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둠은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우주선 ‘아라크네’ 호는 심연을 가로지르는 거미와 같았다. 수십 년 항해 끝에 도달한 미지의 성계는 검은 벨벳 위에 박힌 다이아몬드처럼 차갑게 빛났다. 인류가 발을 디딘 적 없는 미지의 영역, 그곳이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다.

선장 김민준은 함교의 주 조종석에 앉아 무한한 어둠 속을 응시했다. 길고 고된 탐사 임무였다. 승무원들은 지쳐 있었지만, 동시에 인류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 앞에서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이 ‘탐험가’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함장님, 뭔가 감지됩니다.” 부선장 이수진의 차분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녀의 홀로그램 콘솔에 미약한 붉은 점이 깜빡였다. “특이 에너지 서명입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민준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자세한 분석.”

“신호는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기계적인 것은 아닙니다. 생체 반응도 없고요. 마치… 멈춰버린 심장 같습니다.” 수진은 좀처럼 보기 드물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통신 채널이 열렸다. 수석 과학자 박지훈 박사의 목소리에는 참을 수 없는 흥분이 실려 있었다. 그의 억양은 평소의 차분함을 잃고 들떠 있었다. “함장님, 이 신호는 인류 문명권 밖의 것입니다! 우주 역사상 유례없는 발견이 될 겁니다! 제발, 탐사를 허가해 주십시오!”

민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직감은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지만, 그의 임무는 미지의 탐사였다. “선회. 신호 발생원으로 이동.”

얼마 후, 스크린에 거대한 암석 덩어리가 나타났다. 단순한 소행성이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검고 매끄러운 구조물이 박혀 있었다. 마치 우주 자체에서 조각된 듯, 완벽한 육각형의 기둥이 수십 개 얽혀 하나의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었다. 빛을 흡수하는 재질은 주변의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했다. 그것은 묵묵히, 그러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아라크네 호를 응시하는 듯했다.

***

탐사선에 탑승한 팀은 네 명이었다. 선장 김민준, 부선장 이수진, 수석 과학자 박지훈, 그리고 보안팀장 최영호.

탐사선 내부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최영호는 묵뚝뚝한 얼굴로 레이저 소총을 꽉 쥐고 있었다. 그의 눈은 구조물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함장님, 이런 미지 물질에 너무 가까이 가는 건 위험합니다. 혹시 모를 오염이나 위협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지평을 넓힐 기회야, 최 팀장.” 박지훈이 눈을 빛냈다.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광적인 호기심이 떠올랐다. “감히 이걸 위험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까? 이건 우주의 심연에서 온 메시지입니다!”

구조물에 다가가자, 탐사선 내부의 센서가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미약하지만 끊임없는 진동이 전해져왔다.

“이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수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생명 반응은 없습니다. 마치… 거대한 돌연변이 유기체처럼 느껴져요.”

박지훈은 이미 탐사선 외부로 나가 육각형 기둥 중 하나에 손을 뻗으려 하고 있었다. 그의 장갑 낀 손이 검은 표면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박 박사! 멈춰!” 민준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지훈의 손가락이 검은 표면에 닿았다.

그 순간, 구조물 전체가 희미하게 빛났다. 맥박처럼, 느리고 규칙적인 파장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 민준은 순간적인 현기증을 느꼈다. 지훈은 손을 떼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몽롱했고, 알 수 없는 매혹에 사로잡힌 듯했다. 그의 입가에는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아라크네 호로 귀환한 후, 박지훈은 연구실에 틀어박혔다. 그는 마치 약물에 중독된 사람처럼 구조물에서 가져온 샘플에 미쳐있었다. 잠도 자지 않고, 먹지도 않은 채 밤낮으로 샘플을 들여다봤다.

며칠 후, 승무원들 사이에 기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악몽, 환청, 그리고 일부는 극심한 피로와 편집증을 호소했다. 함선 내부에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함장님, 3번 격납고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수진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보조 과학자 정우진 씨가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현재 자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민준이 최영호 팀장과 함께 달려갔을 때, 정우진은 이미 변해있었다.

그의 피부는 창백하게 들떴고,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팽창한 검푸른 핏줄이 목과 팔을 따라 꿈틀거렸다. 그는 마치 광견병에 걸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저리 가! 저리 가! 저 소리가 들려! 온몸이 타는 것 같아!” 그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가장 가까이 있던 동료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롭게 변한 손톱이 동료의 얼굴을 찢었다. 찢어진 살점 사이로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동료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정우진은 쓰러진 동료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격납고에 울려 퍼졌다.

***

“이건… 감염입니다!” 영호가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사살 허가 부탁드립니다, 함장님!”

민준은 망설였다. 하지만 우진의 눈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사냥꾼의 굶주린 눈빛, 오직 파괴만을 갈구하는 짐승의 눈빛이었다.

“사살.”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영호의 레이저 소총에서 녹색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우진은 비틀거리며 쓰러졌지만,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채로도 동료의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살과 뼈를 씹어 삼키는 끔찍한 소리가 이어졌다.

곧, 우진에게 물린 동료도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핏빛으로 물들고, 끔찍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그의 목구멍에서 터져 나왔다.

격납고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비명과 총성, 그리고 이제는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포효가 뒤섞였다. 감염은 놀라운 속도로 퍼졌다. 물거나 긁히는 것만으로도 전파되었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그들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혹은 그 알 수 없는 유물의 영향력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민준은 함교로 돌아왔지만, 상황은 이미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통신망에는 절규와 함께 ‘감염자다!’, ‘문을 막아!’, ‘도망쳐!’ 같은 단편적인 외침만 흘러나왔다. 곧이어 통신은 끊어졌다.

함선 내부는 마치 살아있는 지옥 같았다.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복도 곳곳에서 짐승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박지훈 박사는요?” 민준이 물었다.

“아직 연구실에 있습니다. 격리 구역 폐쇄 명령에도 응답이 없습니다.” 수진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마… 이미 감염되었을 겁니다.”

지훈은 지금도 그 알 수 없는 유물을 붙들고 있을 터였다. 그는 이미 감염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유물의 속삭임에 매료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모든 광기의 시작은 그의 손길에서 비롯되었다.

***

“이건 유물이 시작점이야.” 민준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빌어먹을 조각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어. 저 외계 유물을 파괴해야 해.”

“함장님, 통제 불능입니다!” 최영호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통신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피로와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이미 선원 70%가 감염됐습니다. 보안팀도 거의 전멸입니다. 남은 인원도 버틸 수 없을 겁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민준의 눈에 고통과 결단이 서렸다. “유물을 함선 밖으로 내보내야 해. 아니면… 이 함선 전체를 자폭시켜야 한다.”

“하지만…” 수진이 말을 잇지 못했다. 수많은 동료들의 희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인류를 위해서다. 이 광기가 지구까지 가서는 안 돼.” 민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전 인류를 위해, 여기서 막아야 한다.”

엔지니어 정미라가 필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유물이 있는 격리실의 외부 해치를 작동시킬 수 있도록 코드를 재설정해야 합니다. 보안이 너무 강력해서 원격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때, 통신 채널에 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는 인간적인 떨림 대신 차갑고 섬뜩한 기계음 같은 울림이 섞여 있었다.

“어리석은 자들. 너희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진화다. 새로운 생명. 너희의 나약한 육체를 버리고 영원한 존재로 거듭나는 길이다!”

연구실 문이 ‘쾅’하고 열렸다. 박지훈은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의 몸은 검은 유물과 같은 기괴한 무늬로 뒤덮여 있었고, 눈은 빛을 잃은 채 광기에 번뜩였다. 그는 한 손에 유물의 파편을 쥐고 있었다. 유물의 파편은 그의 손과 하나가 된 듯 맥동하고 있었다.

“가지 마라! 이것은 나의 것! 우리의 미래다!”

그는 달려들었다.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짐승의 움직임. 그의 속도는 경이로웠다.

영호가 그의 길을 막아섰다. 그의 얼굴은 피투성이였지만, 결의에 차 있었다. “함장님, 어서 가세요! 시간을 벌겠습니다!”

총성이 울리고 레이저가 번뜩였다. 영호는 쓰러지는 순간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박지훈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였다. 그는 영호의 몸을 마치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민준과 수진, 미라는 필사적으로 함교로 향했다. 복도에는 감염자들이 득실거렸다. 그들은 마치 유물의 지휘를 받는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눈은 민준 일행을 향해 불타고 있었다.

***

“미라, 메인 코어 과부하! 자폭 시퀀스 입력!” 민준이 소리쳤다. “수진, 탈출 포드 수리 상태 확인! 마지막까지 희망을 놓지 마!”

“함장님, 자폭 시퀀스 입력 완료! 10분 남았습니다!” 미라가 절규했다. 그녀의 손은 피투성이였지만, 키보드를 놓지 않았다.

그때, 함교의 두꺼운 문이 굉음과 함께 부서졌다. 감염자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왔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민준에게 향해 있었다. 마치 그들이 그의 존재를 노리고 찾아온 것처럼.

“아라크네, 임무 실패.” 민준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우주선 창밖의 무한한 어둠 속으로 향했다. “하지만 인류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주 조종석의 레버를 당겼다. 함선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때, 통신 채널에 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하지만 분명한 희망이 섞인 목소리였다. “함장님! 탈출 포드 하나… 간신히 수리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작아요. 두 명밖에 탈 수 없습니다!”

“수진, 미라. 어서 도망쳐. 이건 명령이다.” 민준은 애써 미소 지었다. 그의 얼굴에는 체념과 함께 알 수 없는 평온함이 떠올랐다. “별들을 보며 살아남아.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이 우주의 공포를.”

탈출 포드가 아라크네 호에서 분리되는 것을 민준은 스크린으로 확인했다. 작은 점이 되어 멀어져 가는 탈출 포드.

그리고 그의 눈앞에, 유물의 영향을 받은 박지훈이 나타났다. 그의 몸은 이제 거의 유물 자체와 동화된 듯 보였다. 검은 기둥의 무늬가 그의 피부에 새겨져 있었고, 그의 눈은 깊은 우주의 심연처럼 공허했다.

“너는… 영원히… 이것과 함께…” 지훈은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의 손에 쥐여 있던 유물 파편이 맥동했다.

민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와 함께, 이 어둠 속으로 가라.” 그는 유물의 파편을 든 지훈의 손목을 잡았다. 유물의 차가운 감촉이 그의 손에 전해졌다.

거대한 아라크네 호는 빛을 잃어가며, 우주의 심연 속으로 천천히 침몰했다.

마지막 순간, 메인 코어의 에너지가 폭발했다.

아라크네 호는 거대한 섬광과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그 빛은 한순간 어둠을 밝히고, 이내 사라졌다.

탈출 포드는 빛의 속도로 멀어져 갔다. 그 안에서 수진과 미라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시야에는 오직 무한한 어둠과,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이 우주에는, 인류의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가 존재하며, 그 공포는 언제든 다시 심연 속에서 메아리쳐 올 수 있다는 것을.

그 작은 탈출 포드만이, 인류의 존재를 알리는 희미한 빛처럼, 미지의 어둠 속을 표류했다. 그들의 침묵은, 영원히 계속될 우주의 비밀과 공포에 대한 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