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무수한 별들이 죽어간 자리, 그 잿빛 먼지 속에서 성해 제국은 거대한 탐욕의 기계처럼 군림했다. 한때 모든 생명에게 자비로운 빛을 약속했던 제국의 심장은 이제 부패한 강철과 피로 뒤덮여 있었다. 평민들의 삶은 닳아빠진 기계 부품처럼 혹사당했고, 조금이라도 불복종의 기색을 보이면 거대한 금속의 발굽 아래 무참히 짓밟혔다.

그러나 깊은 지하, 제국의 그림자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작고 비루한 불씨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스러져가는 자유의 깃발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녹슨 강철 조각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희망을 빚어냈다.

***

습기 찬 동굴 깊숙한 곳, 지독한 기름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서진은 자신의 기체 ‘강철늑대’의 팔 관절을 조이고 있었다. 삐걱거리는 고철 덩어리들을 이어 붙여 만든 이 늑대는, 제국의 번쩍이는 천룡 기사와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서진에게는 그 어떤 보물보다 값진 존재였다. 그의 가족을 앗아간 제국에 맞설 유일한 무기이자, 살아남은 이들의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다.

“서진, 연료 계통 다시 확인했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지아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이 배어 있었다. 지아는 ‘새벽별’이라 불리는 경량 기체의 조종사이자, 이 작은 반란군 부대의 유일한 장거리 저격수였다. 그녀의 기체는 강철늑대보다 날렵했지만, 그만큼 취약했다.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지아 누님. 오늘 밤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서진은 손목의 스패너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 또한 억지로 침착함을 가장하고 있었다.

대장이 낡은 홀로그램 지도를 펼쳐 들었다. 지도는 제국의 주요 보급로와 오늘 밤 그들이 노리는 목표물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목표는 제국군 7군단 소속의 에너지 코어 수송선. 놈들은 대규모 정찰을 방금 마쳤기 때문에 경계를 늦추고 있을 거야. 물론 그 방심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더 큰 함정이 될 수도 있겠지.”

대장의 얼굴은 검은 수염과 깊은 주름으로 가득했다. 그의 눈빛은 수많은 전투와 상실을 겪어낸 이의 그것이었다.

“코어는 우리 기지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이게 없으면 겨울을 넘기지 못해. 작전은 단순해. 매복, 습격, 코어 확보, 그리고 퇴각. 지아는 엄호 사격으로 적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서진은 강철늑대의 육중함으로 돌파한다. 다른 대원들은 코어 확보와 탈출 경로를 확보한다.”

대장의 시선이 서진과 지아에게 꽂혔다.

“쉽지 않을 거다. 놈들의 수송선에는 최소 두 대의 천룡 기사가 호위 중이다. 아마 이번엔 흑룡 기사단장, 그 개자식도 있을 가능성이 높다.”

흑룡 기사단장. 그 이름에 서진의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제국군 최고의 파일럿으로 악명 높은 자. 수많은 마을을 짓밟고, 수많은 반란군을 학살한 그림자 같은 존재였다. 그의 검은색 천룡 기체는 죽음을 상징했다.

“놈이 있다면, 더더욱 피할 수 없습니다.” 서진의 목소리에 차가운 결의가 깃들었다.

***

성해 제국의 수도 ‘강철성’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 황무지를 가로질러, 세 대의 반란군 기체가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강철늑대는 투박했지만 끈질겼고, 새벽별은 그림자처럼 민첩했다. 그리고 다른 한 대의 ‘황무지 독수리’는 노련한 파일럿이 조종하는 지원용 기체였다.

밤하늘은 제국의 거대 비행선들이 뿜어내는 빛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 아래, 수송로를 따라 거대한 제국군 수송선이 육중한 소음을 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뒤를 두 대의 천룡 기사가 삼엄하게 호위하고 있었고, 예상대로 선두에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검은색 천룡 기사, 흑룡 기사단장의 기체가 서 있었다.

“목표 포착. 예정대로 흑룡 기사단장 저 개자식도 있네요.” 지아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괜찮다. 오히려 잘 된 일이야.” 서진은 심장을 죄는 긴장감 속에서도 이를 악물었다.

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전원, 돌격!”

강철늑대의 엔진이 포효하며 황무지의 먼지를 휘저었다. 서진은 기체의 육중한 팔에 달린 커스텀 레일건을 들어 올렸다. 고철을 엮어 만든 그 무기는,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먼저 지아가 움직였다. 새벽별은 빠른 속도로 돌진하며 적들의 시야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곧이어 두 대의 천룡 기사 중 하나가 새벽별을 향해 강력한 빔 포를 발사했다. 지아는 기민하게 회피하며 동시에 장거리 레이저 라이플로 반격했다. 레이저 광선이 천룡 기사의 어깨 장갑을 스쳐 불꽃을 튀겼다.

“시선 분산 성공! 서진, 지금이야!”

서진은 망설이지 않았다. 강철늑대는 전속력으로 수송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육중한 발굽이 땅을 울릴 때마다 그의 심장도 함께 요동쳤다. 흑룡 기사단장의 기체가 서진을 향해 돌아섰다. 검은색 기체의 눈에 해당하는 센서가 붉게 번뜩였다.

“꼴랑 고철 덩어리 몇 개로 제국에 맞서려 하다니, 가소롭군.” 흑룡 기사단장의 오만하고 냉혹한 목소리가 통신을 뚫고 서진의 귀에 꽂혔다.

“가소로운 건 너희다! 피에 굶주린 기계 주제에!” 서진은 으르렁거렸다.

흑룡 기사단장의 기체가 순식간에 속도를 올리며 강철늑대에게 돌진했다. 초고밀도 에너지 검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서진은 레일건을 발사했지만, 흑룡 기사단장은 마치 춤을 추듯 그 포탄들을 가볍게 피했다. 제국 최고의 파일럿이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쾅!

검은색 에너지 검이 강철늑대의 어깨를 강타했다. 육중한 기체가 휘청거렸고, 제어판에서는 경고음이 울렸다. 서진은 고통을 참고 기체를 돌려 에너지 검을 맞받아쳤다. 강철늑대의 투박한 에너지 검이 흑룡 기사단장의 그것과 부딪히며 엄청난 마찰음을 냈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 틈을 타 다른 대원들이 황무지 독수리의 엄호 아래 수송선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수송선의 측면 패널을 열어젖히고, 귀하디귀한 에너지 코어를 확보하기 위해 내부로 진입했다.

“서진! 버텨! 코어 확보까지 시간 벌어줘!” 지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벽별은 다른 천룡 기사와 격렬하게 교전하며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흑룡 기사단장은 강철늑대의 움직임을 읽는 듯했다. 그는 서진의 모든 공격을 무력화시키며 동시에 치명적인 반격을 가했다. 강철늑대의 왼쪽 팔이 찢겨나가며 파편들이 흩날렸다. 기체 내부의 경고음은 더욱 격렬해졌다.

“이게 네 한계다, 고철!” 흑룡 기사단장이 비웃었다.

서진의 머릿속에는 제국군에 의해 짓밟히던 마을의 모습, 가족들의 비명 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심장이 분노로 타올랐다. 한계? 그딴 건 이미 오래전에 넘어서지 않았던가.

그는 부러진 팔을 억지로 틀어막고, 남은 한 팔로 레일건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움직임으로, 강철늑대의 모든 잔여 에너지를 오른쪽 다리에 집중시켰다. 삐걱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다리 관절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게… 우리의… 희망이다!”

강철늑대는 부러진 날개로 최후의 돌진을 하는 새처럼, 흑룡 기사단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흑룡 기사단장은 서진의 무모한 돌진에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비웃음을 날리며 에너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서진이 노린 것은 그게 아니었다.

강철늑대의 오른다리가 흑룡 기사단장의 기체를 향해 강력하게 걷어차였다. 파괴될 위기에 처한 다리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흑룡 기사단장은 그 단순한 공격에 어이없어하며 가볍게 회피하려 했다. 그러나 서진은 그 순간, 레일건의 모든 잔여 에너지를 방출하며 폭발적인 연사 공격을 퍼부었다.

타다다당!

흑룡 기사단장은 레일건의 무수히 쏟아지는 파편 같은 탄환 세례를 예상치 못했다. 대부분의 탄환은 그의 기체를 비껴갔지만, 마지막 몇 발이 정확히 흑룡 기사단장의 기체 무릎 관절과 센서 부분을 강타했다.

콰앙!

제국 최고의 기체에도 무리가 가는 공격이었다. 흑룡 기사단장의 기체가 비틀거렸다. 통신망에서 짧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검은색 기체의 센서가 잠시 깜빡이더니 다시 붉게 타올랐지만, 움직임은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제길! 감히!” 흑룡 기사단장이 격렬하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 짧은 순간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코어 확보! 후퇴한다!” 대장의 외침이 통신망을 강타했다.

수송선에서 황무지 독수리가 귀하디귀한 에너지 코어를 움켜쥔 채 솟아올랐다. 지아는 마지막 엄호 사격을 성공시키며 다른 천룡 기사의 움직임을 둔화시켰다.

“서진! 어서 와!” 지아의 목소리에 안도와 함께 걱정이 섞여 있었다.

강철늑대는 부러진 팔과 절뚝이는 다리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흑룡 기사단장의 기체가 분노에 찬 포효와 함께 다시 달려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반란군 기체들은 황무지 독수리를 엄호하며 어둠 속으로 빠르게 사라져 갔다.

***

기지로 귀환한 강철늑대는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조종석에서 내린 서진의 온몸은 땀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처럼 빛나고 있었다.

중앙 동굴에 놓인 거대한 에너지 코어는 밤하늘의 별처럼 영롱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기지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을, 희망의 빛이었다.

“성공했다… 정말 성공했어!” 한 대원의 외침에 모두가 환호성을 터뜨렸다.

대장은 상처 입은 서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덕분이다, 서진. 놈들의 심장에 제대로 못을 박았어.”

서진은 코어의 푸른빛을 응시했다. 그는 오늘 밤, 자신의 고철 늑대가 거대한 제국의 심장에 아주 작은 균열을 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균열은 아직 미미했지만, 언젠가 거대한 제국을 무너뜨릴 균열로 확장될 것이었다.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대장님.” 서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지친 기색과 함께 새로운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성해 제국은 여전히 거대하고 부패했으며, 그들의 앞에는 수많은 시련이 놓여 있을 터였다. 그러나 오늘 밤, 잿빛 새벽 아래에서 반란군은 자신들의 강철 심장이 여전히 뜨겁게 뛰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들의 불꽃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