이었다. “여기도 안전하지 않아!” 세리나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별관 복도도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몇몇은 이미 ‘그것’으로 변해 다른 학생들을 쫓고 있었다. 마법 방어막을 펼치려던 교수가 ‘그것’들에게 둘러싸여 순식간에 쓰러지는 모습도 목격했다. 그들의 마법은 통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들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로 가야 해?” 세리나가 절망적으로 물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이 막혔다. 위층으로 올라가도, 아래층으로 내려가도 상황은 비슷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이 학원 자체가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밖으로 나가야 해. 하지만… 후문은 이미 막혔을 거야. 정문도 마찬가지일 거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남은 곳은 한 군데뿐이야.”

세리나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지하?”

아르카나 마법 학원 지하. 그곳은 학생들에게는 철저히 금지된 구역이었다. ‘고위 마법 연구 구역’, ‘위험 물질 보관소’, ‘금지된 주술의 봉인처’ 등 온갖 소문이 무성했다. 학원 설립 이래 단 한 번도 학생들에게 개방된 적 없는 곳. 입구는 늘 굳게 잠겨 있었고, 강력한 보호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퇴학은 물론, 심하면 마법력을 박탈당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늘 따라붙었다.

하지만 지금, 학원 전체가 ‘그것’들에게 점령당한 상황에서, 그 금지된 지하만이 유일한 탈출구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최소한 외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라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다른 선택지가 없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어쩌면… 모든 것의 원인이 그곳에 있을지도 몰라.”

세리나는 한참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과 함께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알았어.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나는 아무 말 없이 지팡이를 고쳐 잡았다. 별관 지하로 통하는 비밀 통로는 일반 학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학원의 숨겨진 구석들을 탐험하는 것을 즐겼기에 그 존재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철저히 감시받는 본관 지하와는 달리, 별관 지하의 연결 통로는 좀 더 허술하게 관리될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굳게 닫힌 강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 위에는 낡은 문양과 함께 섬뜩한 경고문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을 넘어서는 자, 금기의 심연을 마주하리라.*

문은 강력한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평소 같으면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결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학원 전체의 마법 에너지가 혼란에 휩싸인 탓인지, 아니면 ‘그것’들의 기운이 결계를 약화시킨 것인지, 봉인의 힘이 현저히 약해져 있었다.

나는 지팡이를 문의 중앙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내 마법력이 문의 결계와 부딪히며 파동을 일으켰다. 스파크가 튀고, 낡은 문양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존재처럼, 문이 천천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흐읍!” 온몸의 마력이 빨려 나가는 듯한 고통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결국,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봉인 마법이 깨졌다. 강철 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열렸다. 안에서는 차갑고 눅눅한 공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수백 년간 아무도 드나들지 않은 무덤의 입구 같았다.

어둠 속에서 섬뜩한 기운이 훅 끼쳐왔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심장을 옥죄어왔다.

“강현….” 세리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모든 답은… 저 안에 있을 거야.”

우리는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학원의 소란은 멀어져 갔고, 대신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축축한 벽면에는 이끼가 가득했고,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밑에서는 축축한 물기가 느껴졌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어둠 속에서 거대한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도 양쪽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철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그 복도 끝에서, 섬뜩하고 불길한 붉은빛이 깜빡이며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 빛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마치 무언가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듯한, 혹은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둔탁한 소리였다.

이곳이 바로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금지된 지하.
우리는 미지의 심연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