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1. 잿더미 위를 걷다**
도시의 심장은 이미 오래전에 멈췄다. 잿빛 빌딩 숲은 거대한 무덤처럼 솟아 있었고, 부서진 아스팔트 위에는 먼지와 침묵만이 가득했다. 한때 활기 넘치던 도로들은 뒤집힌 차량들과 이름 모를 잔해들로 엉망진창이었다. 바람은 찢겨진 현수막 조각들을 휘날리며 스산한 비명을 질렀다. 어디선가 녹슨 쇠붙이가 끼익거리는 소리, 그리고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는 무감각해질 지경인 끔찍한 신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훈은 낡은 백팩을 고쳐 메고 주저앉은 상가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작열했지만, 그의 눈은 한 점 얼음처럼 차가웠다. 오늘 얻은 건 고작 통조림 세 개와 반쯤 썩은 물 한 병이 전부였다.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젠장.”
갈라진 입술 새로 짧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딘가 물을 찾을 만한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시선은 부서진 육교 너머로 향했다. 저 멀리, 간판만 겨우 남아 있는 대형 마트 건물이 보였다. 위험했다. 대형 마트는 언제나 ‘그것들’의 안락한 보금자리이자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최악의 함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목마름은 그 어떤 공포보다 강력한 동기였다.
지훈은 허리춤에 찬 낡은 등산용 칼의 손잡이를 한 번 쥐었다 놨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옥상 가장자리로 향했다. 녹슨 사다리를 타고 삐걱거리는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신경은 온통 주변의 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바람 소리, 무너지는 잔해 소리, 그리고… 희미한 신음 소리. 그것들은 언제나 멀리 있지 않았다.
툭.
오래된 유리 조각을 밟았는지 작은 소리가 났다. 지훈은 순간 몸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굳게 닫힌 계단실 문 너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찢어진 천으로 감싼 쇠 파이프가 묵직하게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방패였다.
마침내 지상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곧장 마트를 향하지 않았다. 건물 뒤편의 주차장 쪽으로 우회했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덜 부서져 있었고, 외부에서 침입하기에도 더 용이해 보였다. 그러나 예상대로였다. 주차장 입구는 뒤집힌 차량들로 막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희미한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놈들이었다.
“젠장, 놈들이 벌써 자리 잡았군.”
이를 악물었다. 정면 돌파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는 최대한 몸을 낮춰 폐차들 사이를 기어갔다. 엔진이 없는 텅 빈 차체 안에서 썩은 내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코를 막고 겨우 버텼다. 언제나 역겨운 냄새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건물 벽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크르르르…*
귓가에 바싹 다가온 끔찍한 소리에 지훈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 부서진 승합차의 창문 너머로 텅 빈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핏발 선 눈, 축 늘어진 턱, 그리고 희번덕이는 이빨. ‘그것’이었다. 죽은 지 오래인 시체가 움직이는 기괴한 존재.
몸이 경직될 틈도 없었다. 승합차 문이 덜컹거리는 동시에, 그것이 쇠사슬 끊듯 튀어나왔다. 썩어 문드러진 손이 그의 어깨를 향해 뻗어왔다.
휘익!
지훈은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했다. 놈의 손가락 끝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겨운 살점이 뜯겨나가는 듯한 비릿한 냄새가 순간적으로 그의 후각을 강타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놈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더니, 다시 비정상적인 속도로 달려들었다. 이성이 없는 움직임, 오직 식욕에만 충실한 움직임이었다. 지훈은 이를 악물고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비명 대신 끔찍한 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놈은 잠시 주춤했지만, 뼈가 부러진 듯한 목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달려들었다. 죽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존재였다.
지훈은 한 발 물러서며 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파이프를 강하게 그러쥐었다. 두 번째 공격은 더 정확하고 치명적이어야 했다. 놈의 움직임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노렸다.
*콰직!*
놈이 달려들며 팔을 뻗는 순간, 지훈은 모든 힘을 실어 파이프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놈의 턱에 정확히 박혔다.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놈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놈은 축 늘어진 몸을 꿈틀거리며 다시 기어오르려 했다.
“죽어라, 제발.”
지훈은 놈의 머리에 파이프를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고, 놈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축 늘어진 사체를 내려다보며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겨우 한 마리였다. 하지만 매번 이랬다. 공포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역겨움은 쌓여만 갔다. 그는 구역질을 참고 놈의 시체에서 멀리 떨어졌다. 이 이상 머무는 것은 위험했다. 시체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는 다른 놈들을 불러 모으기 충분했으니까.
마침내 마트 뒤편의 직원 출입구에 도착했다. 철문은 녹슬고 삐걱거렸지만, 용접으로 막혀 있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는 문틈으로 안을 살폈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은 적막했다. 적막은 때로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철컥.
조심스럽게 빗장을 풀고 문을 열었다. 곰팡내와 함께 희미한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먼지 쌓인 선반과 쓰러진 박스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저 안쪽 어딘가에, 어쩌면… 생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목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발걸음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으으으으…*
무언가가, 아니, 무언가들이 움직이는 소리. 그것들은 분명 이 마트 안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매복해있던 놈들이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했다.
지훈의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숨길 곳을 찾았지만, 이미 늦은 걸까?
창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수십 개의 그림자들이 느릿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정확히 지훈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젠장….”
지훈은 꽉 쥐었던 파이프를 더 강하게 그러쥐었다. 살아남기 위한 그의 생존기는, 오늘도 이렇게, 또다시 절망적인 막을 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