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도라 마법학원의 첨탑은 언제나 하늘을 찔렀다. 맑은 에테르가 춤추는 듯한 마나 장막 아래, 고결한 학문의 전당은 은은한 광채를 뿜어냈다. 이곳은 대륙 최고의 수재들이 모여 마법의 정수를 탐구하는 곳. 진혁에게도 이곳은 꿈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 완벽한 환상에 미묘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진혁아, 너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아.”
소민이 걱정스레 눈을 마주쳤다. 그녀는 날카로운 지성과 고요한 통찰력을 가진 친구였다. 진혁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요 며칠 계속 땅이 울리는 것 같아서. 너도 못 느꼈어? 미약하지만, 규칙적인 진동이….”
“아, 그거? 나도 신경 쓰고 있었어. 처음엔 지하수로 공사 때문인가 했는데….”
소민은 말을 흐리며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녀의 표정에는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것이 서려 있었다. 진혁은 그런 소민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를 쫓는 사냥꾼의 그것과 같았다.
“뭘 더 알아낸 거라도 있어?” 진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소민은 주위를 쓱 둘러본 뒤,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도서관의 고문서 구역에서, 특정 시대의 자료들이 통째로 사라진 걸 발견했어. 마나 회로 관련 기록들인데, 모두 ‘아르카눔’이라는 고대 언어로 쓰여 있더군.”
“아르카눔? 그거 금지된 언어 아니야? 상위 고대 마법학에서나 잠깐 다루는….”
“그래, 그게 요점이야. 그리고 그 사라진 문서들에서 인용한 일부 내용들이 공교롭게도 우리 학원의 지하 설계도와 연관되어 있었어.”
진혁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학원의 지하에는 일반 학생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제7구역’이 존재했다. 공식적으로는 마나 저장고와 핵심 마나 회로가 있는 곳이라고 했지만, 주변 경비는 최정예 정령 기사단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소민아, 설마….”
“아니, 아직 확실한 건 없어. 하지만 이 진동, 사라진 문서, 그리고 지나칠 정도로 삼엄한 제7구역의 경비. 뭔가 숨겨져 있어. 그것도 아주 중요한 게.”
그날 이후, 소민은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진혁은 불안했다. 그녀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었고, 그 호기심이 때로는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곤 했다. 며칠 뒤, 예상했던 일이 터졌다.
소민이 사라졌다.
그녀의 방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고, 학원은 그녀가 외부 활동을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진혁은 알았다. 소민은 절대 그런 식으로 떠날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책상 서랍 안쪽, 숨겨진 틈새에서 조그만 양피지 조각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익숙한 소민의 필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진동의 근원, 제7구역 지하 3층. ‘침묵의 전당’에서…。」*
진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소민이 위험하다면, 기꺼이 그 위험 속으로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었다.
제7구역 입구는 견고한 마력 방벽으로 막혀 있었다. 평소라면 접근조차 불가능했겠지만, 소민이 남긴 작은 단서와 그가 가진 ‘그림자 이동’ 마법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 수 있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듯 진혁은 방벽을 통과했다.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깊고 어두웠다. 공기마저 마나의 압력에 짓눌린 듯 무거웠다.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자, 마침내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진혁은 숨을 들이켰다. 이곳은 학원의 지하가 아니었다. 거대한 동굴과 같은 공간은 인공적으로 파낸 듯했고, 웅장한 아치형 천장에는 고대 마법 문양이 음각되어 섬뜩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것들이 있었다.
**강철 거신들.**
길이만 수십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금속 구조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단순한 기계라기보다는, 마치 고대 신화 속 거대한 짐승들이 강철 갑옷을 입고 석화된 듯한 모습이었다. 흉갑에는 복잡한 마나 회로가 얽혀 있었고, 관절마다 고대 룬 문자가 섬뜩하게 빛을 발했다. 그들의 등 뒤로는 굵은 마나 도관들이 뻗어 나와 천장의 마나 회로망과 연결되어 있었다. 학원 전체에 흐르는 풍부한 마나의 원천이 바로 이것들이란 말인가?
진혁은 경외감과 함께 공포를 느꼈다. 마법과 공학의 기괴한 융합.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 거신들에는 조종석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서 있을 뿐인데도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다.
발소리를 죽이며 거신들의 그림자 사이를 이동했다. 그때, 그는 한 거신의 심장부에서 미세하게 새어 나오는 빛을 발견했다. 다가갈수록, 그 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동시에 낮게 울리는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가 진혁의 귓전을 때렸다.
“이건… 대체….”
가까이 다가가자, 그 거신의 흉갑 깊숙한 곳에 투명한 수정 감옥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진혁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 안에는 고위 정령이 갇혀 있었다. 순수한 마나 결정으로 이루어진, 본래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존재여야 할 정령. 하지만 지금은 그 존재가 고통으로 일그러진 채, 얇은 마나 도관에 연결되어 있었다. 수정 감옥 안에서 정령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아름다운 마나 빛은 생기 없이 깜빡이며 흡수되고 있었다.
학원이 마나를 추출하는 방식은 이토록 잔혹한 것이었나?
진혁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저 거대한 강철 거신들 하나하나가 이렇듯 희생된 마법 생명체의 고통 위에서 가동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감옥 안에는 이제 막 태어난 듯한 어린 비룡의 혼백이, 또 다른 곳에는 전설 속 실프의 존재가 갇혀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누구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진혁은 재빨리 몸을 숨겼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교수복을 입은 자들이 홀연히 나타났다. 그중 한 명은 진혁이 존경했던 ‘아르카디아’ 교수였다. 그의 얼굴에는 온화함 대신 냉혹한 광기만이 서려 있었다.
“어리석은 아이가… 여기까지 기어들어 올 줄이야.” 아르카디아 교수가 싸늘하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이미 진혁의 은신 마법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진혁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교수들은 각자 손에 강력한 마법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진혁은 이길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저 깊은 곳, 가장 크고 웅장한 강철 거신의 심장부에서 빛나는 또 다른 감옥.
그리고 그 안에, 핏기 없는 얼굴의 소민이 갇혀 있었다. 그녀의 몸은 가는 마나 도관에 연결되어 있었고, 생체 마나가 흡수당하는 중이었다. 살아는 있었지만, 의식은 없는 듯했다.
“소민아!” 진혁의 입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아르카디아 교수가 비웃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콰광!**
진혁이 숨어 있던 바위가 산산조각 났다. 그는 마법 방벽을 세워 간신히 몸을 보호했지만, 충격파에 밀려 멀리 날아갔다.
“건방진 아이! 네 호기심이 너의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겠지.”
교수들의 주문이 쏟아져 내렸다. 진혁은 필사적으로 ‘그림자 이동’을 반복하며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강했다. 탈출해야 했다. 이 끔찍한 진실을 밖으로 알려야 했다.
그때, 소민이 갇혀 있던 강철 거신이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거대한 눈동자처럼 생긴 마나 코어가 붉게 번뜩였다. 소민의 몸에서 추출되던 마나가 마치 과부하를 일으킨 듯 폭주하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
거신 전체에 전류가 흐르듯 섬광이 번뜩였다. 교수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제어 회로에 이상이 생겼다! 마나 역류인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진혁은 자신의 모든 마력을 끌어모아 강력한 ‘혼돈의 섬광’을 발사했다. 교수들을 직접 노린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표는 가장 가까이 있던 마나 도관이었다.
**파자자자작!**
도관이 폭발하듯 파열하며, 억압당하던 마나가 일시적으로 분출되었다. 그 여파로 제어 시스템에 더욱 큰 혼란이 일어났다. 소민이 갇힌 거신의 흉갑이 마치 심장처럼 격렬하게 박동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신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육중한 강철 관절이 마찰음을 내며 움직였다. 교수들은 혼비백산하여 소리쳤다.
“멈춰! 제어 시스템을 복구해!”
하지만 이미 늦었다. 거신은 진혁의 눈앞에서 거대한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 팔에서는 압도적인 마나 에너지가 휘몰아쳤다. 거신은 더 이상 학원의 노예가 아니었다. 갇힌 소민의 무의식적인 마나 폭주와 도관 파열이 엉켜, 잠시나마 봉인된 존재의 힘을 해방시킨 것이다.
거신은 학원 교수들에게 분노한 포효를 내질렀다. 진혁은 그 틈을 타 다시 한번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이번에는 후퇴였다. 그는 이 광경을 눈에 똑똑히 새기고, 이 끔찍한 진실을 세상에 폭로해야 했다.
지하 통로를 미친 듯이 질주했다. 뒤에서는 거대한 강철 거신과 학원 교수들 간의 격렬한 마법 충돌음이 울렸다. 콰광! 쐐애액! 굉음과 섬광이 지하를 가득 채웠다. 엘도라 마법학원의 지하가 지옥으로 변한 것이다.
간신히 지상으로 빠져나온 진혁은 눈앞의 학원을 바라봤다. 첨탑은 여전히 고결하게 하늘을 찔렀고, 마나 장막은 여전히 아름답게 빛났다. 하지만 진혁의 눈에는 더 이상 그 완벽한 환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끔찍한 금기 위에 세워진 거대한 무덤으로 보일 뿐이었다.
소민은 그곳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마법 생명체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진혁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 진실은 묵살될 수 없다. 엘도라 마법학원의 아름다운 가면을 벗겨내야만 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진혁은 직감했다. 그의 심장은 분노와 결의로 뜨겁게 타올랐다. 이 끔찍한 금기를 세상에 드러낼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