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 127화: 흑룡의 비늘, 백호의 발톱**

천공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비무장(比武場) 한가운데, 작열하는 태양 아래 두 그림자가 마주하고 있었다. 일백 년 전, 마도(魔道)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흑운단(黑雲壇)의 거목, 마호림(馬虎林). 그리고 이계(異界)의 기억을 품고 무림에 강림한 이방인, 류진(柳眞). 온 천하의 운명을 건다는 ‘운명 결정전’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었다.

관중석에서는 수만 명의 인파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오직 두 사내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비무장 바닥에 깔린 거대한 청강석(靑剛石)은 이미 지난 비무들의 흔적으로 금이 가고 패어 있었지만, 지금 그 위에 선 두 사람의 기세는 그 어떤 균열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마호림은 마치 거대한 검은 짐승처럼 서 있었다. 그의 전신을 휘감은 검은 장포(長袍)는 펄럭일 때마다 기괴한 문양을 드러냈고, 굳게 다문 입술은 피의 냄새를 머금은 듯했다. 그의 시선은 류진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적의(敵意)가 아니었다. 짓밟고, 부수고, 파괴하려는 순수한 욕망 그 자체였다.

“이계에서 온 잡것이… 감히 천하의 명운(命運)에 끼어들려 하는가.” 마호림의 목소리는 낮고 굵었지만, 거대한 비무장을 가득 메울 만큼 강렬했다. 마치 땅속에서 울려 퍼지는 지진과 같았다. “네가 가진 재주가 무엇이든, 이 흑운단의 마호림 앞에선 먼지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류진은 그런 마호림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의 심장은 평온했다. 전생의 기억이 그에게 선물한 것은 육체적인 강함만이 아니었다. 그 어떤 광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고요함이었다. 현대의 지식이 그의 무공에 스며들어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가져왔듯, 그의 정신 또한 이 무림의 상식을 초월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다.

“먼지든 아니든, 겨뤄보면 알겠지.” 류진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듯, 조용하지만 파문을 일으켰다. “당신의 명운은 당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 한마디에 비무장 전체가 술렁였다. 마호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오만한 발언은 그의 분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피가 들끓는 듯한 기운이 마호림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 기류가 그의 주변을 휘감더니, 점차 거대한 흑룡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쿠아아앙!**

형체를 갖춘 기운은 단순한 기세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호림의 내공이 응집된 실체와도 같았다. 흑룡의 형상은 비무장 상공을 맴돌며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압력만으로도 주위의 공기가 찢어지는 듯했다. 관중석에서는 경악과 두려움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흑룡강기(黑龍罡氣)…!’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마호림의 필살기였다. 전신을 감싸는 강력한 방어이자, 동시에 적을 갈가리 찢는 공격. 그 어느 누구도 흑룡강기를 완벽하게 막아내거나 뚫어낸 자가 없었다. 흑룡단주(黑龍壇主)의 자리에 오르게 한 마호림의 상징과도 같은 무공이었다.

마호림은 흑룡의 눈동자처럼 섬뜩한 시선으로 류진을 노려보았다. “네놈의 오만함을 후회하게 해주마!”

그가 발을 내딛자, 청강석 바닥이 우지끈하며 금이 갔다. 흑룡의 기운이 폭풍처럼 류진에게 쇄도했다. 거대한 발톱이 허공을 갈랐고, 번개처럼 빠르게 류진의 심장을 향해 뻗어왔다.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거대한 흑룡의 형상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강력하고 육중한 공격이었다.

류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눈에 비친 마호림의 공격은, 흑룡의 모습이 아닌 수많은 벡터와 힘의 흐름으로 보였다. ‘질량 보존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법칙…’ 전생의 지식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거대한 힘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을 품고 있을 터.

그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발짝 앞으로 내딛었다.

**콰앙!**

마호림의 주먹이 휘몰아치는 흑룡강기와 함께 류진이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비무장 바닥의 청강석이 산산조각 났다.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흙먼지가 비무장을 뒤덮었다.

관중석에서는 일제히 탄식과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끝인가?!’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흑룡강기를 정면으로 받아내고 살아남을 자는 없었다.

하지만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모두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류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만, 그의 주변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마호림의 흑룡강기가 마치 그의 주위를 맴돌며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류진은 오른손을 들어 마호림의 흑룡강기를 가볍게 쳐냈고, 왼손으로는 이미 마호림의 옆구리를 노리고 있었다.

‘흘려내기… 역참조(逆參照)의 기법인가?’

관중석에서 비무를 지켜보던 노장 무인들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마호림의 강력한 기운을 정면에서 받아낸 것이 아니라, 그 기운의 틈을 찾아 회전력을 이용해 힘을 분산시키고 역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고도의 방어이자 공격 기법이었다. 마치 거대한 파도를 능수능란하게 타넘는 서퍼와 같았다. 하지만 이토록 엄청난 위력의 흑룡강기를 그렇게 다룰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호림 또한 경악했다. 그의 전신을 휘감은 흑룡강기가 류진의 가벼운 접촉에 의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그의 옆구리에서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류진의 왼손이 이미 그의 방어선 깊숙이 파고들어 있었다.

“제법이군… 하지만!”

마호림은 뒤로 물러서며 흐트러진 흑룡강기를 다시금 응집시키려 했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서 또 다른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이번에는 검은색이 아닌 붉은색의 섬광이었다. 흑룡강기에 이은 또 다른 심오한 내공의 활용.

**쿠구구궁!**

붉은 기운은 마치 지옥에서 솟아난 불꽃처럼 마호림의 신체를 휘감았다. 그의 전신에서 핏빛 기운이 용솟음쳤고, 그 기운이 응집되자 마호림의 양손이 거대한 짐승의 발톱처럼 변해갔다. 손톱 하나하나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살아있는 맹수의 발톱 같았다.

‘혈호단명각(血虎斷命角)…!’

흑운단의 또 다른 비기(秘技). 흑룡강기로 방어와 공격을 겸비하고, 혈호단명각으로 적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연계 무공이었다. 흑룡이 포효하며 적을 덮치면, 핏빛 발톱을 지닌 백호가 나타나 마무리하는 섬뜩한 조합.

“네놈의 재주는 여기까지다!” 마호림이 포효하며 류진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아까보다 훨씬 더 빠르고 예측 불가능해졌다. 붉은 발톱이 허공을 갈랐고, 그 지나간 자리마다 핏빛 잔상이 남았다.

류진은 마호림의 공격을 주시했다. ‘속도와 힘… 그리고 불규칙성. 흐름을 깨려는 의도인가.’ 그는 전생의 지식을 다시금 상기했다. ‘혼돈 속의 질서….’ 복잡하고 불규칙한 움직임 속에서도 일정한 패턴과 중심이 존재했다. 중요한 것은 그 중심을 찾아내고, 역으로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류진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의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움직임을 한 점으로 응축시키는 듯한 절제된 동작이었다. 류진의 손끝에서 옅은 푸른색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너무나 미약하여 알아차리기 힘든 기운이었지만, 그 안에는 우주 삼라만상을 품은 듯한 깊이가 느껴졌다.

‘태극검결(太極劍訣)의 초식… 하지만 검이 아닌 맨손으로?’

관중석의 일부 고수들은 류진의 동작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움직임을 감지하고 경악했다. 천하제일문파 중 하나인 태극문(太極門)의 절대 검결. 허나 그것은 오직 검을 통해서만 펼쳐질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던가. 류진은 맨손으로, 마치 투명한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태극검결의 오묘한 초식을 펼치려 하고 있었다.

**치이이익!**

마호림의 핏빛 발톱이 류진의 심장을 향해 뻗어왔다. 공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류진의 얼굴에 닿았다. 하지만 류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의 오른손이 마호림의 발톱 사이를 파고들었다.

마치 실이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거대한 핏빛 발톱의 틈을 정확하게 찾아낸 것이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파앗!**

류진의 손끝에서 푸른 기운이 폭발했다. 그것은 직접적인 타격이 아니었다. 마호림의 발톱과 발톱 사이의 미세한 간격, 그리고 그 안에서 흘러가는 기운의 맥락을 정확히 짚어내는 일격이었다. 마치 거대한 댐의 가장 미세한 균열을 찾아 그곳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과 같았다.

**크어어억!**

마호림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핏빛 기운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났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비기가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깨져버린 것에 대한 충격과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쓰러지며 수십 미터를 미끄러져 비무장 벽에 가까스로 부딪히고 멈춰 섰다.

비무장 전체가 다시금 침묵에 휩싸였다. 류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방금 전과 다름없이 고요하게 서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는 푸른 기운의 잔재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천하의 마호림이, 흑운단의 흑룡이, 단 한 번의 맨손 공격으로 저리도 허무하게 무너진 것인가.

마호림은 비무장 벽에 기댄 채 핏자국을 남기며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분노가 아니었다. 이제는 순수한 공포와 이해할 수 없는 경외감이 뒤섞여 있었다.

“너… 너는 대체…!” 그의 목소리는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전율로 떨렸다. “그것은… 그것은 태극문의 검결이 아니었던가! 맨손으로… 맨손으로 그것을…!”

류진은 마호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어떤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검은… 그저 도구일 뿐.” 류진의 목소리가 비무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진정한 무공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마호림의 입가에서 피가 한 줄기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의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자신이 한평생 쌓아온 무공이, 이계에서 온 젊은이의 손에서 이리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였다. 마호림의 등 뒤, 비무장 벽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번개처럼 뻗어나갔다.

**콰콰콰쾅!!!**

거대한 비무장 벽이 안에서부터 폭발하듯 무너지기 시작했다. 마호림은 충격으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그 무너진 벽 너머에서, 어둠에 잠겨 있던 거대한 동굴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동굴의 심연에서는 알 수 없는 기운이 거친 폭풍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 마도문(魔道門)이… 열렸다!”

관중석에서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천하의 운명 결정전, 그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거대한 균열이 발생한 것이었다.

류진의 시선은 무너진 벽 너머의 어둠 속을 향했다. 그곳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어떤 것과도 달랐다. 강력하고, 기이하며, 동시에 끔찍한 파괴력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건… 계획에 없던 일인데.’

전생의 기억이 그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는 미지의 위협이었다. 비무장 위에서 불의의 습격에 당해 쓰러져 있는 마호림. 그리고 그 뒤에서 뿜어져 나오는, 천하를 집어삼킬 듯한 어둠의 기운.

운명 결정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운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류진은 천천히 무너진 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위협 앞에서, 그의 내면에서는 뜨거운 투지가 다시금 끓어오르고 있었다.