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나선탑 학원은 살아있는 거대한 기계 도시였다. 육중한 황동과 톱니바퀴로 뒤덮인 건물들은 스팀 증기를 뿜어내며 밤낮없이 웅장한 심장 박동을 내뱉었다. 하늘에는 학원의 상징인 비행정 ‘천공의 눈’이 은은한 빛을 띠며 순찰했고, 미로 같은 회랑마다 자동 인형들이 찰칵거리는 발걸음으로 바삐 움직였다. 그 어디를 보아도 정교함과 진보의 증거가 번뜩이는, 마법과 기계공학이 완벽하게 융합된 경이로운 전당이었다.
이곳, 최정예 마법사들의 요람에서 유진은 여느 때처럼 고서적에 파묻혀 있었다. 낡은 책장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증기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 그는 손에 든 두꺼운 역학 마법 교본보다, 얼마 전부터 학원 지하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진동에 더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야, 유진! 또 그 이상한 소리 타령이냐?”
옆구리를 쿡 찌르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유진은 어깨를 움찔했다. 서윤이었다. 새까만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고 은테 안경을 코끝에 걸친 그녀는, 늘 정돈된 실험복 차림으로 황금 나선탑 학원의 ‘움직이는 도서관’이라 불릴 만큼 방대한 지식을 자랑했다.
“이상한 소리라니? 못 들었어? 한밤중에 저 아래에서 들리는 그… 으음, 뭐랄까, 거대한 엔진이 심장이 아니라 영혼으로 박동하는 듯한 소리 말이야.” 유진은 책을 덮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비행정 ‘천공의 눈’의 마력 효율이 훨씬 좋아진 거 알아? 예전엔 저녁만 돼도 휘청거렸잖아.”
서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건 증기-마력 변환기의 최신 개량 덕분이야. 교수님들이 밤샘 연구해서 얻어낸 성과라고. 네 환청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녀는 시큰둥하게 다시 실험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괜히 엉뚱한 상상해서 벌점 받지 말고, 다음 주 실기 시험이나 준비해.”
하지만 유진의 감은 늘 틀린 적이 없었다. 그는 천재적인 마법 재능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지만, 기계와 마법 에너지의 미묘한 흐름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학원 지하에서 느껴지는 그 ‘맥동’은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거대한 고통 속에서 억지로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었다.
며칠 밤낮으로 유진은 학원 지하 도면을 들여다보았다. 황금 나선탑 학원의 지하에는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지도에도 제대로 표시되지 않은 ‘제7 구획’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 기괴한 맥동이 가장 강하게 느껴졌다.
‘밤샘 연구… 정말 단순히 연구 때문일까?’
호기심은 이내 불길한 예감으로 변했다. 유진은 서윤의 도움 없이는 이곳의 보안 시스템을 뚫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서윤은 원칙주의자였다.
그러나 운명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다음날, 학원의 정기 점검으로 인해 일부 자동 인형들의 순찰 경로가 일시적으로 변경된다는 공지가 붙었다. 그리고 서윤은 그날따라 정밀한 마력 증폭기 회로를 설계하는 데 몰두하여 유진의 꿍꿍이를 눈치챌 틈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황금 나선탑 학원이 잠잠한 톱니바퀴의 꿈속으로 빠져들 무렵, 유진은 손전등과 간단한 마법 도구를 챙겨 지하로 향했다. 금지 구역의 육중한 황동 문에는 고대 마법으로 봉인된 잠금 장치가 걸려 있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유진은 서윤에게 배운 마법 기계학 지식을 총동원하여 미세한 마력 흐름을 조작했다. 찰칵, 작은 소리와 함께 빗장이 풀렸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기계 기름 냄새와 함께 섬뜩할 정도로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그리고 더욱 강해진 ‘맥동’. 심장이 조여드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었다.
구불구불한 복도를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복도 양쪽 벽에는 녹슨 배관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고, 천장에서는 간헐적으로 증기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증기등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유진은 오직 맥동에 의지해 길을 찾았다. 빛은 없었지만, 복도 전체가 희미한 마력으로 물들어 있는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마침내, 거대한 철문 앞에 섰다. 이곳이 ‘제7 구획’의 심장부일 터였다. 문은 엄청난 크기였고, 기이한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문양들은 마치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처럼 보였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대었다. 차가운 금속 너머로 쿵, 쿵, 쿵… 마치 거인의 심장 박동 같은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
문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유진은 용기를 내어 문을 밀었다. 육중한 문이 신음하듯 열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것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그러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 아니었다. 온통 거대한 황동 파이프와 톱니바퀴, 알 수 없는 액체로 가득 찬 유리관들이 뒤얽힌, 마치 거대한 기생충처럼 동굴을 집어삼킨 인공적인 구조물이었다. 동굴의 중앙에는 거대한 원통형 장치가 우뚝 솟아 있었는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섬광과 함께 동굴 전체가 맥동하고 있었다.
유진의 시선은 그 유리관들에 닿았다. 투명한 유리관 속에는 맑고 푸른 액체가 채워져 있었고, 그 액체 안에는… 빛나는 ‘구슬’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수많은 구슬들이 각기 다른 강도로 빛을 내며 유영했다. 어떤 것은 희미하게 깜빡였고, 어떤 것은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유진은 소름 끼치는 진실을 깨달았다. 저것은 단순한 마력 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영혼 같았다. 사람의 영혼, 혹은 생명의 정수와 같은 것.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꽤 깊이 들어왔구나, 유진.”
유진은 화들짝 놀라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인물은 다름 아닌 에녹 교수였다. 늘 무표정한 얼굴에 차가운 눈빛을 한 그는, 지금 손에 든 증기등을 높이 들고 유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육중한 전투형 자동 인형 두 대가 무시무시한 기계음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교수님… 여긴… 대체….” 유진의 목소리는 떨렸다.
에녹 교수는 천천히 다가왔다. “이곳이 바로 황금 나선탑 학원의 심장부이자, 그 존재의 이유다.” 그는 손을 뻗어 한 유리관을 가리켰다. 그 안의 ‘영혼’은 다른 것들보다 훨씬 밝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 학원은 이 영혼 결정체, 즉 ‘정수(精髓)’를 연료로 삼아 운영된다. 모든 마력 기술, 모든 자동 인형, 모든 비행선, 이 모든 것이 이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것이지.”
“희생이라니… 그럼 저 영혼들은 대체 어디서…!”
에녹 교수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냉소적인 웃음이었다. “우리의 교육 이념을 기억하나, 유진? ‘최고의 마법 재능을 가진 자만이 인류의 미래를 이끌 수 있다.’ 황금 나선탑은 철저한 엘리트주의를 지향한다. 모든 입학생은 그 잠재력을 측정받고, 졸업까지 수없이 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유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설마.
“하지만 모든 이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지. 잠재력이 부족한 자, 규율을 어겨 학원에 해를 끼치는 자, 혹은… 단순히 ‘쓸모없다고’ 판단된 자들.” 에녹 교수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 학원의 영광은 그들의 ‘재활용’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들의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력 정수는 이 학원을 영원히 빛나게 할 연료가 된다.”
그의 설명은 유진의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사라진 학생들, 갑작스러운 학칙 개정, 그리고 학원 곳곳에 스며든 알 수 없는 슬픔의 기운까지. 모든 것이 이 끔찍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건… 금기입니다! 살아있는 존재를… 이런 식으로…!” 유진은 분노와 공포로 몸을 떨었다.
에녹 교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금기? 그래, 세상은 그렇게 말하겠지. 하지만 이곳은 황금 나선탑이다. 우리는 세상을 이끌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자들이다. 위대한 목적을 위해서는 필연적인 희생이 따르는 법. 네가 방금 본 저 유리관의 정수는… 한때 우리 학원의 빛나는 희망이었던, 너와 같은 학생들의 것이다.”
유진의 시선이 다시 유리관으로 향했다. 가장 밝게 빛나던 영혼 결정체, 그 아름다운 빛 속에 갇힌 존재는 과연 누구였을까? 친구, 선배, 아니면… 미래의 자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제 너도 이 영광스러운 체제의 일부가 될 때가 온 것 같군.” 에녹 교수가 손짓하자, 자동 인형들이 굉음을 내며 유진을 향해 움직였다. 그들의 기계 눈은 희미한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폐쇄된 공간에 갇힌 채, 그는 자신의 심장이 유리관 속 영혼들처럼 조여드는 것을 느꼈다. 황금 나선탑 학원의 지하 깊숙한 곳, 거대한 태엽 심장이 비명을 지르듯 박동하는 곳에서, 유진은 살아있는 지옥의 비참한 진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이 끔찍한 비밀을 세상에 알리지 못한다면, 자신 역시 언젠가 이 찬란한 학원을 밝히는 한 줌의 빛이 될 것이라는, 차가운 공포가 그를 휘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