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2화: 메마른 목구멍
목구멍이 사막처럼 타들어 갔다. 삐걱이는 폐가 온몸의 수분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려는 듯 아우성쳤다. 회색빛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대지 위에서, 내 등 뒤의 낡은 배낭은 텅 빈 지 오래였다. 그나마 남아있던 한 병의 물은 이틀 전, 갑자기 튀어나온 ‘모래 지렁이’ 녀석을 피해 달리다 바위 틈에 부딪혀 깨져버렸다. 그때 갈증보다 더 절망적이었던 건, 그 녀석의 끈적한 체액이 내 유일한 정화 필터를 오염시켜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남은 건 이 메마른 몸뚱이와, 언제나처럼 무자비한 이 세계뿐이었다.
무너진 고층 건물의 잔해가 하늘을 찌르던 도시 외곽, 이름 모를 거리를 걷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걷는다기보다는 비틀거리며 내던져진 몸뚱이를 간신히 끌고 가는 것에 가까웠다. 부스러진 콘크리트 파편과 삭아버린 철근 더미 사이에서, 나는 한 줄기 희망을 찾아 헤매는 미친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으읍…”
가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목이 칼칼했다.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는 느낌은 이제 너무나 익숙해서, 오히려 이 감각이 사라지면 내가 제대로 숨 쉬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것 같았다. 저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파괴된 고리’는 여전히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과거에는 도시의 심장이자 자랑이었을 그 거대한 원형 구조물은, 이제는 그저 망가진 문명을 조롱하듯 서 있는 거대한 무덤처럼 느껴졌다. 저 안에는 분명 뭔가 남아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로 몇 번이나 기웃거렸지만, 그때마다 괴물들의 먹이가 될 뻔한 기억만 선명했다.
손에 든 몽둥이를 지팡이 삼아 땅을 짚었다. 원래는 건물의 철근 조각이었지만, 적당한 무게감과 끝이 뭉툭하게 구부러진 덕분에 여러모로 쓸모가 있었다. 물론 날카로운 칼날이나 총기 같은 전문적인 무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 세계에서 그런 걸 찾는 건 복권 당첨보다 어려웠다. 아니, 어쩌면 복권 당첨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과거의 나는 로또 한 장에도 일희일비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으니까.
‘물… 물… 단 한 모금이라도…’
그때였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온통 회색빛과 갈색빛으로 물든 풍경 속에서 유일하게 초록빛을 띠고 있는 무언가였다. 한때 커다란 은행이었을 법한 건물의 지하 입구. 간판은 부서지고 글자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그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푸른빛과 함께, 마치 덩굴처럼 늘어져 있는 이끼 낀 식물들이 보였다.
“뭐… 뭐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갈증 때문에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둔감해진 감각이었지만, 그 푸른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이 세계에서 초록빛 식물은 보기 드물었다. 대부분의 식물은 변형되거나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저것이 혹시… 식용 가능한 식물이라면? 아니면, 저 아래에 물이 고여있는 곳이라도 있다면?
희미한 희망이 절망의 잿빛 안개를 뚫고 비집고 나왔다. 몸이 저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아까보다 훨씬 빨라졌다. 몽둥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되는 ‘희망’은 대부분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무너진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콘크리트 조각들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빛은 사라지고 어둠이 짙어졌다. 하지만 푸른빛은 더욱 선명해졌다. 마침내 계단이 끝나는 지점, 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천장이 일부 무너져 내린 넓은 공간의 한가운데, 거대한 기둥에 푸른 이끼가 덮여 자라고 있었다. 그 이끼는 바닥까지 이어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이끼 사이사이로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작은 파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른바 ‘푸른 달꽃’이라고 불리는, 밤에만 빛을 내는 희귀한 식물이었다. 이 꽃은 독성이 없었지만, 주변의 수분을 급격히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보통 다른 식물들이 자랄 수 없는 메마른 곳에서 홀로 발견되곤 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푸른 달꽃 주변으로, 놀랍게도 맑은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가 있었다. 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이었다.
“물…!”
내 입에서 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망설일 틈도 없이 웅덩이로 달려갔다. 몽둥이는 이미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다. 무릎을 꿇고 웅덩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차가운 물이 내 얼굴을 스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상쾌한 감각에 온몸의 세포들이 환호하는 것 같았다.
꿀꺽, 꿀꺽.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물을 들이켰다. 달콤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생명의 감로수였다. 텅 비었던 오장육부가 채워지는 듯한 느낌, 메말랐던 온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듯한 충만함. 정신없이 물을 마시고 마셨다.
“흐읍… 크으…”
그렇게 얼마나 마셨을까. 배가 불러올 때쯤,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촤악!*
등 뒤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물을 마시느라 완전히 풀려버린 경계심이 한순간에 곤두섰다.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였다. 마치 주변의 암석과 완전히 동화된 듯한 회색빛 몸뚱이. 어둠 속에 숨어있었는지, 물을 마시는 동안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커다란 두 눈이 섬뜩한 노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그리고 등에는 삐죽삐죽 튀어나온 뼈 조각들이 박혀 있었다. 거대한 도마뱀을 닮았지만, 훨씬 더 흉측하고 기괴했다. 저것은 ‘돌가시 도마뱀’이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험한 포식자 중 하나. 보통 이런 지하 공간에 홀로 서식하며 먹잇감을 기다린다.
내가 너무나 쉽게 물을 발견했던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이곳은 녀석의 사냥터였던 것이다.
“크르르르…”
녀석의 목구멍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침묵을 깨는 그르렁거림에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몽둥이는 몇 미터 떨어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녀석의 노란 눈동자가 나를 훑었다. 마치 먹이를 스캔하는 듯한 섬뜩한 시선이었다. 피할 틈도 없이 녀석이 앞발을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발톱이 번개처럼 허공을 갈랐다.
*쉬이익!*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날카로운 발톱이 내가 방금까지 서 있던 곳을 깊게 할퀴었다. 콘크리트 바닥에서 불꽃이 튀었다. 심장이 귀청이 찢어질 듯 뛰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젠장…!”
나는 서둘러 몽둥이를 향해 기어갔다. 녀석이 다시 한번 공격 자세를 취했다. 기어서는 닿을 수 없을 거리였다. 발악하듯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방금 마신 물은 에너지가 아니라 독이었던가? 내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달콤한 독.
*쿠웅!*
녀석이 내는 발소리가 지하 공간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젠 도망칠 곳도 없었다. 뒤는 거대한 기둥, 앞은 괴물. 그리고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녀석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온몸을 바닥에 붙여 낮게, 더 빠르게. 육중한 몸뚱이가 순식간에 내 앞까지 도달했다.
‘끝인가…’
과거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범했던 일상, 지루했던 회사, 따뜻한 침대… 이 모든 것이 단 한순간에 사라진 지 벌써 얼마나 되었더라? 이젠 죽음조차 익숙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휘익!*
녀석의 입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드러났다. 역겨운 입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기둥… 푸른 달꽃…!’
나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내, 녀석이 달려드는 틈을 타 옆으로 몸을 던졌다. 녀석의 날카로운 이빨이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살점이 찢기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살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워 기둥 뒤로 숨었다. 녀석의 시야에서 벗어나자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녀석은 거대한 몸으로 기둥 주변을 맴돌며 나를 찾았다.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녀석의 움직임을 읽었다. 몸을 최대한 낮추고, 기둥을 빙글빙글 돌면서 녀석과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기둥에 달라붙어 있던 푸른 달꽃의 줄기를 잡아 뜯었다. 녀석이 다시 기둥을 박차고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콰아앙!*
녀석의 거대한 꼬리가 기둥에 부딪혔다. 묵직한 충격과 함께 콘크리트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기둥은 더 이상 안전한 피신처가 아니었다. 녀석이 고개를 들이밀며 나를 노려봤다.
“이 빌어먹을…”
나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손에 든 푸른 달꽃 줄기를 녀석의 눈에 겨눴다. 독성은 없지만, 이 세계의 괴물들은 대부분 빛에 약하다. 특히 이런 지하에 사는 녀석이라면 더욱 그럴 터.
녀석이 다시 돌진하는 순간, 나는 몸을 숙여 녀석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녀석의 육중한 몸뚱이가 내 위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그대로 녀석의 뒤편으로 달려 나갔다. 녀석은 내가 사라진 줄 알고 잠시 멈칫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다시 몽둥이가 떨어진 곳으로 질주했다. 손가락 끝에 몽둥이가 닿는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그걸 움켜쥐었다. 묵직한 철근의 감촉이 절망 속에 한 줄기 희망을 선사하는 듯했다.
“자, 이제 다시 해보자… 빌어먹을 도마뱀 녀석아!”
내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그 속에는 이전과는 다른 독기가 서려 있었다. 녀석은 다시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노란 눈동자가 이번에는 분노로 이글거렸다.
나는 몽둥이를 바닥에 끌며 녀석을 노려봤다. 녀석의 발소리가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다. 다시 한번 녀석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가 먼저 움직였다.
녀석의 육중한 몸뚱이가 내게 닿기 직전, 나는 옆으로 비켜서며 몽둥이를 휘둘렀다. 녀석의 옆구리, 뼈 조각이 튀어나온 약한 부분을 노렸다.
*콰악!*
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녀석의 비명이 지하 공간에 울려 퍼졌다. 녀석의 몸이 비틀거렸다. 옆구리에서 검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녀석의 노란 눈동자에 혼란이 서렸다.
한 방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다시 몽둥이를 휘둘렀다. 녀석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꼬리를 휘둘렀지만, 나는 이미 녀석의 움직임을 읽고 피했다.
두 번, 세 번… 몽둥이는 녀석의 몸에 계속해서 상처를 입혔다. 녀석은 분노와 고통에 미쳐 날뛰었다. 하지만 좁은 지하 공간에서 거대한 몸으로 제대로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침내 녀석이 바닥에 쓰러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녀석의 눈은 여전히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숨통을 끊기 위해 몽둥이를 다시 들어 올렸다.
*퍽! 퍽! 퍽!*
피 튀기는 소리와 함께 녀석의 움직임이 멈췄다. 더 이상 노란 눈동자에는 아무런 빛도 담겨 있지 않았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주저앉았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팔다리가 천근만근 무거웠다. 하지만 살았다. 또 한 번,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다시 바라봤다. 아까는 생명수처럼 보였던 그 물이 이제는 녀석의 피로 인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게다가 녀석의 시체는 물웅덩이 바로 옆에 쓰러져 있었다. 물이 오염될 터였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이 세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녀석의 시체를 끌어내야 했다. 귀찮았지만, 이 또한 생존을 위한 일이었다.
녀석의 시체는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낑낑대며 시체를 웅덩이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어냈다. 그제야 웅덩이의 물은 다시 맑게 빛났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온 건 물이 아니었다. 녀석이 쓰러졌던 곳, 그 밑에 숨겨져 있던 균열이었다. 주변의 콘크리트가 무너지면서 생긴 균열 같았다. 그리고 그 균열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게, 사람의 목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 듯했다.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환청인가? 아니, 분명히 들렸다. 그것도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나는 얼어붙었다. 이 황폐해진 세계에서, 사람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귀한 것이었다. 동료를 만난다는 건 생존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여줄 수 있는 일. 하지만 동시에, 가장 위험한 함정일 수도 있었다.
균열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한 걸까? 아니면, 그저 그들의 세계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몽둥이를 다시 움켜쥐었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목마름은 해결되었지만, 이제 새로운 갈증이 밀려왔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갈증. 그리고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경계심.
나는 균열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들…
그들이 누구든, 이 만남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내 생존기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었다.
“하아… 정말이지… 단 한 순간도 편히 쉴 수가 없군.”
나는 옅게 한숨을 쉬며 그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 속으로… 미지의 세계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