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마법학원, 그 이름만으로도 마법사 지망생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곳. 고색창연한 탑들과 수정처럼 빛나는 강의실, 그리고 고대 마법의 기운이 서린 도서관까지. 겉보기엔 완벽한 마법의 전당이었다. 하지만 이서준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거대한 위선처럼 느껴질 때가 잦았다.
“젠장, 또 이론 수업이라니. 실전 훈련은 언제쯤 해보라는 거야?”
공중 부양 마법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며 복도를 걷던 서준은 옆으로 휙 스쳐 지나가는 고급 비행 마차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학원 엘리트들은 저런 식으로 이동한다. 자신처럼 구석진 기숙사에서 중앙 타워까지 자력으로 걸어 다니는 학생은 드물었다.
그날도 따분한 ‘고대 마법사 열전’ 강의를 피해 비상 통로 계단을 오르내리던 중이었다. 낡은 복도를 지나, 학생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서관 최하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훈련실 몇 개와 창고가 전부였다. 학원 기록에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명시된 곳.
“흥, 이곳엔 그래도 쉴 공간은 좀 있겠지.”
서준은 벽에 걸린 낡은 태피스트리를 무심코 손으로 스쳤다. 먼지가 풀썩 일었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 속에서, 손끝에 닿는 감촉이 이상했다. 나무 벽이 아니라, 그 안쪽에 빈 공간이 있는 듯한 울림.
그는 호기심에 태피스트리를 걷어냈다. 낡은 벽돌들 사이, 희미하게 빛나는 마법 문양이 보였다. 잠금 마법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봉인한 흔적이 역력했다. 왜? 평범한 창고라면 굳이 이런 강력한 봉인이 필요 없을 터였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특기였다. 봉인된 것을 풀어내고,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것. 그는 품속에서 작은 만능 마법 도구를 꺼냈다. 손가락을 움직여 마나를 불어넣자, 도구 끝에서 푸른빛이 일렁였다.
“흠, 학원 기록 어디에도 이곳에 대한 정보는 없었는데 말이야.”
봉인 마법은 꽤나 고난이도였다. 수십 개의 마법 회로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러나 서준은 이미 수많은 금지된 마법 구조를 분석해 온 터였다. 그의 손놀림은 정확하고 빨랐다. 지지직, 투닥투닥. 작은 마법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마침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의 마법 문양이 빛을 잃었다. 그리고 서서히 벽돌들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며,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드러났다.
차가운 공기가 후욱 끼쳐 나왔다. 곰팡이 냄새가 아닌, 쇠붙이와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이 섞인 듯한 묘한 냄새였다. 서준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잠재된 호기심은 그 모든 경고를 무시하게 했다. 그는 소형 발광 마법을 걸어 손끝에 작은 빛 구슬을 띄웠다.
쿵, 쿵, 쿵. 심장이 발걸음에 맞춰 울렸다. 계단은 끝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벽은 더 이상 낡은 벽돌이 아니었다.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 패널로 바뀌어 있었다. 학원의 어떤 공간과도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입구 같았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수십 층은 족히 될 거리였다. 마침내 통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졌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서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곳은 고대 유적도, 숨겨진 보물 창고도 아니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 천장에는 수많은 파이프와 케이블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기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차가운 금속 광택과 희미하게 깜빡이는 제어판의 불빛들이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첨단 시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서준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학원 지하에 이런 장소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모든 기계에서 규칙적인 웅웅거림이 울려 퍼졌다. 공기 중에는 미세한 마나 입자와 함께, 무언가 정제되고 있는 듯한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으로 갈수록 기계들은 더욱 거대해졌다. 거대한 원통형의 장치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 중 몇몇은 투명한 강화 유리로 만들어져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은 그것을 보았다.
투명한 원통형 용기 안에는 푸른빛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 무언가가, 아니, *누군가*가 떠 있었다.
핏기 없는 피부, 가늘게 감긴 눈. 언뜻 보면 잠들어 있는 사람 같았지만, 온몸에 복잡한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희미하게 빛나는 마나 회로가 피부 위로 불거져 있었다. 마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한 모습이었다.
서준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건 단순한 마법 실험체가 아니었다.
아니, 기다려. 저 얼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가 자세히 보려 한 순간이었다.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잠시 붉게 변하더니, 투명한 용기 속 인물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고통에 시달리는 듯한, 혹은 깨어나려 애쓰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때였다.
“누구야?!”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서준의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류하민이었다. 학생회장이며 학원 최상위 엘리트. 그 완벽한 얼굴에 차갑고 잔혹한 경계심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마력이 응축된 마법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이서준… 네가 왜 여기에.” 하민의 눈빛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서준을 꿰뚫었다.
서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하민의 눈에 담긴 혐오와 경계심 뒤로, 희미한 공포의 그림자를 보았다. 하민의 시선이 잠시 투명한 용기 안의 인물에게 향했다가, 다시 서준에게로 돌아왔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이 하민에게도 ‘금기’임을 아는 듯한 눈빛이었다.
도망쳐야 해.
서준의 이성적인 판단이 본능적인 공포에 휩쓸려 작동했다. 그는 빛 구슬 마법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터뜨려 하민의 시야를 가렸다.
“크윽!” 하민이 눈을 찡그리며 잠시 뒤로 물러서는 틈을 타, 서준은 전속력으로 되돌아온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하민의 강력한 추격 마법이 느껴졌다. 꽝! 쾅! 하며 벽이 흔들렸다.
서준은 정신없이 도망쳤다. 통로를 지나, 봉인했던 벽으로 향했다.
그는 간신히 벽 틈새로 몸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벽을 다시 닫으려 마법을 걸던 찰나,
아까 본 투명 용기 속 인물의 얼굴이, 방금 보았던 류하민의 얼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섬뜩한 깨달음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닫혀가는 벽 틈으로 들려오는 하민의 목소리.
“네놈… 죽고 싶지 않으면, 본 것을 전부 잊어라. 아니, 이미 늦었군. 감히, ‘제5 연구동’의 비밀을 건드리다니….”
제5 연구동?
서준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숨겼다.
그제야 그는 알 수 있었다. 아르카디아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것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학원 전체를 지탱하는, 혹은 무너뜨릴 수도 있는, 거대한 악몽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악몽의 한가운데, 류하민이 서 있었다. 아니, 류하민 같은 누군가가…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마치 류하민의 복제품처럼 잠들어 있는 존재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몸을 떨던 서준은, 품에서 떨어진 작은 데이터칩 하나를 발견했다. 방금 전 그 혼란 속에서, 무언가를 훔쳐왔나? 칩 표면에는 희미하게 ‘Project: Chimer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