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웹소설: 그림자 속 속삭임**
—
**1화: 낡은 시간의 파편**
오후 세 시 반, 낡고 부서진 창문 틈으로 기어든 햇살이 먼지 낀 공기를 찢고 있었다. 지훈은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플래시를 비췄다. 삐걱이는 발소리가 음산하게 울리는 폐가, 아니, 한때는 이 지역 유지의 저택이었으나 이제는 시간의 손길에 완전히 잠식당한 유령 같은 공간. 천장의 회반죽은 여기저기 거대한 얼룩처럼 벗겨져 있었고, 벽에 걸려 있었을 액자의 흔적만이 희미한 사각형으로 남아 있었다.
지훈은 낡은 카메라를 든 채 비틀거리는 바닥을 조심스럽게 디뎠다. 그의 취미는 잊혀진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쇠락한 미학, 시간에 갇힌 이야기들. 하지만 이곳은 여느 폐가와는 다른 묘한 기운을 풍겼다. 집 안을 채운 곰팡이 냄새와 눅진한 공기 속에서, 아주 오래된 나무와 흙냄새가 섞여 희미하게 풍겨왔다.
“젠장, 이건 뭐… 박물관이 아니라 유물 발굴 현장인가?”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표는 이 저택의 서재였다. 소문에 따르면, 이 집의 마지막 주인이 광적인 고문헌 수집가였다고 했다. 비록 대부분의 책은 이미 도난당했거나 썩어 문드러졌겠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거대한 나무 문짝이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서재로 들어섰다. 플래시 빛에 드러난 서재는 말 그대로 책들의 무덤이었다. 곰팡이가 피어 회색으로 변한 책들이 선반에서 무너져 내렸고, 바닥은 이미 삭아버린 종이 조각들과 바스러진 가죽 표지들로 뒤덮여 있었다. 낡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거대한 벽난로가 눈에 띄었다. 검게 그을린 벽돌 사이, 유독 한 벽돌이 다른 것보다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발길이 멈췄다. 왠지 모르게 시선이 그곳에 꽂혔다.
“이게 뭐야….”
무심코 손을 뻗어 튀어나온 벽돌을 만졌다. 차갑고 거친 표면. 살짝 힘을 주어 밀어보니, 예상외로 벽돌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난로 옆 벽이 ‘그륵’ 하는 소리를 내며 작게 움직였다.
그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숨겨진 공간이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곳에 비밀 통로가 있을 줄이야. 벽돌을 다시 당기자 벽의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좁고 어두운 틈이 생겼다. 먼지 냄새와 함께 섬뜩한 냉기가 훅 끼쳐왔다.
플래시를 틈새 너머로 비췄다. 좁은 공간,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실망하려는 찰나, 빛이 닿은 구석에서 작은 나무 상자 하나가 보였다. 손때 묻은 갈색 나무,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지훈은 상자를 꺼내기 위해 몸을 숙였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살갸을 스쳤다. 상자를 들어 올리자, 생각보다 묵직했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매끄러웠고,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듯한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는 먼지를 털어내고 상자를 유심히 살폈다. 잠금장치는 없었다. 대신 앞면에 아주 작고 정교한 은색 고리가 박혀 있었다. 고리를 살짝 당기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 뚜껑이 열렸다.
안에는….
검은색 돌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평범한 조약돌도 아니었다. 달걀만 한 크기에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운 표면. 빛을 반사하지 않고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한 칠흑 같은 색깔. 마치 밤하늘의 모든 어둠을 응축해 놓은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돌을 잡았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기가 전신을 감쌌다. 돌은 너무나 차가워서, 마치 살아있는 얼음 덩어리를 쥐고 있는 듯했다. 동시에, 귓가에 아주 희미한, 마치 심해의 파도 소리 같은 낮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환청이겠지, 생각하며 그는 돌을 꽉 쥐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검은 돌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자에 담겨 있던 다른 어떤 것도 찾지 못했기에, 이 돌이 유일한 발견이었다. 그는 책상 위에 돌을 올려두고 노트북 화면을 켰다. 폐가에서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자꾸만 돌에게로 향했다.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은 주말 드라마 삼매경이셨다. 평화로운 일상. 하지만 그의 손끝은 여전히 돌의 차가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그는 다시 돌을 집어 들었다. 차갑다 못해 아릿한 감각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순간,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팟’ 하고 흔들렸다. 그 뒤를 이어, 방 안의 전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형광등처럼, 간헐적으로 빛을 잃었다가 되찾았다.
지훈은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그런가? 최근 며칠 밤샘이 잦았다.
그는 돌을 다시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아주 짧은 섬광이 스쳤다. 번개처럼 빠르게 사라진 찰나의 빛.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의 한 프레임처럼, 그의 시야 한구석에 형언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과 함께 거대한 구조물의 잔상이 박혔다가 사라졌다.
“뭐야….”
그는 당황했다. 환각인가? 그는 손에 들린 돌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검은 돌멩이.
그는 손안에 쥐고 있던 돌을 책상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방 안의 조명은 안정되었다. 스탠드도, 전등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설마. 우연이겠지.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갉아먹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돌을 집어 들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불빛의 깜빡임. 이번에는 더 격렬했다. 스탠드와 전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더니, 급기야 컴퓨터 모니터까지 ‘치지직’ 소리를 내며 화면이 일렁였다.
“젠장!”
그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돌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은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작은 유리 탁자였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낡은 탁상시계가, 마치 망치로 내리친 듯 유리 덮개가 완전히 깨져 있었다. 돌이 떨어진 곳과는 제법 떨어진 위치였다.
지훈은 얼어붙었다. 탁상시계의 유리 파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깨진 시계 사이에서, 얇고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는 천천히 깨진 시계로 다가갔다. 푸른빛은 시계 안에 박혀있는 작은 부품, 아니, 부품처럼 생긴 아주 작은 조각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돌멩이에서 발산되던 냉기가 응축된 듯, 그 조각은 주변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섬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찾았느냐….*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는 소리. 그것은 귓가를 파고드는 바람 소리 같기도 했고, 수천 개의 벌레가 한꺼번에 기어가는 듯한 소름 끼치는 마찰음 같기도 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갑작스러운 혼란과 함께, 어둡고 거대한 힘의 감각이 훅 밀려들어 왔다.
몸 안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누구야…?”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 안에는 그 혼자였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부모님의 TV 소리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하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졌다.
— *힘이… 너를 부른다….*
이번에는 더욱 또렷했다. 고요한 방 안에서,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속삭임. 그는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은 돌이 보였다. 그 돌에서 아주 희미하게,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검은 빛줄기가 깜빡이는 것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갑자기 쿵, 하는 굉음이 들렸다. 이어서 부모님의 놀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훈은 속삭임을 뒤로하고 방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그의 눈에 비친 복도는 이미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집 안의 모든 불빛이 꺼져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실 쪽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와 함께, 낮고 섬뜩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음 속에서, 다시금 그 속삭임이 들려왔다.
— *늦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가 그 검은 돌을 발견한 순간부터였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그의 손에 묻은 먼지와 함께, 피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