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어둠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 내가 스스로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차가운 돌바닥이 등에 달라붙었다. 축축하고 역겨운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귓가에는 끊임없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마치 내 심장이 터져버릴 시간을 세는 초침처럼.

눈을 뜨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공간의 형태는 감옥이었다. 그것도 최악의. 나의 두 손은 거친 쇠사슬에 묶여 천장으로 이어져 있었다. 어깨는 이미 탈골된 지 오래인 듯, 끔찍한 고통과 함께 감각이 마비된 지 오래였다. 손목의 쇠사슬은 살을 파고들어 피가 말라붙은 흔적과 진물이 뒤섞여 있었다. 온몸의 근육은 돌덩이처럼 굳어 있었고, 등과 옆구리에는 깊은 자상이 여전히 뜨겁게 타올랐다.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이름은… 카인. 그래, 카인.
그 다음은? 빛이 가득했던 기억들이 파편처럼 뇌리를 스쳤다. 태양보다 밝게 타오르던 마력. 검에 담아 휘두르던 번개. 찬사와 존경으로 빛나던 시선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앗아간 한 순간의 배신.

“크윽…!”

기침이 터져 나오자 갈비뼈가 부서지는 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폐에서 피가 역류하는 기분이었다.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목구멍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아니, 몇 주째 제대로 된 음식조차 입에 대지 못했다. 몸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혼돈이었다. 불꽃과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 그곳에서 나는 전우들을 이끌고 악마 군단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내가 지켜야 했던 것은, 이 대륙의 희망이자 힘의 원천인 ‘기원의 심장’이었다. 성스러운 유물. 그 유물의 수호자이자, 태양의 심장 기사단의 단장이었던 나. 카인.

그때, 등 뒤에서 느껴졌던 싸늘한 기운. 본능적으로 돌아보았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푸른 섬광과 함께 번뜩이던 검이었다. 그리고 그 검을 쥐고 있던 얼굴.

*엘리안.*

나의 오랜 친구. 어린 시절부터 함께 검을 잡고, 마법을 익히며, 대륙을 누비던 나의 유일한 벗. 그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나의 형제.
그가 날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의 눈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고, 입가에는 비열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미안하다, 카인. 하지만 이건 대의를 위한 일이다.”

그의 칼날이 내 심장을 꿰뚫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믿을 수 없었다. 그 검에 담긴 마력은 내 마력핵을 뒤흔들며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나의 마법, 나의 힘, 나의 정신… 모든 것이 동시에 산산조각 났다. 나는 추락했다. 불타는 전장 아래, 심연 속으로.

“반역자 카인! 기원의 심장을 오염시키려 한 대역죄인!”
“그는 마녀의 사주를 받아 성물을 타락시키려 했다!”

엘리안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그는 나를 지목하며 외쳤다. 수많은 병사들의 시선이 경멸과 분노로 뒤틀려 나를 향했다. 내가 지키려 했던 그들에게서 쏟아지는 증오. 나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고, 그들의 발길에 짓밟혔다.

“젠장…!”

억눌렸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묶인 팔을 휘두르자 쇠사슬이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냈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한 정신적 고통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엘리안. 네가 감히 나에게.

“큭큭… 아직 살아 있군, 대역죄인.”

어둠 속에서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옥 문이 열리는 소리, 그리고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희미한 빛이 감옥 안으로 스며들며 덩치 큰 간수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의 손에는 낡은 양초가 들려 있었다.

간수의 얼굴은 혐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내 앞에 멈춰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네놈이 뭘 했는지 잊었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간수는 낄낄거렸다. “네놈의 친구 덕분에, 모두가 네놈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엘리안 단장님은 현명하셨지. 네놈 같은 악마의 주구로부터 기원의 심장을 지켜냈으니 말이야.”

엘리안. 그래, 엘리안.
그 이름이 뇌리에 박히자 잊고 있던 고통이 다시금 심장을 꿰뚫었다.
내가 대역죄인? 내가 성물을 오염시키려 했다고?
내가 모든 것을 바쳐 지켰던 것을?

간수는 내 뺨을 후려쳤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피 맛이 입안에 번졌다.
“멍청한 놈. 곧 네놈의 마력핵은 완전히 붕괴될 거다. 그때가 되면, 그땐 정말 한낱 벌레만도 못하게 되겠지. 네놈을 구해줄 자는 아무도 없어. 모든 자가 네놈을 저주하고 있다. 심지어 네놈이 사랑했던 사람마저도…!”

간수의 조롱 섞인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순간, 또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희미하지만 너무나 따뜻했던 미소. 나를 믿어주던 그녀. 그녀마저도…

“엘리안 단장님은 네놈의 모든 죄를 낱낱이 파헤치셨다. 이 모든 게 네놈의 계획이었다는 걸. 그는 지금 성스러운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지. 네놈 같은 반역자의 자리, 그가 완벽하게 대체했으니 말이야!”

간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낡은 빵 조각과 물 한 컵을 바닥에 던져놓았다. 철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감옥 문이 닫히고, 다시 어둠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빵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물에는 손을 대지도 않았다.
내 안의 모든 것이 멈춰 버린 듯했다. 분노, 슬픔, 배신감… 그 모든 감정들이 거대한 암흑 속으로 침잠했다.
그리고, 그 암흑 속에서 단 하나의 감정만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복수.*

마력핵이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내 몸은 이미 피와 고름으로 범벅되어 썩어가는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대신,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내 안에 죽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다. 내 힘은 빼앗겼지만, 나의 의지는 부서지지 않았다.
이 심연의 나락에서, 나는 엘리안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의 배신으로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명예, 친구, 사랑, 그리고 나의 힘까지.
나는 이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오직 복수만이 남았다.

쇠사슬에 묶인 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나의 눈이 번뜩였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슬픔이나 절망이 없었다. 오직 차갑고 맹렬한 광기만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엘리안.*
*기억해라. 내가 돌아가는 날,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낼 것이다. 네가 내게 했던 것처럼, 그보다 더 처절하게… 파멸시켜주마.*

나의 복수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