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어느 날, 균열

휴대폰 화면에 뜬 오전 7시 30분이라는 숫자는 언제 봐도 짜증을 유발했다. 알람을 끄고 뒤척이는 대신, 현우는 습관처럼 팔을 뻗어 침대 옆 협탁 위의 작은 돌멩이를 만졌다. 어젯밤 잠결에 떨어진 것 같았다. 닳고 닳은 검은색 돌. 매끄러운 조약돌 형태였지만, 손에 쥐면 묘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신기했다. 이게 언제부터 내 방에 있었더라? 기억조차 나지 않는 녀석이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내 책상 위에 놓여있었고, 왠지 모르게 버릴 수가 없었다.

손가락 끝으로 돌멩이의 차가운 표면을 쓸어내리는 순간, 섬광이 터졌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이명이 귓속을 때렸다. 쨍한 빛과 함께 온 세상이 굉음을 내며 갈라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몸이 안쪽부터 뜯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현우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세상이 통째로 뒤집혔다. 중력이 사라지고, 시공간이 뒤틀리는 아찔한 감각. 그의 의식은 한계까지 내몰렸고, 마침내 암전. 모든 것이 허무하게 사라졌다.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코끝을 찌르는 흙과 피 비린내였다.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쿰쿰한 냄새는 습기와 뒤섞여 역한 기운을 풍겼다. 딱딱한 흙바닥이 몸을 짓눌렀고,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오한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여기가… 어디지?’

간신히 상체를 일으키자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온통 나무와 돌로 지어진 허름한 오두막, 천장 한가운데 뚫린 구멍으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난방 시설이라기보다는 그저 연통 없는 아궁이 같았다. 벽에는 알 수 없는 주술적인 문양들이 거칠게 새겨져 있었고, 바닥에는 낡은 가죽 조각들이 깔려 있었다. 창문 너머로는 희미한 햇빛이 쏟아졌지만, 바깥은 온통 잿빛이었다. 나무들은 앙상했고,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은 검고 거칠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만졌다. 뺨에 거칠게 붙어있는 딱지와 엉겨 붙은 머리카락. 내 손은 왜 이렇게 거칠고 굳은살이 박여 있지? 손바닥은 굳은살로 뒤덮여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디는 굵고 투박했다. 몸을 내려다보니 찢어지고 해진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거친 삼베 같은 재질의 옷은 땀과 흙으로 얼룩져 있었다. 팔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고, 다리 곳곳에는 채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즐비했다. 거울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이 몸은 분명 내 것이 아니었다.

그때였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오두막 문이 열렸다. 어둠 속에서 들어선 것은 두 명의 그림자였다. 한 명은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이었다. 둘 다 앙상한 몰골에 핏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년은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현우를 보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깨어나셨군요, 청년.” 노인의 목소리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푸석하고 갈라져 있었다.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듯 깊은 주름이 패인 얼굴에 눈빛만이 희미하게 빛났다. “정신이 드시오?”

현우는 목이 쉬어 갈라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여기가… 어디죠? 당신들은… 누구세요?”

소년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노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노인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현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고된 삶의 흔적이 묻어나는 듯했다.

“여긴 새벽골이네. 아르카디아 제국의 서쪽 끝, 폐광촌이지. 자네는 일주일 전, 제국군에 쫓기다 기절한 채로 우리 마을 사람들이 발견했네.”

아르카디아 제국? 폐광촌? 현우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제국군? 이게 무슨 소리야? 꿈인가?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는 방금까지 21세기 서울의 아파트에서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는데.

노인은 현우의 멍한 표정을 보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이 일주일 동안 사경을 헤맸어. 겨우 숨만 붙어 있었지. 굶주림과 채찍질에 시달린 몸은 아니었지만, 무슨 영문인지 기억을 잃은 듯했네.”

채찍질? 굶주림? 현우는 노인의 말에서 섬뜩한 현실을 깨달았다. 이곳은 그가 알던 세상이 아니었다. 시간 이동, 타임슬립? 믿을 수 없었지만, 주변의 모든 것이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이 낡고 거친 풍경, 이들의 앙상한 몰골, 그리고 노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참한 이야기까지.

“이곳은 제국의 강철 같은 손아귀에 짓눌린 곳이라네. 해가 뜨면 광산으로 가서 금속을 캐야 하고, 해가 지면 겨우 죽지 않을 만큼의 양식만 받지. 역병과 굶주림이 일상이고, 조금이라도 불복종하면 채찍이 날아오지.”

노인의 시선은 바닥을 향했다. 소년은 여전히 노인의 옷자락을 놓지 않고 있었다. 앙상한 손목과 움푹 들어간 눈가, 그리고 옷 속에 가려진 듯 보이는 작은 몸뚱이. 저게 바로 이 세상의 평범한 아이들의 모습이란 말인가? 현우는 문득 자신의 휴대폰으로 보던 뉴스 속 전쟁 난민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이 겪던 고통이 바로 이곳의 일상이었다.

현우는 소년의 얼굴에서, 그리고 노인의 깊게 패인 주름에서 헤아릴 수 없는 절망을 읽었다. 그리고 그 절망 속에서도 희미하게 타오르는 불꽃 같은 것을 보았다. 두려움에 질려 있었지만, 결코 꺾이지 않은 생명력.

“하지만, 어르신.” 현우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 갈라졌지만, 단단한 심지가 느껴졌다. “계속 이렇게 당하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노인은 현우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 안에는 오랜 세월 억눌려온 고통과 함께, 잊고 있던 작은 희망의 불씨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잿빛으로 물들었던 노인의 눈동자에 미미한 빛이 일렁였다.

소년이 노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작은 눈동자에는 현우를 향한 경계심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마치 오랜 가뭄 끝에 처음 솟아난 샘물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거대한 아르카디아 제국에 맞서 싸우는 평민들의 반란. 그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그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이 거대한 비극의 파편 속에 던져진 이방인이자, 어쩌면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