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챕터 1: 심연의 속삭임
끝없이 펼쳐진 암흑 속에서, 탐사선 아스테리아는 홀로 유영했다. 은하수 너머, 문명화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심우주. 이곳은 빛도 소리도 없는 태초의 공간이었다. 선장은 모니터에 비친 무수한 별무리 속에서, 그러나 그 어떤 별과도 닮지 않은 고독한 검은 점 하나를 응시했다.
“선장님, 에너지 신호가… 계속 잡힙니다.”
브릿지의 적막을 깬 건 과학 장교 윤아의 떨리는 목소리였다. 백금발의 짧은 머리를 한 그녀는 평소라면 침착하게 데이터를 분석했을 터였으나, 지금 그녀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어떤 신호지?” 서진 선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눈빛은 이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장 아래에서부터 스멀거리는 불길한 예감은 애써 무시했다. 탐사선 아스테리아의 임무는 ‘미지의 발견’이었다. 불길한 예감 따위가 임무를 방해할 수는 없었다.
“분류 불능입니다. 인공적인 것도, 자연적인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에너지는… 엄청나요. 블랙홀 근처에서나 볼 법한 수치인데, 규칙적인 파동을 보입니다.”
“블랙홀?” 기관장 민준이 거친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은 피로에 절어 있었으나, 호기심이 가득했다. “블랙홀 근처라면, 우리가 감지 못 했을 리가 없잖아? 이곳은 암흑 성운 지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맞습니다. 그렇기에 더 이상합니다.” 윤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마치… 처음부터 이곳에 없던 것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요.”
서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아스테리아호는 인류가 건조한 가장 진보된 심우주 탐사선이었다. 그녀의 직감은 매번 위기를 넘겼고, 생존을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직감이, 등골을 타고 오르는 차가운 소름으로 변해 있었다.
“거리 얼마나 남았지?”
“현재 속도로… 24시간 정도면 도달합니다.”
“속도 높여. 민준, 엔진 최대로.”
“선장님!” 민준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성운 지대에서 최대 속도는 위험합니다! 게다가 미지의 신호에 바로 접근하는 건….”
“명령이다, 기관장.” 서진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민준을 꿰뚫었다. “이곳에 온 목적을 잊지 마. 미지의 것이라면, 확인해야지. 인류의 탐험 정신은 망설임이 아니었어.”
민준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24시간이 24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스테리아호는 미지의 신호를 향해 전속력으로 나아갔다. 그 시간 동안, 함선 내부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평소라면 왁자지껄했을 식당은 조용했고, 승무원들은 각자의 임무에 몰두하면서도, 끊임없이 브릿지의 상황판을 곁눈질했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침묵 속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선장님… 육안으로 확인됩니다.” 윤아의 목소리는 경외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메인 스크린에 비친 것은, 그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형태였다. 거대했다. 마치 작은 행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러나 금속도, 암석도, 가스도 아니었다. 그것은 완벽하게 검고 매끄러웠으며, 표면은 주변의 빛을 흡수하는 듯했다. 간혹, 아주 희미하게, 검은 표면 아래에서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빛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저게… 대체 뭘까요?” 민준이 넋 나간 듯 중얼거렸다.
“생명체는 아닙니다. 하지만… 유기적인 패턴이 감지됩니다.” 윤아가 데이터를 더듬거리며 말했다. “어떤 에너지 장이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스캐너가 제대로 침투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주의 한가운데에 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 완벽한 구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비정형적인 덩어리도 아니었다. 기이할 정도로 완벽한 비대칭의 덩어리. 마치 신이 실수로 빚어낸 뒤 버려둔 조각상 같기도 했고, 어떤 고대 문명이 남긴 잊힌 건축물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떤 비유로도 부족했다.
서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탐사선을 발진시켜. 소규모 팀으로 근접 정찰을 실시한다. 윤아, 민준, 그리고 상훈 보안 장교도 함께 가도록.”
“선장님께서 직접 가시는 겁니까?” 상훈 보안 장교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그냥 미확인 물체가 아니야. 이건…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발견이다. 내가 직접 가야 해.”
탐사선 셔틀이 아스테리아호의 격납고를 떠나, 검은 유물로 향했다. 셔틀 내부의 조명은 은은했지만, 승무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유물이 가까워질수록, 셔틀 내부의 기온이 미묘하게 내려가는 것 같았다. 혹은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스캔 결과는 여전히 불분명합니다.” 윤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마치… 유령 같습니다.”
“유령은 아니겠지.” 민준이 헛웃음을 지었다. “정체 모를 외계 기술이라면 몰라도.”
상훈은 묵묵히 자신의 무기를 점검했다. 하지만 저런 거대한 물체 앞에서 과연 그의 무기가 무슨 소용이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의 손바닥에는 어느새 땀이 흥건했다.
셔틀이 유물 표면에 착륙했다. 쿵 하는 충격음조차 거의 들리지 않았다. 유물은 소리마저 흡수하는 것 같았다. 대원들은 조심스럽게 에어록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 헬멧 내부의 조명만이 어둠을 가로질렀다.
“대기 분석 결과… 아무것도 없습니다. 완전한 진공입니다.” 윤아가 보고했다.
“놀랍군.” 서진은 손을 뻗어 유물 표면에 닿으려 했다. 헬멧 너머로 느껴지는 유물의 표면은 차갑고 매끄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유물의 검은 표면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은 그녀의 헬멧 유리를 통과해, 그녀의 눈동자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들린다…*
환청이었다. 아니, 환청이라고 믿고 싶었다. 아주 희미하고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마치 심연에서부터 올라오는 고대의 메아리 같았다.
“선장님? 괜찮으십니까?” 상훈의 목소리가 통신으로 들려왔다.
“아… 괜찮다.” 서진은 황급히 손을 거두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환영일 뿐이야. 착각이다.)
그때, 윤아가 비명을 질렀다.
“뭐, 뭐지?! 스캐너가! 제 스캐너가 미쳤어요!”
윤아의 휴대용 스캐너는 마치 오작동하듯이 미친 듯이 깜빡이고 있었다. 액정에는 무의미한 숫자와 기호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윤아?” 서진이 그녀에게 다가섰다.
“모르겠습니다! 저항할 수가 없어요! 스캐너가… 제 머릿속으로 뭔가를 주입하는 것 같아요!”
윤아는 두 손으로 헬멧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윤아! 진정해!” 상훈이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
그 순간, 거대한 유물 전체가 희미하게 발광하기 시작했다. 푸른빛, 보라빛, 그리고 이전에 없던 섬뜩한 붉은빛이 뒤섞이며 유물의 검은 표면을 물들였다. 빛은 유물의 중심에서부터 퍼져나가며 일정한 패턴을 그렸다. 그것은 마치… 눈동자 같았다. 수억 개의 눈동자가 동시에 자신들을 응시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유물 표면의 모든 빛이 한 점으로 모여들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균열이 생겼다. 검고 매끄러웠던 표면에 기다란 금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불길한 암흑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균열이 아니었다. 마치 어둠이 스스로 갈라지는 듯했다.
“물러서! 모두 셔틀로 돌아가!” 서진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늦었다.
균열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무언가가 솟아나오고 있었다. 검은 연기 같으면서도, 동시에 고형의 형체인 듯한 알 수 없는 존재. 그 형체는 서서히 위로 솟아오르며 대원들을 내려다봤다. 그것은 형태가 없었으나, 동시에 모든 형태를 포함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진은 다시 한번 그 속삭임을 들었다.
*찾았다…*
이번에는 환청이 아니었다. 헬멧 내부를 울리는, 차갑고 끈적끈적한 목소리. 동시에 그녀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어떤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고통, 절규, 그리고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별들의 잔해.
윤아는 이미 비명을 멈춘 채, 눈을 번뜩이며 그 검은 형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기이한 미소가 번졌다.
“그분을… 맞이해야 해요… 선장님.” 윤아의 목소리는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차갑고, 공허하며, 불길한 메아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유물에서 솟아난 검은 형체가, 거대한 그림자처럼 셔틀을 뒤덮었다.
아스테리아호와의 통신이 완전히 끊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