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허파 깊숙이 파고들었다. 희미한 흙먼지와 눅진한 곰팡이 냄새가 섞인 습기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우리는 며칠 밤낮을 헤매 이제는 지도를 그려내는 것조차 무의미해진 미지의 통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심연의 틈새’라 불리는 던전의 가장 깊숙한 곳. 전설처럼 전해지던 고대 유적의 초입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강현 씨, 여기 공기가 달라요.”
앞서 걷던 유리가 멈춰 서며 낮게 속삭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탐사용 수정구는 주변의 마나 흐름을 감지하는 듯 희미한 푸른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좁고 구불구불하던 통로가 갑자기 넓은 공간으로 이어지면서, 짓누르듯 무겁던 공기는 오히려 팽팽하게 긴장된 상태로 변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내장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조심해. 지금까지와는 달라.”
내 말에 뒤따르던 태준이 묵직한 철갑 방패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그의 등 뒤에 달린 대검이 벽에 부딪히며 ‘철컥’ 소리를 냈다. 우리는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으며 거대한 공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놀랍도록 광활한 원형의 홀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히 높아 우리의 랜턴 불빛조차 닿지 않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사방의 벽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대한 돌덩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에는 희미하게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먼 옛날, 잊혀진 문명의 흔적이었다.
“이봐, 저거 봐.”
태준이 손가락으로 홀 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닳고 닳은 낡은 석판 위에 얹혀진 정체불명의 조형물이 있었다. 마치 거대한 수정이 깎여 만들어진 듯한 그것은 내부에 희미한 빛을 머금고 맥박처럼 느리게 깜빡이고 있었다. 색은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회색과 보랏빛이 뒤섞인 오묘한 빛이었다. 그 빛은 홀 전체를 은은하게 비추며 기이한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었다.
“저게… 고대 문명에서 ‘별의 눈물’이라고 불리던 유물인가?”
유리가 숨을 죽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대 문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유물을 향해 다가갔다. 석판 주변에는 알아볼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장엄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어 유물에 닿으려던 순간이었다.
‘쉬이이익….’
홀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침묵을 찢고,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수만 개의 작은 벌레들이 한꺼번에 날개를 비비는 듯한 소리였다. 우리는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주변을 경계했다. 수정구의 푸른빛이 격렬하게 깜빡이며 위험을 알렸다.
“유리! 무슨 소리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강한 마나 흐름은 처음이에요! 게다가… 저 소리는 마나에서 직접 나는 것 같아요!”
유리의 목소리가 불안에 떨렸다. 그 순간, 홀의 사방 벽에서 새겨져 있던 그림들이 갑자기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고대 문명의 사람들과 그들이 섬기던 알 수 없는 존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대한 재앙이 닥쳐 모든 것을 삼키는 듯한 장면이 섬뜩한 그림자처럼 벽을 따라 움직였다.
‘콰앙!’
홀 전체가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울렸다. 마치 거대한 바위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였다. 유물이 얹혀져 있던 석판 바로 뒤쪽, 벽의 한 부분이 ‘쩌적’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칠흑 같은 어둠이 보였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쿠우웅… 쿠우웅…’
느리고 둔탁한 발소리가 홀을 진동시켰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차가운 금속과 단단한 돌이 뒤섞인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인간형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키는 두 배 이상이었고, 온몸은 검은색의 금속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눈이라 할 수 있는 부위에서는 섬뜩한 붉은빛이 번쩍였다. 고대 유적의 수호자, 혹은 감시자.
“젠장! 이런 게 아직도 살아있다고?!”
태준이 이를 악물고 방패를 단단히 세웠다. 놈의 존재감만으로도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벽에 그려져 있던 재앙의 그림들, 그리고 유물의 의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 수호자는 단순한 괴물이 아니었다. 이 유적의 가장 깊은 비밀과 연결되어 있을 터였다.
붉은 눈이 우리를 향해 고정되었다. 그리고 천천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거대한 팔을 들어 올렸다. 팔 전체에서 희미한 전류 같은 것이 번쩍였다.
“흩어져! 준비해!”
내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놈은 움직였다. 거대한 금속 팔이 홀의 공기를 가르며, 우리를 향해 무자비하게 내리쳤다. 그 속도는 거대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섬광 같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몸을 던져 피했지만, 그 충격파만으로도 홀의 바닥이 거칠게 울렸다. 놈의 공격이 닿은 바닥은 ‘콰직’ 소리를 내며 깊게 파였다.
이게 시작이었다. 이 고대 수호자를 뚫어야만, 잊혀진 문명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대가가 얼마나 클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붉게 빛나는 눈이 다시 한번 섬뜩하게 번뜩이며, 홀 전체에 전율을 선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