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잊혀진 심연의 왈츠

메마른 먼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수천 년은 족히 묵었을 법한 고대 유적의 공기는 습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카인이 걸음을 멈추자, 그의 뒤를 따르던 리온이 팔짱을 끼며 불평했다.

“야, 카인. 잠깐 쉬어 가는 건 어떻냐? 벌써 세 시간째 내리 달리고 있잖아. HP는 둘째 치고, 내 정신력이 바닥나기 직전이라고.”

리온은 큼지막한 타워 실드를 땅에 쿵, 하고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강철 같은 방어력을 자랑하는 중갑 전사였지만, 연달은 탐사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쉬어? 리온, 이런 위대한 유적에서 감히 쉼을 논하다니. 이건 탐험가의 모독이야!” 카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낡고 거대한 고문서가 들려 있었다. 시스템상으로는 그냥 ‘오래된 양피지’였지만, 카인에게는 보물 그 이상이었다.

“모독 좋아하시네. 내 발바닥이 모독당하고 있는 기분이다.” 리온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리온 말이 맞아, 카인.” 이마에 잔뜩 주름을 잡은 제이가 카인에게 다가왔다. 그의 푸른 마법사 로브는 곳곳에 찢기고 흙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이 정도 깊이까지 내려왔으면, 이젠 고대 문명이 남긴 심장부에 가까워졌을 거야. 무작정 돌진하는 것보단… 잠시 멈춰서 주변을 탐색하는 게 현명해.”

카인은 제이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는 파티의 브레인이었다. 고대 언어 해독부터 마법 이론까지, 그의 지식은 이 잊혀진 유적을 탐사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럼 이 홀에서 잠시 휴식 겸 탐사를 시작해볼까?” 카인은 주변을 둘러봤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원형 홀이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푸르스름한 빛을 내뿜는 정체불명의 광석들이 벽면 곳곳에 박혀 있었다. 중앙에는 마치 거대한 조각상처럼 우뚝 솟은 장치가 있었다. 복잡한 기계 장치와 알 수 없는 문양들로 뒤덮인 그것은 어떠한 동력으로 움직이는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이게… 대체 뭐야?” 리온이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장치를 노려봤다. 그녀의 거대한 실드에서 은은한 방어 마법 오라가 뿜어져 나왔다.

“이런 규모의 장치는 처음 봐.” 제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장치에 새겨진 문양을 응시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장치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푸른빛이 그의 손끝을 감쌌다. “흥미롭군. 마력이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 이건 우리가 아는 고대 문명의 기술과는 달라. 훨씬… 훨씬 더 오래된 것 같아.”

카인은 벌써 장치 주변을 맴돌며 손으로 이리저리 더듬고 있었다. “여기, 이 문양들 좀 봐! 이건 내가 고문서에서 봤던… ‘별의 노래’를 뜻하는 상형문자와 비슷해! 설마, 이 유적의 진짜 이름이 ‘별의 심연’이라는 게 사실이었나?”

“별의 심연? 그건 전설 속에나 나오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고대 유적이잖아.” 제이의 목소리에 놀라움이 섞였다.

“그래! 그 전설의 유적이 여기라고! 내 육감이 말해주고 있어!” 카인이 흥분해서 외쳤다. 그는 기계의 복잡한 구조를 손으로 따라가다, 문득 한 부분에 시선이 꽂혔다. 다른 부분과는 달리 매끄럽게 마모된, 손으로 자주 만진 듯한 홈이 파여 있는 곳이었다. 마치… 열쇠 구멍처럼.

“이거 봐! 여기 뭔가 끼워 넣는 곳이 있어!” 카인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함부로 만지지 마, 카인! 또 무슨 괴물 튀어나오게 하려고!” 리온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난번, 카인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고대 제단을 건드렸다가 쏟아져 나온 미이라들을 그녀가 홀로 막아내야 했다.

“괴물이 나오면 막으면 되지! 우리는 파티잖아?” 카인은 리온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허리춤을 뒤졌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푸른빛 수정구를 꺼냈다. 그는 이 수정구를 몇 주 전, 이 유적의 입구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했다며 소중하게 보관해 왔다.

제이가 경고했다. “카인! 기다려! 저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패턴이 심상치 않아. 뭔가 큰 변화를 일으킬 수도 있어!”

하지만 카인은 이미 수정구를 홈에 맞춰 끼워 넣고 있었다. 마치 제자리를 찾은 조각처럼, 수정구는 완벽하게 홈에 들어맞았다.

**콰아아앙!**

홀 전체가 굉음과 함께 진동했다. 천장에 박힌 푸른 광석들이 미친 듯이 깜빡였고, 중앙의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눈이 멀 정도로 강력하게 폭발했다.

“젠장! 역시나!” 리온이 외치며 본능적으로 실드를 들어올렸다. 폭발적인 빛과 함께 먼지가 걷히자, 장치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복잡한 문양들이 살아 움직이듯 빛나기 시작했고, 장치의 상단부가 천천히 열리며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에너지 덩어리 너머로, 이전에 없던 새로운 통로가 나타났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통로는, 장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받아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겹겹이 쌓인 고대 금속 문 너머,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저게… 뭐야?” 리온의 목소리가 떨렸다.

카인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상상을 초월했다. 통로 너머의 공간은 마치 밤하늘을 옮겨놓은 듯했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검은 우주가 펼쳐져 있었고, 그 중심에는 거대한 행성이 떠다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우주가 아니었다. 거대한 홀의 천장과 벽면에 홀로그램처럼 투영된, 환상적인 영상이었다.

“이건… 차원 전송 장치인가? 아니, 그 이상의 무언가야.” 제이가 넋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이 유적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비밀을 품고 있었어.”

그때였다. 홀로그램 우주의 한가운데 떠 있던 거대한 행성 형상에서, 아주 미약하지만 명확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기지개를 켜는 듯한, 묵직하고 심장을 울리는 소리.

**’…환영한다, 새로운 계승자들이여…’**

나지막하고 거대한 목소리가 홀 전체를 가득 메웠다. 그 목소리는 어떤 언어로도 정의할 수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뇌리에 직접적으로 박히는 듯했다.

“계승자?” 리온이 실드를 꽉 쥐었다. “저게 말하는 거야?”

카인의 얼굴에는 경외심과 함께 지독한 호기심이 떠올랐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건 단순한 유적이 아니었어… 살아있는… 살아있는 문명 자체였어!”

그때, 거대한 홀로그램 행성에서 한 줄기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그들에게 향했다.

“피해!” 제이가 비명을 질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섬광은 그들의 몸을 순식간에 관통했고, 그들의 시야는 강렬한 백색 빛으로 가득 찼다.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한 기묘한 감각과 함께, 그들은 미지의 힘에 이끌려 홀로그램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카인의 귓가에 맴돈 것은, 묵직한 목소리의 다음 말이었다.

**’…이제 너희는… 진정한 심연의 비밀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빛이 사라지고, 카인의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그는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눈동자를 본 듯했다. 그 눈동자는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천 년간 잊혔던 비밀이, 드디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